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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애령 Jul 25. 2021

집밥 경제학

집밥이 식당 음식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 일단 돈을 내놓는다고 음식이 척척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부가 식당처럼 밥을 내놓는 수준에 이르러면 적어도 이십 년 정도의 수련이 필요하다. 어릴 때야 엄마가 주는대로 먹는데다 학교에 가면 급식을 주는 시대다. 본인이 직접 손에 물을 묻히지 않는 이상 수준 이상의 집밥 실력을 닦으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알기 어렵다. 게다가 1인 식사 준비와 2,3인의 식사 준비는 식재료 구매부터 최종 요리까지 명백히 다른 과정이다. 식재료를 두 배 구입하고, 손질하고, 요리하는 시간과 노력은 배로 든다. 또한 거주하는 집과 식당은 공간의 목적이 다르다. 식당은 요리만을 위해 존재하는 공간이다. 수도꼭지 갯수부터 다르고, 설거지 공간과 식재료 손질 공간이 따로 확보된 경우가 많다. 집은 그렇지가 않다. 식재료를 손질하고 치운 다음에서야 요리를 시작할 수 있다. 아니, 요리를 하기 전에 냄새부터 제거할 궁리를 해야 한다.


식당을 운영하려면 조리사 자격증 못지 않게 중요한 게 있다. 메뉴 가격에서 이윤 비율을 맞추는 것이다. 식재료 가격과 임대료, 인건비 외에도 이문이 남아야 한다. 업계 종사자에게 들은 말에 따르면 30%정도 맞춰주어야 한다고 한다. 천 원짜리 메뉴라면 삼백 원은 남겨야 한다는 얘기다. 삼백 원을 맞추지 못하면 남는 게 없다. 비슷한 경제학이 집밥에도 있다. 집밥에서 남겨야 하는 이문은 소득과 식재료 가격+요리 시간에 비하여 최대한의 칼로리/영양 균형+구성원 만족도를 뽑아내는 것이다. 이걸 맞추지 못하면 외식만 못하다. 그냥 집에서 지지고 볶는다고 집밥이 아닌 것이다.


식당 이문 비율은 숫자로 계산되지만, 집밥 경제학은 숫자로 계산되기 어렵다. 그래서 주부들은 끊임없이 머리를 써야 한다. 냉장고에 남은 식재료의 종류와 양을 계산하고 가장 저렴하면서도 신선한 식재료를 확보할 가게를 찾아야 한다. 오가는 시간과 재료의 양도 계산에 넣어야 한다. 가구 구성원에 따라 음식 선호도가 다르고 알레르기가 있는 경우도 있다. 누군가 싫어하는 음식을 만들면 다른 사람이 잘 먹지 않기 때문에 낭비가 되는 수가 있다. 모두 좋아하고 잘 먹을 메뉴를 끊임없이 만들어야 한다. 주부의 시간과 체력도 계산에 넣어야 한다. 요리만이 주부의 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때로는 집밥보다 외식이 가성비가 높을 수 있기 때문에 외식 가격도 눈여겨봐야 한다. 세일은 예고없이 벌어지고, 가구 구성원의 입맛은 식당에 맞춰져 있다. 이 모든 조건을 맞추려면 거의 하루종일 머리를 싸매도 정리되기 힘든 복잡한 기획을 해내야 한다. 그러니 반찬 투정을 하고 밥을 남기면 분노의 싸대기로 등짝을 맞는 것이다. "그럴 거면 네가 차려 먹어!"


조지 오웰은 영국 빈곤층의 삶을 밀착 취재하면서 주부들의 밀가루 낭비도 가난에 한몫한다고 지적했다. 어느때나 빈곤층은 맞벌이를 해야 하고 남성들은 집안일에 손을 대지 않는다. 그래서 주부들은 시간 부족에 시달린다. 배고플 때마다 빵을 구울 시간이 없으니 한꺼번에 구워놓을 수 밖에 없다. 냉장고가 없으니 빵이 쉽게 상하고 밀가루가 낭비된다. 사실 이 문제는 간단히 해결되는데, 집에 먼저 돌아오는 사람이 빵을 구우면 그만이다. 그러면 주부는 남는 시간을 효율적인 가사 관리에 사용할 수 있다. 가령 청소나 세탁을 하여 집안 위생도를 높이면 의료 비용이 낮아진다. 필요한 식재료의 양을 보다 정확하게 계산할 시간도 생긴다. 하다못해 휴식을 하여 체력을 확보하면 의료 비용과 스트레스가 감소한다. 남성의 가사노동 참여가 가계 경제에 기여하는 것이다. 


집밥 경제학의 첫째는 밥을 남기지 않고 모두 먹는 것이다. 음식을 남겨서 버리거나 제때 못 먹은 탓에 상해서 버리는 것은 돈을 수챗구멍에 처넣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둘째는 음식을 가리지 않는 것이다. 식재료 가격은 늘 변한다. 계란값이 집값 못지 않게 높은 요즘, 계란 없이 밥을 못 먹는다면 그것도 경제적인 손해다. 계란으로 공급하는 단백질을 다른 식재료에서 섭취하는 유연성이 있어야 한다. 위 두 가지는 모두 어릴 때 가정과 학교에서 배운다. 왜 가르치는지도 모르고, 왜 배우는지도 모르지만 사실 냉엄한 경제학이 숨어 있는 것이다.


경제가 성장하면서 가계 소득이 늘어나는 시대는 오래 전에 지났다. 가계 부채나 안 늘어나면 다행이고 합리적인 소비가 가계 경제의 흥망을 좌우한다. 그 중심에 오랫동안 집밥 경제학이 있었다. 실은 '합리적인 소비'라는 말은 부족하다. 집밥 경제학에는 인도의 농부들이 소가 쓰러져 죽을 때까지 노동력을 뽑아내는 집요함이 있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5대 영양소가 모두 확보된 식사를 만들고, 구성원의 최대한의 만족을 얻어내고, 버리는 음식을 0으로 만드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주부의 부단한 계산과 감시, 기획과 가구 구성원에 대한 통제가 필요하다. 대부분 돈을 많이 벌어야 부자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소득 증가가 점점 힘들어지는 시대에서는 효율적인 소비 관리가 차상위계층과 중산층을 나누는 결정적 요소가 된다. (그 이상의 계층 상승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기에 상류층 주부들은 한가해진다. 중산층 주부처럼 가계 경제를 확고하게 관리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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