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구제일 수 있음
사실상 종강(?)을 맞아 혼자 카페에 갔습니다. 내 생각에 이 지역에서 가장 예쁜 카페인데 상호가 바뀌었어요. 원래 이름은 메종 드 샤, 고양이의 집이었는데 사람들이 기억하기에 어려웠나봐요.
소풍카페. 테이블마다 조그마한 생화를 장식해 두었습니다. 느긋하게 조용한 카페 분위기를 즐기고 싶었지만 위층이 워낙 시끄러운데다(때론 어른들이 아이들 못지않게 요란하죠) 음료가 워낙 맛있어서 컵을 금방 비워버리고 말았습니다. 빈 컵을 앞에 두고 멍하니 혼자 앉아있기 미안해서 나왔습니다.
이 카페까지 가려면 전통시장 옆길을 통해 구제특화거리를 통과해야 합니다. 안내문이 붙어 있네요.
'경안동 구제거리는 2010년부터 구제 점포가 생기기 시작하여 2021년 약 20여개의 점포가 줄지어 입점하여 경안동의 특색 있는 거리로 형성되었으며 주변으로 광주성당, 시립중앙도서관, 경기광주교육도서관, 광주초등학교, 광주중학교, 경안소공원, 경안근린공원(현충탑), 경안동 행정복지센터, 경안전통시장이 위치하고 있어 경안동의 경제, 문화, 교육의 중심이 되는 거리입니다.'
설명대로 구제옷 점포가 즐비한 곳입니다. 몇 년 가보지 못했는데 인도와 차도를 평평하게 만들어 사실상 걷는 거리로 만들었습니다. 점포가 좀더 많아졌는데, 꽃무늬 원피스의 유행이 돌아왔구나 싶더군요.
마음에 드는 카페도 발견했습니다.
맛을 떠나 상호가 아주 마음에 들어요.
'동물성 생크림'을 쓴 크림빵이라고 합니다. 생크림은 식물성이 나쁘다고 합니다. 사장님이 건강 상식이 있으시나 봅니다. 다음 번에 꼭 먹어볼 생각이예요.
구제거리가 2010년경부터 생긴 이유는 안내문에 적혀 있지 않지만, 나름 이 고장에서 살면서 추리한 이유가 있습니다. 다름아닌 외국인 근로자들 때문이지요. 아시다시피 2010년이면 이미 의류 유통이 인터넷에 자리잡은지 오래입니다. 요즘도 그렇지만 일반 옷가게를 찾아보기 힘든 시절이지요. 그래서 이 지역에 일하러 온 외국인들이 옷 살 데가 없는 겁니다. 금방 닳아 없어지는 작업복과 신발은 물론이고 귀한 휴일에 멋낼 옷, 고향에 사 보낼 옷도 필요합니다. 이들을 고객삼는 구제옷 가게가 점점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지요. 내가 보기에 구제특화거리가 시작되는 시점은 다름아닌 버스정류장입니다.
(덧붙임 : 지금 '무의류'는 다른 가게로 바뀌었습니다. 그래도 구제옷은 조금씩 팝니다.)
얼른 눈에 띄지 않지만 자세히 보면 버스정류장입니다. 정류장 앞의 '무의류'라는 점포가 있는데, 다름아닌 구제옷집이에요. 바로 이곳이 구제거리의 시작점이자 일종의 분기점입니다. 광주 외곽의 공장 근로자들이 물건을 사러 이 정류장의 맞은편까지 버스를 타고 옵니다. 버스에 내려서 가까운 전통시장과 마트에서 필요한 걸 삽니다. 특히 새로 도착한 근로자들은 구제거리에 가면 작업복 등 필요한 옷과 신발을 구하기 쉽습니다. 그리고 사진 속의 버스정류장에서 외곽-주로 곤지암이나 도척으로 나가는 버스를 타는 것이지요.
정류장에서 이동하는데 눈앞에 중앙아시아 사람 둘이 어정거리며 걸어오더군요. 참고로 사진 속 편의점 옆은 국적을 초월한 너구리굴로 공인받고 있습니다. 여성만 빼고요. 여성의 흡연율은 꾸준히 상승하는데, 흡연공간에서 여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건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같은 버스정류장 앞옆 복권방입니다. 복권이 문제가 아니고 외국인이 흔히 쓰는 선불폰을 판다는 게 눈여겨볼 포인트죠.
대개 외국인 근로자들은 이 버스정류장을 중심으로 생필품을 구입하고 여가를 보내지만(고향 노래가 서비스되는 노래방이 근처 건물에 있거든요)때로는 광역버스를 타고 아예 서울의 이태원으로 이동하여 같은 나라의 고향 친구들끼리 만나기도 합니다. 이태원의 골목골목은 이미 국적별로 구획화되었다고 하죠. 그래서 이들의 동선은 면이 아니라 점과 선입니다. 다시 표현하면, 외국인 근로자에 대해 논의를 하려면 경기 광주 시청 공무원과 이태원 구청 공무원, 구제거리 상인회와 이태원 상인회가 함께 마주앉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사람들은 결코 국가와 행정의 틀 안에서 살아주지 않습니다. 이민자가 아닌 정주인들도 마찬가지지요.(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