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 문학 속으로(4)

무협소설의 거장 김용을 이야기하다

by 주애령

오랫동안 김용 문학은 중국 본토에서 금기였다. 전통을 무조건 악습으로 규정한 문화대혁명의 여파는 물론이고 합리적 세계관을 근간으로 한 사회주의 체제와 맞지 않기도 했지만, 번번이 윗사람과 부딪치고 뛰쳐나가는 젊은이들이 등장하기 때문일 게다. 김용 작품 속 젊은이들은 대개 반항적이다. 심지어 바른생활 사나이의 대명사 곽정도 반항을 한다. 이유는 물론 정(情)이다. 김용 문학의 장점은 사랑이라는 소재가 작품마다 다르게 묘사된다는 것이다. 곽정과 황용은 의리로 맺어진 협객에 가깝고, 양과와 소용녀의 사랑은 모자간 난륜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장무기와 조민은 활달한 여성이 주도하는 요즘 연애와 비슷해 보인다. 그럼에도 김용 문학에서 사랑이라는 주제는 일관성이 있다. 평생의 배우자는 반드시 자신의 의사로 선택하며, 한 번 선택하면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재미있게도 김용은 세 번이나 결혼을 했다).


두터운 중국 전통 문화를 토대로 쓰였음에도 개인의 사랑 이야기가 중점으로 등장하는 것은 김용 문학이 서구화를 뚜렷이 지향하고 있다는 의미다. 물론 전근대 시대 문학에도 사랑 이야기는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잘 성사되지 못하고 내생에서 사랑을 기약한다. 중국의 대표적인 사랑 이야기 <양산백과 축영대梁山伯與祝英台>의 연인들은 죽어서야 사랑을 이룬다. 김용 문학에서도 주인공의 사랑은 늘 반대에 부딪힌다. 그렇지만 사랑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다하고 대가를 치러서라도 이뤄낸다. 사랑을 쟁취하는 두 연인이야말로 전근대 사회와 근현대 사회를 뚜렷이 가르는 경계이다.


상업적 목적을 가진 무협소설의 특성상 사랑은 빠질 수 없는 요소다. 그러나 김용 작품 후반부로 갈수록 로맨스의 비중은 낮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마지막 장편소설 <녹정기鹿鼎記>의 위소보는 무려 일곱 명의 부인을 거느린다. 김용은 <녹정기> 이후 왜 무협소설을 쓰지 않느냐는 질문에 “총이 등장하는 현대 사회에서 무협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답변을 남겼다. 그의 말대로 무협은 과학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에서는 환상에 불과하다. 무협은 어디까지나 전근대 사회의 이야기다. 그렇기에 위소보는 태연하게 축첩을 일삼는 전근대 사회의 인물인 것이다.


김용은 마지막 작품 <월녀검>에서 무협의 시조를 등장시킨다. 어린 소녀 아청은 원숭이를 흉내 내어 무공을 창안한다. 아청의 그림자를 가까스로 흉내 낸 검객들이 초식을 정리하여 월녀검을 만들지만, 아청은 별 관심이 없다. 무협의 시원은 자연이며 인간 존재는 여성성을 통해 자연과 연결되어 있다. 무(武)를 통해 몸을 단련하고 협(俠)을 통해 의리를 지킨다. 이것이 중국인이다. 김용은 무협소설을 통해 제국주의와 서구화에 휩쓸린 중국인에게 전통과 현대를 연결시켜 주는 정체성을 만들어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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