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 문학 속으로
한족의 정신승리, 건륭제 출생의 비밀
김용의 고향 절강에는 전당강(錢塘江)이 있다. 항주(杭州)를 지나 동중국해로 흘러드는 688킬로미터에 이르는 강이다. 전당강보다 바닷물의 수위가 높아지면 강물이 역류하는 조석 해일 현상이 발생하여 항주에 홍수를 일으킬 정도다. 때로는 2, 3미터에 이르는 높은 해일이 올라오기도 한다. 이 해일을 진정시키고자 육화탑이 지어졌는데 <수호전>에 등장하는 노지심이 이 탑 안에서 입적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서검은구록>의 주인공 진가락은 돌아가신 부모님의 옛집을 찾아갔다가 건륭제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다. 실은 건륭제는 한족인 해녕 진 씨의 아들이며 옹정제가 딸과 바꿔 친 것이었다. 그래서 건륭제는 친부모의 사당을 으리으리하게 지어 은밀히 공양하고 있었다. 부모의 사당에서 친형제로서 처음 마주한 진가락과 건륭제는 해일이 미친 듯이 몰아치는 전당강 가를 말없이 걷기만 한다.
건륭제가 한족이라는 설은 물론 허구에 불과하다. 건륭제의 모후는 아버지의 지위가 한미했지만 엄연히 만주인 뉴호록 씨이며 고조부 대에서는 홍타이지의 장인(즉, 누르하치의 사돈)을 배출했다. 사실 따져보면 오히려 한족 혈통은 건륭제의 조부 강희제가 이어받았다. 강희제의 모후가 요동 동 씨로서 한족 출신 만주인이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청 왕조가 멸망하기까지 건륭제 한족설은 끊이지 않았다. 심지어 건륭제의 남방 순행은 친부모를 만나기 위해서라는 소문마저 떠돌았다. 이러한 이야기는 민중들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건륭제가 순행 중에 딸을 얻었다는 또다른 소문을 낳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인기를 끈 중국 드라마 <황제의 딸>의 모티프다.
원래 밑바닥 소문이란 복잡하기 짝이 없는 세상사를 쉽게 해석하려는 상상력의 결과다. 청나라는 명 멸망 이전 북경과 중원 지역을 철저히 약탈하고 학살하여 백성들의 원한을 쌓아 올렸다. 그렇지만 막상 건국한 뒤에는 중국 역사상 최고의 명군을 배출했다. 강희제는 <강희자전康熙字典>를 편찬하여 한자 문화를 집대성했고 옹정제는 강력한 황권으로 국가의 재정과 군사력을 반석 위에 올렸다. 건륭제는 위구르와 티베트를 안정시켜 현대 중국의 국경선을 완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듯 청 왕조는 반청복명을 꿈꾸는 자들이 얼굴을 붉힐 정도로 번영과 태평성대를 구가했다.
한인들은 청나라가 명나라와 비교도 안 되는 성군들을 배출하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갑자기 만주인들이 개과천선을 한 것일까? 그렇다면 반청복명을 접어야 하는 것인가? 그게 아니라 사실 건륭제는 만주족이 아니라 한족이기에 한인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푼 것이다. 따라서 지금 청 왕조는 만주인의 것이 아니라 한인의 것인 셈이다! 그러므로 반청복명은 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