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령동 이야기
대단히 더운 날씨였지만 쌍령동을 돌아봤어요.
버스정류장 이름을 보면 예전에 이 지역이 어땠는지 짐작이 갑니다. 지역이 개발되면서 오래된 지명들은 정류장 이름에 흔적을 남기게 되죠. 가령 '김촌말' '최촌마을' 식으로. 아마 집성촌이었나봐요.
이 곳에 제법 오래 살았는데도 지역 슬로건을 처음 알았습니다.
'쌍령'이라는 이름에서 드러나듯이 이곳은 커다란 고개가 초월읍과 경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 산들을 뚫고 어떻게 개발하느냐가 고민이었던 거죠.
버스가 고갯길에서 유턴하는 장면입니다. 돌아오는 길에 마침 버스가 들어와서 찍었죠. 처음 이사왔을 때에는 얼마나 아슬아슬하던지... 지금도 볼 때마다 좀 걱정되요. 내리려는 승객들이 먼저 일어났다가 넘어져서 다치는 사고가 잦은데 그때마다 버스 기사가 책임진다고 합니다.
이 영상을 통해 '고개를 넘어 미래로 향하고' 싶은 쌍령동이 어떤 난관에 부딪쳤는지 잘 알 수 있죠.
http://www.vision21.kr/news/article.html?no=227414
버스가 유턴하는 버스정류장에서 10분 정도(저는 걸음이 느려서) 걸으면 무명도공의 비가 나옵니다. 매년 제향제가 거행됩니다. 박정희 정권 실세였다가 퇴촌으로 낙향한 이후락씨가 기부를 해서 세워진 비석이군요. 경기 광주가 여러 모로 보수적인 곳이라 지역 정가에서는 '경기도의 대구'라고 부른답니다. 물론 알고 보면 나름의 이유들이 다 있더라고요.
쌍령동은 아파트가 많고 지금도 아파트를 (때려) 짓고 있는데, 그 중에 가장 먼저 지어진 단지는 사실상 산꼭대기(?)에 있답니다. 산 중턱을 좌악 밀고 4개 단지 1000세대가 조금 안 되는 규모로 지었죠. 추측으로는 아마 그 자리가 사람 사는 자리가 아니라 가마터가 아니었나 싶어요. 일단 가마터는 경사가 완만한 산에 많이 짓습니다. 땔감을 구하기 쉬울 뿐만 아니라 경사를 따라 가마를 죽 올려 지으면 도자기를 굽는 연기가 자연스럽게 위로 올라가 빠지거든요. 그리고 개발을 하려면 사람이 원래 살던 곳보다는 가마터가 조금 더 토지수용이 쉬웠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아파트 단지가 지어졌을 거라고 추측하는 거죠. 어디까지나...
그리고 그 아파트 단지의 정류장은 아파트 단지명입니다. 만약 마을이 있었다면 주민들의 요청으로 정류장에나마 이름이 남았을 수도 있었을 거예요. 추측대로 마을은 없었고, 정류장 이름을 '가마터'라고 지었다면, 새 아파트를 사서 들어오는 사람들 입장에서 뭔가 낯설었을 수도 있죠. 정류장 이름을 듣고 버스를 내려야 하는데 "다음 정류장은 가마터입니다."라고 하면 미처 못 알아듣고 지나칠 수도 있지 않겠어요? 서울에 살다가 경기도에 이사온 사람이라면, 버스를 잘못 타거나 한참 후에 내리고 나서 "여긴 어디, 난 왜 어쩌다 경기도민이 되어서..."하면서 눈물을 닦아 본 적이 있었을 겁니다.
어쨌든 '쌍령동'이라는 정류장명은 무명도공의 비가 위치한 곳보다 한 정거장 전에 나옵니다. 아마도 그 자리가 본래 쌍령동, 토박이에게는 '쌍령리'였겠죠. 동으로 승격되어도 '리'자를 붙여 부르는 것은 이주민과 토박이를 구별하는 중요한 언어 습관입니다.
무명도공의 비를 지나 큰길가로 나왔습니다.
새로 지은 아파트 단지 앞 잘 가던 밀키트집의 폐업을 보고 팬데믹이 끝났다는 사실을 절감했어요. 여기서 많이 사다 먹었는데... 외식을 별로 즐기지 않는지라.
그래도 저 빈 자리에는 금방 가게가 들어올 거예요. 맞은편에 또 짓고 있는 아파트. 자세히 보면 아파트 공사의 소음 진동에 항의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습니다. 그런데 현수막을 건 아파트를 지을 때에는 소음 진동에 먼지가 없었을까요?
어쨌든 오늘도 아장아장 걷기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