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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애령 May 31. 2023

종교 하나 사시죠(2)

단 구제일 수 있음

약간 흐린 날이 걷기에 더 좋습니다. 길도 평평해져서 즐거운 산책을 했답니다. 그리고 구제특화거리의 드러나지 않은 놀라운 특징을 발견했습니다.




통일교 교회군요.


정삼각형 모양의 특이한 건물입니다. 효율이 제법 떨어져 보이는 형태인데 그렇게 취한 이유가 있겠지요. 태극기를 같이 걸었다는 것도 특이합니다. 사진에는 잘 나오지 않지만 어린이집도 있습니다. 진입로의 포장상태를 보면 생긴 지 오래되었다는 걸 알 수 있죠.


사실 이 구제특화거리의 중심은 성당입니다. 부지도 넓고 아늑한 느낌을 주는 곳이예요. 오늘은 야외의 성모상만 찍었습니다.



꽃장식을 얹어 고아해 보입니다.


사진을 찍는 동안에도 동네 노인들이 나와서 이야기도 나누고 지친 몸과 마음을 쉬고 있었습니다. 성당이 중심지라는 증거는 하나 더 있어요. 원래 이 성당의 대각선 맞은편에 만화책 대여점이 있었거든요. 1990년대에 한참 유행하다 사라졌는데, 이 동네에는 2015년경까지 영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름 젊은이들, 문화적으로 즐길 거리를 찾는 사람들이 살았다는 거죠. 방문했을 때에는 만화책이 양도 많거니와 정리가 기가 막히게 잘 되어 있어서 다시 구경하러 오겠다고 마음먹었답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요.



있던 자리는 아직 임대가 들어오지 않았나봐요. 흔적을 기록할 겸 찍었습니다. 


구제특화거리의 종교 시설은 이 외에도 계속 나옵니다.



조계종은 아니지만 어쨌든 불도를 닦는 곳이겠죠. 연락처는 없는 걸로 보아 예약 없이 가도 되는 곳일까요?



구제특화거리의 (전통시장을 시작점으로 보아)끄트머리에는 이러한 대형 교회가 있습니다. 사진 한 장에 미처 담기지 않을 정도로 큽니다. 그러나 대기업이 있다고 해서 중소기업이 늘 망하라는 법은 없습니다. 




이 교회 바로 옆에 무당집이 있습니다. 높고 높은 십자가에 지지 않는 우뚝(?)한 일월성신기. 단 밤에는 안 보이겠죠. 주차장이 널찍한 걸로 보아 찾아오는 이가 많은가 봅니다. 당분간 없어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도 드네요.


이렇듯 구제특화거리에서는 중고 의류뿐만 아니라 헐벗은 영혼이 의탁할 다양한 종교 시설이 한데 모여 있습니다. 마음에 드는 곳이 없다면 가까운 모스크를 방문하셔도 좋습니다. (참조 : https://brunch.co.kr/@hyeyeunkimnvy9/127)


그렇지만 사람들의 영혼이 헐벗고 힘든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요. 구제특화거리를 벗어나면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괴로운 이유는 다름아닌 돈 때문입니다. 골목 끝의 세무서가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개인적으로 잊기 힘든 곳입니다. 왜냐하면 2014년 4월 16일 오전 10시에 여기 있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구제특화거리는 어떻게 될까요? 특성상 관공서(세무서)와 종교 시설은 한 번 자리잡으면 움직이기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건물도 그 안에 사는 사람도 급격히 낡아갑니다. 대부분의 구도심이 껴안은 고민거리입니다. 길을 평평하게 만든 결단은 높이 평가합니다. 카페와 공방들을 좀더 유도하고 도서관이 자리잡은 특성을 살려 공부모임 등을 끌어들이는 게 가능할까요. 


이 거리의 미래를 짐작할 사진 세 장으로 글을 마무리합니다.


 



건물 한 채가 이미 철거되었습니다. 철거된 모습은 스산합니다. 그렇지만 과감히 철거했다는 것은 거리가 살아날 희망을 품고 있다는 증거일수도 있습니다. 철거도 비용이 들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그 비용을 회수할 가망이 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고깃집인데 어째 느낌이 다릅니다. 처음에는 유리벽에 붙은 하얀 종이가 부동산 매물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면 죄다 고기 명칭입니다. 생등심 얼마, 꽃등심 얼마 하는 식입니다. 속을 뻔했죠. 정신 차리고 보니 부동산이었던 가게를 그대로 고깃집으로 간판만 바꾼 것 같아요. 




부동산이었을 거라는 추측의 증거. 가게 옆의 인테리어 업체입니다. 대개 음식점은 음식점끼리 모이는 법입니다. 고깃집 옆의 인테리어 업체는 어울리지 않아요. 그러니 저 고깃집은 아마 부동산이었을 겁니다. 부동산 옆 인테리어 업체는 어울리거든요.


이 고깃집이 부동산이었을 거라는 추측의 근거 하나 더. 이 건물은 구제특화거리의 끄트머리에 있습니다. 그러니 이 거리에 입주할 생각을 하는 사람 입장에선 거리를 쭉 걸어보며 생각을 정리한 다음 부동산을 방문하는 동선이 나오는 것이지요. 딱 그 위치입니다. 


부동산은 어쩌다 고깃집이 되었을까요. 아마도 당분간은 이 거리에서 부동산 거래는 맥이 끊겼을 겁니다. 그렇기에 바뀐 것이지요. 그렇지만 아주 불씨가 살아나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그래서 부동산 인테리어는 그대로 둔 겁니다. 날렵하게 업종을 전환해야 할 시점이 언제 올지 모르니까요. 가능성은 늘 그렇듯 반반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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