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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애령 Feb 28. 2023

신도시와 전통시장의 만남

미세먼지도 나쁘지 않아서 가게에서 산 딸기를 들고 조금 걸었습니다. 그 가게는 현금만 받고 영수증 같은 건 안 줍니다. 



저번에 갔던 모스크에서 5분 거리의 주상복합 아파트입니다. 차로 5분이 아니고 걸어서 5분입니다. 아직 상가에 입점이 덜 되서 낮에는 조금 쓸쓸하지만 밤에 보면 비교적 번쩍거립니다. 어디에 비해서 번쩍거리냐고요.



여기에 비해서죠. 위의 주상복합 아파트 바로 앞의 전통시장입니다. 그냥 등돌리면 앞이고요, 사진에 안 찍힌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가서 왼쪽 건물 2층을 보면 태국 식당이 있습니다. 한국화된 태국 식당이 아니라 태국 국왕 사진이 걸리고 태국인들 모여서 당구치는 그런 곳이요.


사진을 보면 시장 내 가게 간판이 제법 정비되어 있는데 이것조차 없던 때 다녔던 생각이 나네요. 시장에서 무슨 카드냐고 꼽을 주시던 사장님 얼굴이 지금도 기억나는데(지식인은 뒤끝이 길어요) 어느새 지역화폐 아니면 장사가 안 되는 시대로 훌쩍 건너뛰었습니다. 그런데 시장 앞에 현금만 받는 가게가 둘이나 생겼으니 그또한 아이러니예요.


 


이 길을 경계로 신도시와 구도심이 갈립니다. 정확히는 신도시의 색채가 구도심을 물들이는 것이죠. 신도시에 걸맞게 구도심이 지저분했던 입성을 단정히 하는 것, 그것을 우리는 도시재생사업이라고 합니다. 



입주자 외 절대 진입금지를 써붙인 현수막이 눈에 띕니다. 구도심 거구자의 배제는 신도시의 특징 중 하나이죠. 하지만 구도심 색채를 완전히 거부할 수 없습니다. 왼쪽의 중국식품 가게가 증거입니다. 전통시장 안에 중국식품 가게가 하나 더 있습니다. 같은 가게인지는 모르겠네요. 한국 신도시 부동산에 대한 중국인의 관심이 느껴집니다. 근본적으로 중국은 상업의 나라입니다.



신도시을 맞이하야 구도심은 어떻게 변하고 있을지 궁금하여 주변을 뱅글 돌았습니다. 사진만 보면 오래되어 보이지만 오른쪽 건물 2층에는 고양이 강아지 미용실이 있어요. 반려동물 관련 가게의 다양화 / 증가세도 신도시의 특징입니다. 하지만 구도심 거주민들이 반려동물을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닙니다. 어쩌면 더 절절할지도 몰라요.


 


가로세로 대각선 횡단보도가 있어요. 대각선 횡단보도가 있으면 보행자가 편합니다. 그러나 걸어서 5분거리에 있는 구도심의 더 큰 사거리에는 대각선 횡단보도가 없습니다. 대우가 이리 다른 것이지요. 시청 공무원들, 아니 시의원들을 좀 혼내볼까요. 너희, 신도시랑 우리 차별하냐...? 

(가려서 잘 보이지 않지만 하얀 패딩 뒤로 폐지 리어카 할머니가 다가오고 있어요)



신도시와 구도심이 밀착하면 생기는 문제 중 하나입니다. 너무 위에서 올려다보니 부담스러운거죠. 얼마나 부담스러울까요.



신경쓰일만 하겠습니다. 살기 좋은 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마음을 챙겨야 합니다. 무시당하지 않고 늘 신경쓰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게 중요합니다. 


사진을 찍고 나서 주상복합 아파트 주변을 빙글 돌았습니다. 원래 이 지역은 근방에서 가장 심각하게 낙후되었어요. 안전이 걱정될 정도로 낡은 집들이 빼곡했습니다. 뒤집으면 가장 먼저 개발된 곳이라는 뜻이고, 원래는 제일 유복했던 지역이라는 의미지요. 하지만 시간에는 장사가 없지요. 7,8년 전에 모 대선후보급 정치인이 유세를 하러 왔다가 놀라워했던 기억이 났습니다. 서울 근교에 이런 곳이 아직 있느냐고요. 너 같은 게 아직도 정치판에 눌러붙어 있으니 그런 거라고 야단쳐 줄까 싶었지만 어쨌든 이렇게 되었습니다.


코로나19 때문에 변한 동네들 모양을 그동안 살피지 못했다가 오랜만에 기록을 합니다.



근처에 좋아하던 돈까스집이 없어져서 아쉬운 기분에 마지막으로 예쁜 간판을 찍었습니다. 얼마나 맛있을지 궁금하네요. 


사진에 찍히지 않아서 궁금할수도 있는데, 모스크와 전통시장 바로 앞에 삐까뻔쩍한 주상복합이 들어선 이유는 다른 게 아니고 학교 근접성 때문입니다. 걸어서 3분 거리에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있거든요. 10분만 걸으면 도서관 두 군데가 있고 대형 마트와 터미널이 있습니다. 중급 병원과 공원, 하천 산책길도 있고요. 15분 거리에는 지하철역도 있고 해서 그럭저럭 살기 나쁘진 않습니다. 그렇지만 뭔가 섞이지 않은, 기묘하고 정리되지 않은 요소들이 한 그릇 안에 불편하게 끼적거리는 느낌은 떨칠 수 없습니다. 한 번 나갔다 오면 머릿속이 어지럽거든요. 체계적이고 미학적인 도시계획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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