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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애령 Apr 08. 2021

청년들의 방이 엉망진창인 이유

프랑스 그래픽 노블 중 <대성당의 비밀>이라는 단편이 있다. 한 건축가가 정교하고 거대한 대성당을 짓는다. 그렇지만 테이블에 놓인 돌잔 하나를 들어올리는 순간 대성당은 완벽한 균형을 잃고 무너진다. 이 단편은 인간의 탐욕을 비판하는 내용이지만 살다 보니 살림과 정리야말로 돌로 지은 대성당 같다. 하나만 잘못 움직여도 전체가 바뀌는 구조다. 그렇기에 어릴 적에 물건 하나 사서 아무 생각 없이 부엌 찬장에 놔뒀다가 엄마의 잔소리를 들어본 경험이 이해가 간다. 나중에 이러저러한 물건을 배치하기 위해 일부러 비워두는 건데 그 공간에 변경이 가해지면 살림 전체의 구조가 어그러지기 때문이다.


그 구조를 쌓아올리기까지는 최소한 오륙 년의 세월과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 쇼핑 실수, 물건 배치 실수가 축적된다. 그런 살림의 구조 속에 태어난 아이들은 자라면서 왜 이 물건이 이 자리에 있어야 하는지 당연히 이해하지 못한다. 부모는 아이를 위해 완벽한 구조를 추구하지만, 아이 입장에서는 다른 사람이 이미 만들어 놓은 살림 구조 속에서 살아야 한다. 그렇지만 아이가 어른이 되면 자기 스스로의 욕구와 취향을 충족하는 살림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부모가 그랬듯이 아이도 이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하고, 부모가 보기에 아이는 늘 어지르기만 한다.


집은 인간이 사는 장소다. 산다는 것은 먹고 자고 싸고 씻는 토대 이상의 것이다. 그렇기에 집의 주인은 그 공간에 자기만의 질서를 세우기 마련이다. 부모의 살림에서 빠져나온 아이들은 청년이 되고 자신만의 질서를 세워야 하는 시간을 맞는다. 전기밥통과 냉장고를 두는 위치부터 시작해서 믹서기를 산다면 어디에 보관할지도 생각해야 한다. 이러한 질서를 만들려면 기존에 알던 부모의 질서를 파괴해야 한다. 그래서 청년들의 방은 종종 엉망진창이 된다. 책상에 전기 밥통이 올라가기도 하고 신발장에 접시가 놓이기도 한다. 대책 안 서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름의 질서를 만들기 위한 창조적 파괴의 과정이다. 그러니 너무 잔소리하지 말자. 



사족) 그래도 부모로부터 독립하고 오 년쯤 지나면 나름 살림의 중수 정도는 되어 있어야 한다. 여전히 방이 어지럽다면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 준비를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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