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폭염, 폭염, 더위... 습도와 저기압까지 겹쳐 외출을 거의 못했어요. 하루는 모자를 안 쓰고 잠깐 나갔다가 두통이 오기도 했고요. 기후재난은 현실입니다. 어차피 나가기 힘든 날씨라 인터넷을 통해서라도 돌아다니는 느낌을 받고 싶어서 여기저기 검색하던 중이었죠.
원래 오래된 액션영화를 즐겨보는 편인데(CG가 없으니까) 이 영화는 1976년작입니다. 2016년에 극장개봉했고 지금은 OTT에서 볼 수 있네요. 그런데 이 영화에서 성룡은 주연이 아니고 준조연급입니다. 주연은 담도량이라는 발차기 잘 하는 무술배우이고 홍금보도 나와요. 감독은 오우삼인데, 배역을 맡을 사람이 없어서였는지 본인도 서생 분장을 하고 나와서 연기를 합니다. 물론 잘 못해요. 이 때는 성룡도 연기도 딸리거니와 외모도 다릅니다. 쌍꺼풀 수술하기 전이거든요.
즉 이 영화는 성룡의 쌍꺼풀 수술 전의 외모와 연기를 볼 수 있는 극장 개봉작입니다. (뭐지)
줄거리는 소림사부터 시작하는데, 그 소림사가 언제 한반도로 피신했는지 너무나도 익숙한 어느 한국의 뒷산이 배경입니다. 어쨌든 배신자 홍금보를 잡으라는 지시를 받은 담도량은 순박한 시골 청년 성룡을 만나 부정한 권력을 쥔 관리들과 싸웁니다. 오래된 홍콩 액션 영화들이 그렇듯이 이 영화도 <수호전>부터 내려온 강호와 협객의 세계관을 스크린에서 구현하지요.
당시 홍콩 액션 영화들이 많이들 그랬듯이 이 영화도 상당 부분 한국에서 촬영했습니다. 옛날 시절을 배경으로 해야 하는데 홍콩에는 구룡채성 정도 말고는 민국시대 이전 유적이 전혀 없으니 비교적 유적 보존이 잘 된 한국에서 찍었던 거죠. 그뿐만 아니라 일제 강점기 말기부터 한국은 영화를 만들어온 경험이 있고, 무술인들도 있었으니까요. 영화 선진국인 일본과도 가깝습니다. 전쟁 위험이 도사리는 것만 빼면 장점이 많은 촬영지였죠.
그래서 당시 홍콩 영화를 보면 경복궁 자료화면이나, 종묘로 추정되는 곳에서 휙휙 주먹과 발을 날리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아마 그런 영화를 찍었던 사람들은 북경의 자금성을 흑백사진으로만 보았겠죠. 경복궁을 보고 어떤 느낌이 들었을까요?
한편 <소림용호문>은 영국에서 블루레이로 출시되었다고 합니다.
사진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JyfyodM5rzE (유튜브 소마시네마)
성벽 모양이 평평한 걸로 보아 지금의 남한산성 지화문인 듯합니다. 이 장면에서 성룡은 문을 지키는 병졸과 관료들을 피해 담도량을 친척으로 가장하여 데려갑니다. 남한산성 문은 부당한 권력을 상징하는 건축물인 셈이고요. 스틸컷을 자세히 보면 '동문'이라는 현판이 따로 붙어 있습니다. 촬영을 위해 따로 붙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https://brunch.co.kr/@leekih111/24
지화문은 지금 경기 광주 남한산성면 산성리에 있습니다. 정확하게는 지화문은 제자리에 늘 있어왔는데, 행정구역만 재편된 것이죠. 위례 신도시에서 정동쪽인데 1970년대에는 아마 교통이 불편했을 겁니다. 어떻게 갔을까요? 영화 촬영 장비를 가득 싣고 시골 마을이었던 하남을 지나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남한산성까지 가던 모습이 궁금하네요.
이 영화에는 지화문만 나오는 게 아니라 한겨울 계곡 등 대부분의 장면이 야외에서 진행됩니다. 이왕 남한산성 간 김에 근처의 개활지에서 마음껏 촬영했을 거란 추측도 들어요. 지금 성룡을 비롯해 오우삼도 활동중인데, 한국의 촬영 경험을 인터뷰에서 들어본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특히 서울 외부의 지역에서.
지화문에 대한 설명은 거의 대부분 조선시대와 인조에 대한 내용입니다. <소림용호문>에 대한 내용은 고사하고 홍콩 액션 영화 촬영지라는 내용은 찾아보기 어렵죠. 홍콩 액션 영화 팬들도 그 부분에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을지로와 피맛길을 헤집고 다니는 외국인 여행객들도 그럴까요? 아니면....
"뭐라굿??? 여기에서 재키 챈과 존 우가 젊었을 때 영화를 찍고 갔다고????"
홍콩에서 성룡이 만들어온 액션 영화는 마블 이전의 할리우드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고, 홍콩 액션 영화는 일본 찬바라 영화와 한국의 무술에서 영향받았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지만 박정희 시대 한국 영화는 액션에서 멀어졌고 홍콩 영화는 축적된 자본으로 세트를 구비하면서 점점 한국 로케 촬영을 줄이게 되었지요. 그렇게 발전한 홍콩 영화는 이후 한국 영화와 대중문화에 지금도 노스탤지어를 드리우고 있습니다. 그런 역사의 한 조각이 남한산성에도 있는 것이죠.
지화문 앞의 설명판에 적힐 내용을 나름 상상해서 추가해봅니다.
'정조 3년 성곽을 개보수할 때 지화문이라 칭하였고 남한산성의 4대문 중 가장 크고 웅장하며 유일하게 현판이 남아 있다. 1976년 오우삼 감독 성룡 주연의 액션 사극 영화 <소림용호문>이 이 곳에서 촬영되었으며 지화문의 당당한 풍모가 스크린에 잘 나타나 있다. 이 곳 외에도 여러 개활지가 촬영지로 이용되었다고 추정된다. 남한산성은 조선시대의 유적일뿐만 아니라 홍콩과 한국의 영화 발전에도 그 흔적을 남겼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