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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애령 Jul 04. 2021

[판타지 단편동화] 까마귀 엄마 이야기(1)

옛날에 한 가난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소녀는 어두운 동굴 속에서 혼자 살았습니다. 동굴은 어둡고 먹을 것도 없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엄마가 와서 먹을 것을 주고 갔습니다. 소녀는 엄마를 까마귀 엄마라고 불렀습니다. 왜냐하면 엄마는 정말로 까마귀 모습을 하고 있었거든요.

소녀는 매일 엄마를 기다리며 동굴에서 살았습니다. 엄마는 소녀에게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동굴 밖에 나가면 곰과 늑대가 있다고 엄마는 말했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소녀가 꼭 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동굴 속에는 엄마가 모아 놓은 온갖 금은보화가 가득했거든요. 이 보물을 지키는 것이 소녀의 일이었습니다. 까마귀 엄마가 말하기를 동굴을 지키는 것이 소녀의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엄마가 모은 보물은 세상에서 제일 귀한 것이기 때문에 꼭 지켜야 한다고도 말했습니다. 지금 동굴의 보물은 모두 엄마의 것이지만 엄마가 죽고 나면 소녀의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귀하디 귀한 내 아가야, 동굴의 보물을 잘 지켜야 한다.”

가난한 소녀는 까마귀 엄마가 가져온 밥풀을 먹으면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동굴 바깥에는 금은보석을 빼앗아 가려는 늑대가 많단다. 그러니 내 아가가 잘 지켜야 한단다.”

“엄마, 그런데 배가 고파요. 더 먹고 싶어요.”

“더 먹으면 안 된단다. 살이 찌면 보기 싫지 않니.”

까마귀 엄마는 마치 손으로 쓰다듬듯 부리로 소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습니다. 머리카락 몇 올이 부리에 물려 뽑혀 나왔습니다.

“엄마는 어디서 밥을 잡수세요?"

“그런 걱정은 말아라. 너나 다 먹으렴.”

소녀는 까마귀 엄마가 가져온 밥풀을 다 먹었습니다, 배가 고팠지만 엄마가 쓰다듬어 주어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동굴 속에는 보물이 쌓여갔습니다. 소녀는 동굴을 나가지 않고 자리를 지켰습니다. 반짝이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좋아하는 까마귀 엄마는 보물을 열심히 물어다 날랐습니다. 동굴은 점점 좁아져서 소녀가 눕거나 앉을자리도 없을 정도였습니다. 까마귀 엄마는 점점 보물을 많이 가져왔습니다. 한 입에 다 물지 못할 정도로 많이 가져올 적도 있었습니다. 소녀는 엄마가 걱정이 되었습니다.

“엄마, 보물을 정말 많이 물어 오시네요. 힘들지 않으세요?”

까마귀 엄마가 대답했습니다.

“괜찮단다, 아가야. 다 너를 위해서 하는 일이란다.”

“지금도 이렇게 금화가 많아요. 나가지 마시고 저와 같이 있어요, 엄마.”

“아가야, 엄마도 내 아가와 같이 있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단다. 세상은 너무 무섭고 험하단다. 그래서 엄마는 더 많은 금을 모아야 한단다. 그래야 내 아가도 편하게 살 수 있지 않겠니.”

이렇게 말하면서 까마귀 엄마는 날개로 소녀의 등을 쓰다듬었습니다. 소녀는 외로웠지만 꾹 참았습니다.

까마귀 엄마는 일주일에 한 번은 오다가 어느새 한 달에 한 번, 두 달에 한 번 동굴에 왔습니다. 가난한 소녀는 점점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동굴 안에는 보물이 점점 많이 쌓여 휘황찬란했지만 소녀는 외로웠습니다. 배도 고팠습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금화를 밥 대신 먹을 수는 없었거든요. 시장에 가서 금을 주고 쌀을 사 오고 싶었지만 바깥에는 보물을 노리는 도둑이 많다는 엄마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혼자 바깥에 나갔다가 늑대를 만날까 봐 겁도 났습니다. 가난한 소녀는 배고픔을 참고 엄마를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드디어 엄마가 왔습니다. 오늘도 부리에 무언가를 잔뜩 물고 왔습니다. 하지만 가난한 소녀는 배가 고파서 엄마가 가져온 물건이 무엇인지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가야! 이것 보렴! 엄마가 진주를 가져왔단다! 예쁘지?”

“네, 엄마. 참 예뻐요. 그런데 먹을 것은 없나요?”

“여기 있단다, 내 아가야.”

까마귀 엄마는 여느 때처럼 소녀에게 밥풀을 주었습니다. 소녀는 얼른 먹었습니다. 하지만 밥풀이 너무 적어서 배가 차지 않았습니다.

“엄마, 밥이 너무 적은데 먹을 게 더 없나요?”

“어머나, 내 아가가 벌써 밥을 다 먹었구나. 밥을 많이 먹으면 살이 찐단다. 배가 고파도 조금만 참으렴.”

“네, 엄마. 그런데 배가 고파서 다리에 힘이 없어요.”

“그래도 참으렴. 살이 찌면 보기 싫단다. 보기 싫으면 내 아가가 시집을 가지 못하잖니.”

이렇게 말하면서 까마귀 엄마는 검은 날개를 펴고 날아가 버렸습니다. 가난한 소녀는 손을 흔들며 엄마를 배웅했습니다. 다시 배가 고파졌습니다. 가난한 소녀는 이미 아기가 아니라 어느 정도 자란 아이가 되었거든요. 그래서 아기들이 먹는 만큼 먹으면 배가 고플 수밖에요.

며칠이 지나도 엄마는 오지 않았습니다. 가난한 소녀는 배가 또 고파졌습니다. 소녀는 까마귀 엄마가 가져온 보물을 차곡차곡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소녀의 몸이 점점 커져서 동굴 안이 좁기도 했지만 엄마가 한 말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엄마는 이 보물을 보기만 해도 배가 고프지 않단다.’

가난한 소녀는 자신도 금은보석을 보고 만지면 배고프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동굴 안을 정리했습니다. 동굴은 왕이 사는 궁전처럼 휘황찬란하게 빛났습니다. 하지만 배고픔은 가시지 않았습니다. 

“아, 배고프다.”

소녀는 혼잣말을 하면서 은 항아리 위에 올라앉았습니다. 시장에 가서 먹을 것을 사 오고 싶었지만 조금 불안했습니다. 동굴을 비운 사이 도둑놈이 와서 훔쳐갈지도 모르니까요.

“어떡하지?”

소녀는 다시 중얼거렸습니다. 몸을 조금 움직이자 정성 들여 쌓아 놓은 보석 더미가 찰그랑대며 무너져 내렸습니다. 동굴에서 살기에 소녀의 몸이 너무 커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 한 번 나가 보자.”

‘멀리 가지 않으면 괜찮겠지.’ 하고 소녀는 생각했습니다. 가난한 소녀는 주머니에 금화 한 닢을 넣고 산호 가지를 넘어 동굴 바깥으로 나갔습니다.

까마귀 엄마는 누구도 찾아내지 못할 만큼 외진 곳에 동굴을 팠습니다. 동굴의 입구는 높은 절벽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하지만 가난한 소녀는 절벽 위로 올라가는 방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만약 누군가 동굴로 들어오면 바로 도망갈 방법을 까마귀 엄마가 일러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소녀는 동굴 입구에 드리워진 덩굴줄기를 타고 올라갔습니다. 절벽 위는 잡초가 가득한 풀밭이었습니다.

“여기까지만 가자.”

절벽 위로 올라온 소녀는 혼잣말을 하면서 풀밭에 조심스럽게 앉았습니다. 풀밭은 촉촉하고 푹신했습니다. 하얀 토끼풀꽃이 몇 송이 피어 있었습니다. 가난한 소녀는 꽃을 꺾고 싶었지만 손이 닿지 않아 몇 걸음 걸어야 했습니다. 소녀는 일어나 걷는 대신 중얼거렸습니다.

“여기까지만 있자.”

소녀는 풀밭 너머 보이는 숲을 바라다보았습니다. 동굴에서 맡을 수 없는 시원한 공기가 상쾌했습니다. 허기도 조금 가시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동굴로 빨리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누군가 금은보석을 훔쳐갈지도 몰랐습니다.

그때 무언가 등을 건드렸습니다. 소녀는 깜짝 놀라 옆으로 굴렀습니다. 무언가 뾰족한 발톱 같은 것이 할퀴었기 때문입니다. 뒤돌아보자 얼굴이 시커먼 고양이가 파아란 눈을 빛내며 앉아 있었습니다.

“이봐, 생선 좀 가진 거 있어?”

고양이가 말했습니다. 소녀는 화가 나서 고양이를 노려보았습니다. 긁힌 등이 아팠거든요.

“생선 없어. 넌 누군데 내 등을 할퀸 거야?”

“할퀸 게 아냐. 좀 건드린 거지.”

고양이는 말하면서 앞발을 들어 발바닥을 보여 주었습니다. 날카로운 발톱 다섯 개가 튀어나왔습니다.

“그 발톱으로 날 할퀴었잖아.”

“내 손은 원래 이렇게 생겼다고. 등에다 노크 좀 한 것 갖고 왜 그래. 속 좁은 아가씨. 생선 정말 없어?”

“없어. 이 너구리야.”

소녀는 말하면서 일어났습니다. 엄마가 바깥에 나가면 속상한 일만 가득하다더니 정말 그런 것 같았습니다. 일어난 소녀가 옷을 툭툭 털자 주머니에서 금화가 떨어졌습니다.

“어라? 이게 뭐야? 금이잖아!”

고양이가 외치면서 얼른 달려들어 금화를 입에 덥석 물었습니다. 깜짝 놀란 소녀는 고양이를 붙잡으려고 했지만 고양이는 네 발로 껑충 뛰어 멀찍이 달아났습니다. 가난한 소녀는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아가씨, 이거 다시 찾고 싶어?”

“이리 내놔!”

소녀는 소리를 질렀습니다. 고양이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씩 웃었습니다.

“다시 찾고 싶으면 내일 저어기 숲으로 와. 밤나무 밑까지 오면 돌려주지. 부자 아가씨.”

고양이는 금화를 물고 화살처럼 숲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가난한 소녀는 부아가 나서 울음이 터질 지경이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날 까마귀 엄마가 왔습니다. 소녀는 고양이가 금화를 빼앗아간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자 엄마는 매우 화가 나서 까악 까악 소리를 쳤습니다.

“그런 나쁜 고양이를 보았나! 아가야, 그 고양이가 금화를 훔칠 동안 넌 대체 무엇을 했니?”

“엄마, 죄송해요. 고양이가 너무 빨랐어요.”

“이 금은보화를 모아 오느라고 엄마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넌 정말 엄마의 고생을 몰라주는구나. 당장 내일 해가 뜨자마자 금화를 찾아오너라.”

화가 난 엄마는 동굴 밖으로 날아가 버렸습니다.

다음날 아침 소녀는 덩굴을 타고 풀밭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금화를 빼앗아간 고양이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소녀는 고양이가 말한 밤나무가 생각났지만 숲에 들어가기가 무서웠습니다. 하지만 화가 난 엄마는 더 무서웠습니다. 소녀는 무서움을 참고 숲 속으로 갔습니다.

숲 속은 뾰족한 잎사귀가 돋은 나무들로 꽉 차 있었습니다. 군데군데 드리워진 나무의 그림자는 침묵에 싸인 성을 지키는 거인 같았습니다. 소녀는 소리를 내면 늑대가 튀어나올까 봐 조심조심 걸었습니다. 다행히 늑대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소녀는 고양이가 말한 밤나무 밑에 도착했습니다.

“나쁜 고양이, 어디에 있지?”

소녀는 무서움을 없애기 위해 일부러 큰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두툼하게 쌓인 낙엽 더미가 꿈틀거리더니 금화를 빼앗아간 고양이가 몸을 털며 기어 나왔습니다.

“어이, 아가씨, 왔구나. 생선은 어디 있어?”

“내 금화 돌려줘.”

“생선을 주면 돌려주지.”

“생선은 없어. 어서 금화 내놔.”

소녀는 손을 내밀었습니다.

“생선이 없다고? 그럼 돌려줄 수 없지.”

“돌려줘. 엄마한테 혼난단 말이야.”

“다 큰 아가씨가 엄마를 무서워해? 가서 물고기나 가져오라고.”

고양이는 이빨을 드러내며 보기 싫게 웃었습니다. 소녀는 화가 나서 손바닥으로 고양이의 얼굴을 후려갈겼습니다. 고양이는 날쌔게 피하면서 발톱으로 소녀의 손을 할퀴었습니다. 손등에 핏방울이 솟았습니다. 소녀는 화가 났습니다. 고양이를 잡으려 두 팔을 내뻗었습니다. 하지만 고양이는 밤나무 위로 잽싸게 올라갔습니다.

“이봐, 물고기나 가져와!”

밤나무 잎사귀 사이로 고양이의 목소리만 들렸습니다. 소녀는 나무를 올려다보았습니다. 더욱 화가 났지만 한편 엄마가 실망하실까 봐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때 누군가 소녀의 어깨를 두드렸습니다.

“아가야, 여기서 뭘 하고 있니?”

소녀는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나무처럼 키가 큰 청년이 서 있었습니다. 소녀는 말했습니다.

“저는 아기가 아니에요.”

청년이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아직 아기인걸.”

“아기가 아니에요! 저는 소녀예요!”

“알았다, 아가야. 고양이 잡으려고 하니?”

소녀는 팔을 들어 나무 위를 가리켰습니다.

“내 물건을 빼앗아갔어요. 그리고 저 위에 있어요.”

청년은 나무 위를 올려다보더니 고개를 저었습니다. 

“나무 위에 올라가면 잡기 힘들단다, 아가야. 나중에 땅 위에 내려오면 잡아줄게. 그런데 손에 난 상처를 보여줄래? 많이 아프겠구나.”

소녀는 손을 감추고 고개를 저었습니다.

“안 아파요.”

청년은 소녀의 발 뒤에 떨어지는 핏방울을 보았습니다.

“저렇게 피가 나는데 아프지 않다니? 아저씨랑 같이 가서 치료하자. 어서 가자. 어른 말 안 들으면 나쁜 아이예요.”

소녀는 어쩔 수 없이 청년을 따라갔습니다. 청년은 숲을 벗어나 장터로 갔습니다. 청년은 시장에서 파는 약초를 찧어서 소녀의 손에 바르고 천을 감아주었습니다. 청년은 소녀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것 같았습니다. 소녀는 기분이 좋았지만 화를 낼 엄마를 생각하니 불안했습니다.

“아가야, 넌 어디에 사니?”

청년이 물었습니다. 

“저어기요.”

“저어기? 숲 속에 말이니?”

“아니요.”

“숲 속이 아니라면, 숲 바깥 말이니? 거긴 절벽밖에 없는걸.”

청년은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소녀는 청년이 마음에 들었지만 입을 꼭 다물었습니다. 사는 곳을 누구에게도 말해서는 안 된다는 엄마의 말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그래, 그럼 집에 가거라.” 

청년이 말했습니다.

소녀는 망설였습니다. 아직 청년과 헤어지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같이 있을 수 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소녀는 눈썹을 찌푸렸습니다. 마음에 드는 사람과 같이 있는 방법을 생각해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위장이 구조 신호를 보냈습니다. 소녀의 뱃속에서 꼬르륵하고 큰 소리가 났습니다.

“아가야, 배고프니?”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청년이 크게 웃었습니다.

“그래, 장터에서 밥을 먹자. 이리 온.”

소녀와 청년은 장터에서 밥을 먹었습니다. 예쁜 물건을 파는 가게들도 구경했습니다. 소녀는 엄마 생각이 났습니다. 가게의 물건들을 보면 엄마도 좋아하실 것 같았습니다. 장터를 구경한 뒤 청년은 숲 어귀까지 소녀를 데려다주었습니다. 

“조심하거라, 아가야.”

소녀는 숲을 지나 덩굴을 타고 절벽 아래 동굴로 내려왔습니다. 신기하게도 이번에는 하나도 무섭지 않았습니다. 

동굴로 돌아오자 아무도 없었습니다. 까마귀 엄마는 오늘도 오지 않을 모양이었습니다. 대신 번쩍이는 보물이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소녀는 하얗게 빛나는 다이아몬드 위에 누우면서 청년을 생각했습니다. 청년을 다시 만나고 싶었습니다. 소녀는 잃어버린 금화는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청년을 생각하면서 잠이 들었습니다.

해가 지고 엄마가 돌아왔습니다. 엄마의 목에는 초록색 옥팔찌가 걸려 있었습니다. 엄마는 부리로 소녀를 콕콕 찔러 깨웠습니다.

“아가야! 아가야! 어서 일어나야지! 엄마가 가져온 걸 보렴. 예쁘지 않니?”

“아, 엄마, 오셨어요? 진지는 잡수셨어요?”

“그런 건 걱정하지 말려무나. 보물은 잘 지키고 있었니?”

“네. 엄마.”

소녀는 대답하면서 금화에 대해 엄마가 물어볼까 봐 걱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금화에 대해 물어보는 대신 기분이 좋은 듯 날개를 홰치면서 동굴에 보관된 금은보화를 죽 둘러보았습니다. 그동안 소녀는 엄마가 가져온 빵을 먹었습니다. 

“아가야, 여기에만 있는 것이 힘들지 않니?”

“힘들지 않아요, 엄마.”

“그래도 이 보물이 있으니까 좋지?”

“네. 엄마.”

“잘 지켜야 한다. 엄마는 매일같이 아가를 위해 보물을 모아 온단다. 엄마가 죽으면 이 보물은 모두 아가의 것이 된단다.”

까마귀 엄마는 이렇게 말하고 동굴 밖으로 날아가 버렸습니다. 

어느새 날씨가 따뜻해졌습니다. 동굴 밖에서 새가 울었습니다. 꽃향기도 흘러들어왔습니다. 새 소리를 듣자 소녀는 청년 생각이 났습니다. 청년이 사 주었던 맛있는 밥 생각도 났습니다. 장터에 나가서 맛있는 것을 사 먹고 싶었습니다. 동굴에 수북이 쌓인 금화 중 단 한 닢만 있으면 청년과 배가 터지도록 맛난 것을 먹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소녀는 따뜻한 햇빛이 들어오는 동굴 입구를 향해 목을 뻗었습니다. 밖에 나가고 싶었지만 고양이가 기다리고 있을까 봐 겁이 났습니다. 소녀는 생각했습니다.

‘그 키 큰 오빠는 뭘 하고 있을까. 고양이를 잡아준다고 했는데.’

‘그 고양이는 뭘 하고 있을까. 내 금화로 생선이나 사 먹었을까.’

‘아, 장터에 가서 키 큰 오빠랑 맛있는 거 먹고 싶어.’

몽상에 잠긴 소녀는 불현듯 엄마 생각이 났습니다. 엄마는 오늘도 험한 세상에서 소녀를 위해 열심히 보물을 모으고 있을 것입니다. 소녀는 부끄러워졌습니다. 엄마를 위해서라도 동굴에 앉아 보물을 지켜야 했습니다. 그러나 햇볕이 너무나 따뜻했습니다. 소녀는 참지 못하고 결국 동굴 밖으로 나갔습니다.

날씨는 고양이를 만난 날보다 훨씬 따뜻했습니다. 소녀는 풀밭을 지나 숲으로 곧장 갔습니다. 숲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새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소녀는 고양이도 늑대도 무섭지 않았습니다. 청년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숲을 벗어나자 마을이 나왔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소녀는 마을에 혼자 들어갔습니다. 마을 장터는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소녀는 큰길을 걸으면서 청년을 찾았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소녀의 창백한 얼굴과 더러운 맨발을 눈여겨보았지만 소녀는 상관하지 않고 두리번거리며 청년을 찾았습니다. 

드디어 소녀는 청년을 찾아냈습니다. 청년은 약방 앞의 걸상에 앉아 있었습니다. 소녀는 너무 기쁜 나머지 맨발로 달려갔습니다.

“오빠! 오빠!”

“어, 아가야, 어쩐 일이니?”

청년은 놀라서 걸상에서 일어났습니다. 소녀는 기쁜 나머지 활짝 웃었습니다. 웃으면서 마른 입술이 터져 피가 났지만 하나도 아프지 않았습니다. 청년은 소녀가 귀엽기도 하고 가엾기도 했습니다.

“오빠, 여기서 뭐 하고 있어요?”

“응, 약을 사러 왔단다.”

청년은 이렇게 말하면서 다시 걸상에 앉았습니다. 소녀는 청년의 얼굴을 쳐다보았습니다. 왠지 청년은 힘이 없어 보였습니다.

“약이요?”

“응. 어머니가 편찮으시거든. 그런데 약이 너무 비싸서 여기에 없구나. 큰 도시로 나가야 해. 그런데 돈이 부족해서 가지 못할 것 같아.”

“돈이요?”

“응.”

소녀는 마음이 아팠습니다. 청년이 어머니를 사랑하는 모습을 보자 소녀는 까마귀 엄마 생각이 났습니다. 청년의 어머니가 아프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려면 돈이 필요해 보였습니다. 소녀는 이마를 찡그리고 생각했습니다. 돈을 구하는 방법이 없을까? 그러자 퍼뜩 금화를 빼앗아간 고양이 생각이 났습니다.

“오빠, 고양이 잡아줘요.”

소녀가 말했습니다.

“고양이?”

“네, 제 물건 빼앗아간 고양이요.”

“아, 그 나무에 올라간 녀석 말이지.”

청년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어머니가 편찮으시다는데 갑자기 고양이를 잡아달라는 소녀의 마음을 알 수 없었습니다. 소녀가 귀여웠지만 조금 귀찮기도 했습니다. 어머니가 걱정이 되었지만 마음씨 착한 청년은 소녀를 도와주기로 했습니다.

“그래, 나쁜 고양이 잡으러 가자.”

두 사람은 숲 속으로 갔습니다. 이번에는 준비를 단단히 했습니다. 청년은 그물과 갈퀴를 챙기고, 소녀는 자루를 어깨에 멨습니다. 소녀는 고양이를 꼭 잡아 청년에게 금화를 주고 싶었습니다.

너도밤나무 밑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청년은 나무 위를 올려다보았습니다. 잎사귀가 무성하게 우거진 나뭇가지 사이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청년은 기다란 갈퀴를 들어 올려 나뭇가지를 슬슬 제쳐 보았습니다. 나뭇가지에 앉아 있던 뻐꾸기가 깜짝 놀라 날아갔습니다. 하지만 고양이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무 밑을 찾아보자. 굴을 팠을 수도 있어.”

청년은 긴 나무 막대를 들고 나무 밑을 천천히 살폈습니다. 소녀는 쪼그리고 앉아 짤막한 나뭇가지로 풀과 낙엽 사이를 헤쳤습니다. 과연 나무뿌리 사이에 조그만 구멍이 있었습니다. 청년은 구멍에 막대기를 슬슬 밀어 넣었습니다. 끝에 물컹한 것이 닿았습니다. 청년이 막대를 휘젓다가 꺼내자 끄트머리에 생선 비늘이 묻어 나왔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내 생선 건드리지 마!”

밤나무 가지 사이로 고양이가 발톱을 세우고 나무줄기를 뛰어내려왔습니다. 소녀는 깜짝 놀라 물러섰습니다. 금화를 빼앗아간 바로 그 고양이였습니다. 청년은 놓치지 않고 갈퀴로 고양이의 등을 찍어 땅으로 내동댕이쳤습니다. 고양이는 소름 끼치는 비명을 지르며 네 다리를 미친 듯이 버둥거렸습니다. 소녀가 그물을 던져 고양이를 덮었습니다. 청년은 갈퀴를 소녀에게 꼭 붙들게 하고 자루에 고양이를 집어넣었습니다. 고양이는 쉴 새 없이 몸부림치며 비명을 지르고 청년의 손등을 할퀴고 물어뜯었습니다. 하지만 청년은 자루에 고양이를 집어넣고 주둥이를 묶어버렸습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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