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정은 유복자지만 아버지의 역할을 대신해줄 어른들이 많았다. 꿋꿋한 성품을 물려준 어머니와 의리의 화신 강남칠괴, 전사 철별과 매초풍의 위협으로부터 지켜준 마옥 도사 등등. 그렇지만 곽정에게 아버지 역할을 가장 많이 해준 사람은 북개 홍칠공이다. 홍칠공의 북개라는 호칭은 북쪽의 거지라는 뜻이다. 북쪽 거지라는 말은 북방 민족과 전쟁을 치러 온 중국의 역사와 관련이 깊다. 북방 민족이 군사를 일으키면 거기 살던 백성들은 피난민이 되어 남쪽 지방으로 내려오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이나 옛날이나 전쟁을 피해 도망친 사람들은 거지꼴을 면하기 어렵다. 남쪽 지방에 살던 사람들은 북쪽에서 끝없이 내려오는 피난민들이 거지떼라고 생각하기 십상이었을 것이다.
물은 높은 위치를 마다하고 아래로 내려오기 때문에 겸손하고 부드럽다고 해석된다. 작품 속 홍칠공의 성품도 곽정, 황용과 곧잘 농담도 주고받는 등 소탈하기 그지없다. 성격이 모난 황약사와 구양봉 사이를 중재할 때에도 홍칠공의 유연한 성격이 두드러진다. 물론 홍칠공도 화를 내면 무섭다. 마치 잔잔한 물이 홍수가 나면 가뭄보다 무서운 피해를 내듯이 말이다. 구사하는 절기 항룡십팔장도 강맹한 내공을 단번에 홍수처럼 쏟아 내는 간단한 방식이다. 그 이름에도 비와 구름을 부리는 용(龍) 자가 들어가 있다.
물은 지혜를 상징하기에 학문이나 예술과 관련이 깊다. 깊은 물은 끝없는 지혜의 은유이기도 하다. 학자나 예술가가 아이디어가 생기면 자기만의 방에 틀어박히는 모습이, 마치 소리도 없이 증발해 버리는 물과 비슷하기도 하다. 식욕이나 성욕 등의 욕망도 물로 표현된다. 한국과 일본 공히 성매매가 오가는 술집 장사를 ‘물장사/미즈쇼바’라고 표현한다. 물은 생명을 이루는 기본적인 요소이기에, 생명을 유지하는 식욕과 생명을 새로 만들어내는 성욕이 물로 표현되는 것이다. 홍칠공이 하도 식탐이 강한 것은 거지이기도 하지만 물을 상징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곽정과 황용은 한쪽 부모를 일찍 잃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곽정은 아버지를, 황용은 어머니를 잃었다. 전통적인 가족 관계에서 동일 성별의 부모님은 역할 모델이 된다. 곽정의 성장 과정은 자세히 서술되지만 황용의 성장 과정은 거의 나오지 않기 때문에 독자들은 상상력을 펼친다. 무공은 가르쳤겠지만 황약사는 인내심 있게 가르칠 타입이 못 되고, 황용은 흥미가 없으면 금방 집어치우는 성격이다. 그렇기에 황용은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을 것이다. 배고파지면 혼자 밥 해 먹고, 그러다 요리 솜씨가 늘어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었을 것이다. 그래서 황용은 곽정을 만나자 요릿집에서 요리부터 잔뜩 시킨다. ‘혼밥’을 질리도록 먹어왔기 때문에 좋아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잔뜩 먹는 게 어릴 적부터 소망이지 않았을까.
곽정과 요리를 시켜 먹는 장면에서 온갖 요리 이름이 호명되는데, 이 때 황용과 곽정의 환경 차이가 드러난다. 황약사를 아버지로 둔 황용의 이른바 ‘문화자본’은 만만치 않다. 황약사의 교양과 학문의 깊이가 대단하기 때문이다. 무공은 기본이고 선비로서 알아야 할 시, 서화, 음률에도 능했다. 취미가 문화재 수집이고 온갖 잡학에도 따라갈 사람이 없다. 심심하면 새로운 무공을 만들어내는지라, 가짓수로 치면 구사할 줄 아는 무공도 상당히 많다. 화초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나무는 물과 햇빛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잎사귀 하나라도 더 피우려고 안간힘을 쓴다. 다양한 크기의 잎사귀 더미를 팔랑대는 나무의 모습은 수많은 분야에서 재주를 과시하는 황약사와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