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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낙타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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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혜윤 Aug 08. 2022

응급실에서 일하는 당신에게

사랑하기도 존경하기도 하는 당신에게


남편은 응급실에서

끝끝내 살리지 못한 환자들의

죽음을 끌어안고 온다.


조금 더 빨랐다면 조금 더 늦었다면

이때에 이 조치를 할 수 있었다면

그때에 그 결정을 하지 않았다면

매일 죽는 사람들로 매번 다른 복기를 하고


닥쳐오는 책임의 무거움만큼이나

맞서 싸울 칼날을 늘 예민하게 벼른다.


누구도 내 앞에서 죽지 않게 하겠다

정도의 목표는

하나의 죽음도 너무 큰 실패가 되잖아.


난 어쩌면 단 한 명을 살릴 수 있었던 것도

기적이라 생각해.


응급실에서 살린 이들은 그곳이어서만

다시 살 수 있던 사람이야.


사고든 병이든 그 이들은 죽음을 향해가고 있었고,

잔인하지만 죽음이 그들의 흐름에서

자연스러운 상태였을 거야.


응급실이 아니었다면.


결국 그곳이어서

운명을 바꿔 다시 살려 놓은 거지.


오는 길이 멀거나, 차가 막혔거나,

신고할 이가 없었거나, 연락이 늦었거나,

이 모든 일들을 최소화해서

응급실에 닿게 하는 게 시스템인 거고,


밖에서도 죽어가는 이를

응급실 문 앞까지 데리고 가려

무수하게 거대한 노력이 반복될 거야.


응급실은 그런 곳이니까.


당장 죽어가는 사람도 살려낼 기회가 있는,

인간의 생사와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니까.


놓쳐지는 생명이 있겠지만

극도의 최선들 틈에

만약 어떤 어긋남이 있었다 해도

오빠가 죽음을 창조한 게 아니라는 거야.


차라리, 흘러가는 운명을 거스르지 못한 것일지 몰라.



기적이 일상보다 더 자주 있으니

보편적인 성과처럼 보이기도 하겠지.

감히 죽음에 대해

위안이 되라고 하는 이야기는 아니야.


다만, 하나의 기적에서도

값어치만 한 보람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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