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아름다운가(1)

미학의 정치성

by 주애령

X(구 트위터)에 흥미로운 기사가 올라왔다. 보수 진영의 젊은 정치인이 책방을 열면서 한 멘트가 주목을 받았다. “책방 카페 등 예쁘고 세련된 것들, 혹은 정치인이 했을 때 의외거나 신선한 아이템들은 왜 항상 좌파 진영의 전유물인가 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여기에 내가 멘트를 붙여 인알(인용 리트윗)한 트윗이 1천 5백회 넘게 인용됐다. 내가 붙인 멘트는 다음과 같았다. “원래 미학은 정치적이죠. 무엇이 아름다운지 결정하는 과정 자체가 이데올로기를 수반합니다.”



https://www.metroseoul.co.kr/article/20240630500280?sns=tw



미학이 정치적이라는 말은, 무엇이 아름다운가에 일종의 결정 과정이 개입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나는 오픈 콘크리트 건물을 싫어한다. 안 그래도 시멘트 박스인 아파트에 어쩔 수 없이 살고 있는데 비슷한 건물을 보는 게 솔직히 싫다. 그런데 어느 날 지인 대여섯 명과 오픈 콘크리트 스타일로 지어진 카페에 가게 됐다. 지인들은 모두 이 카페가 아름답다고 칭찬한다. 자, 독자들이 나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오픈 콘크리트 스타일이 얼마나 근대적이고 상상력이 부족한지, 내 취향의 정당성에 대해 설명을 시작할까? 아니면 대충 웃으며 넘어갈까.


스크린샷 2025-03-11 오후 6.12.52.png 이게 말이죠 여러분 의외로 변색이 잘...(이하생략)


대부분의 독자들도 나도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후자를 선택하는 이유는 물론 오픈 콘크리트 에 대한 취향을 바꿔서가 아니다. 내 취향은 변함이 없지만, 지인들과의 화기애애한 관계를 위해 오픈 콘크리트가 볼 만하다는 미학적 결론에 ‘합의해준’ 것이다. 거기서 나와 취향이 다른 지인들은 나보다 숫자가 많다. 표에서 밀린다. 게다가 거기서 오픈 콘크리트에 대한 반감을 은밀히 감추고 있는 나의 속내를 미처 눈치 채지 못한 지인 중 하나가 기분이 좋아진 나머지 “내가 케이크 쏜다!”라고 외치기라도 한다면 나는 오픈 콘크리트가 아름답다는 미학적 결론에 대한 합의를 후회할 이유가 완전히 사라진다.


그렇다면 무엇이 아름다운가를 결정하는 데 숫자나 재력만 개입하는가? 꼭 그렇지는 않다. 또다른 내 친구가 나를 집에 초대한다. 그런데 이 친구의 집이 하필 오픈 콘크리트다. 이 친구는 모처럼 스위트홈에 친구를 초대하여 즐거운 시간을 보낼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내가 네 집 생긴 게 마음에 안 든다고 했다가는 기분을 잡칠 게 뻔하다. 이 친구의 기분을 상하게 해서 내가 손해를 보면 봤지, 득볼 게 뭐가 있겠는가. 그래서 나는 미학적 합의를 넘어 적극적인 동의를 해 줄 준비를 한다. “오, 네 집 멋있다. 무척 아름다...(꿀꺽)...워.” 나의 미학적 동의 덕분에 내 친구는 기분이 더 좋아져서 내게 이것저것 대접해준다. 이렇듯 취향, 또는 미학적 소신을 포기한 덕분에 나는 일련의 무형적 이득을 얻는다. 이렇듯 무엇이 아름다운지를 결정할 때에는 숫자나 재력만 개입하는 건 아니다. 관계와 그에 따른 이해득실도 개입할 수 있다.


여기까지 읽었다면 “미학은 정치적이다”는 서술에서 정치란 여의도나 용산, 백악관 등지에서 벌어지는 현실 정치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정치의 사전적 의미는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라고 나오지만, 살아보면 일상이 정치의 연속이다. 이 때의 정치는 권력과 시간과 자원을 분배하는 일련의 원칙과 체제라는 의미다. 누가 결정할 것인가? 누가 얼마나 자원을 더 분배받을 것인가? 누구의 발언권이 더 강할 것인가? 권력도 점점 여러 가지로 분화한다. 그중 아름다움도 물론 권력이다. 더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간주하는 것이 시장에서 승리를 거둔다.


미학의 정치성이 가장 알기 쉽게 드러나는 장소는 바로 미인대회다. 지금보다 위상은 훨씬 못하지만 미스코리아 대회는 계속 열리고 있다. 미스코리아에 출전하려면 키, 체중은 물론 팔다리와 상하체 비율과 발사이즈까지 모두 표준 범위에 들어가야만 한다. 그리고 모두 똑같은 수영복을 입고 똑같이 부풀린 헤어스타일(아마 얼굴을 작게 보이려고 그랬던 것 같은데)과 거의 비슷한 화장을 하고 똑같은 미소와 포즈를 지어 보인다. 다들 똑같아 보이는데 이들 중 미세한 차이를 감별해내는 심사위원은 거진 중년 남자들이다. 남자들로만 쭉 깔면 좀 무안한지 가끔 미용실 여자 원장님도 끼워 준다. 이 대회의 목표는, 아름답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딱 셋만 골라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준은 이미 정해져 있고 거기서 탈락되면 덜 아름다운 사람이 된다. ‘누가 가장 아름다운지’ ‘합의를 거쳐’ ‘공정하게’ 결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뽑힌 후보에게 부와 명성을 안겨준다. 앞서 말했듯이 정치란 권력과 시간, 자원을 분배하는 일련의 원칙과 체제이다. 그러니 미스코리아 대회가 정치 행사가 아니면 무엇인가.


흔히 미스코리아 대회는 남성이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함으로써 여성이 인간으로서 가진 다양한 잠재력을 은폐시키는 가부장적 행사로 비판받아 왔다. 수영복 심사를 폐지하는 등 나름의 변화를 위해 노력해 왔지만, 아무래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가려면 먼 것 같다. 사실 여성의 경칭이 미스/미세스가 아닌 미즈로 바뀌어 왔는데 그것조차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전세계에서 미인대회가 쇠퇴한 근본적인 이유는 아름다움에 대해 매우 협소하고 획일적인 기준을 들이밀어 왔기 때문이다. 딱 두세 명만이 가장 아름답고, 다른 참가자들은 덜 아름답거나 아름답지 않다는 결론은 더 이상 전인류의 합의와 일치하지 않는다. 이제는 아름다움이란 하얀 피부와 파란 눈, 부풀린 금발에 뼈와 피부가 최대한 근접한 수준에 머무르지 않는다. 누구나 자기 취향을 갖고 자기만의 아름다움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즉 아름다움의 기준이 대폭 민주화된 것이다.(계속)






keyword
작가의 이전글2024 서울 카페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