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필의 시작, 서검은구록(4)

김용 문학 속으로

by 주애령

당시 영조가 이 사안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으며 홍대용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느라 꽤나 고생한 듯하다. 홍대용이 접촉한 청 관리들이 하나같이 목이 날아간다며 입을 다물었기 때문이다. 영조는 건륭제가 신하들의 간언에 귀 기울이는지도 자세히 알고 싶어 했다. 간언이 받아들여진다면 통치가 건강하다는 증거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건륭제는 간언을 모두 물리쳤고 황후 사후에 새 황후를 세우지도 않았다. 건륭제 사후 청에는 딱히 명군이 나오지 않았으니, 영조의 예상이 들어맞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지금까지 카쉬가르에는 향비묘라는 유적이 남아 있으며 주요 관광지로 꼽히고 있다. 물론 실제 향비가 묻혀 있는 곳은 아니며, 아파크 소자와 그 후손의 무덤이 향비묘라고 불리는 것뿐이다. 카쉬가르는 신강 위구르의 최서단으로 엄연히 중국 영토이지만 좀처럼 중원의 문화가 느껴지지 않는 지역이다.


신강 위구르는 오랫동안 중원이 서역이라고 불러온 곳이며, 건륭제 시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중국 영토가 되었다. 강력한 군주였던 옹정제도 신강 위구르에 자리 잡은 준가르족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준가르족을 제압하고 위구르 지역을 정복한 황제는 다름 아닌 건륭제였다. 건륭제는 준가르족을 멸절시킨 뒤, 해당 지역 개발을 위해 한인들에게 대거 이주를 장려했다. 재미있게도 이때 반청복명 운동을 하던 한인들도 위구르 지역으로 이동했다. 건륭제의 의도와 관계 없이 청에 반감을 지닌 자들이 위구르로 모이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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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검은구록>에서 반청복명 한인들과 탄압받던 위구르인들의 유대감은 진가락과 향향공주의 사랑으로 표현된다. 이 사랑이 얼마나 강렬했던지, 진가락은 향향공주를 위해서라면 이슬람교로 개종하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러나 둘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향향공주는 자살한다. 향향공주의 시신은 관을 열어 보니 온데간데 사라졌는데, 이는 선녀가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처럼 김용은 향향공주를 용비처럼 전설적인 인물로 그렸다. 향향공주가 꽃을 매일 집어 먹어 몸에서 향기를 뿜어낸다는 설정도 그렇다. 실제로 옛 중국에서 이슬람교는 꽃의 종교(花敎)라고 불리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김용은 작품에 서역을 자주 등장시켰다. <백마소서풍白馬嘯西風>는 투르판에 있었던 고창국을 소재로, <천룡팔부天龍八部>의 일부는 서하국을 배경으로 삼기도 했다. 신강 위구르도 엄연히 중국 역사와 전통의 일부를 차지한다는 의식이 반영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현재 중국은 위구르인을 극심하게 탄압하여 세계의 지탄을 받고 있다. 죽기 직전, 김용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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