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노트
오래 죽음을 생각하다 이번 작업을 시작했다.
전혀 우울감보다는 소중함에 대한 궁리였다.
1. 잠은 아주 죽음 같다.
매일 우리는 죽고 또 사는 건 아닐까 싶을 만큼.
2. 어느 생에나 끝이 있어서
시간과 사랑과 생의 모든 것들이 유한할 수 있고, 덕분에 그 모든 것들은 더 가치있는 의미를 갖게 되는 게 아닐까.
무한하고 영원한 것을 더 귀히 여기는 듯 하지만 막상 간사한 우리 마음은 '언제나, 항상, 여전한' 것을 소중히 여기기 어려우니까.
3. 죽음도 언제나 있고 '지금'은 항상 소중하다.
오빠는 출근해서 12시간, 24시간씩 일하는 동안 매번 수 많은 죽음을 마주하고 돌아온다.
끝은 아직 멀었다는 착각으로 순간을 느끼는 것에 무뎌지지 않으면 좋겠다.
언제나 최선의 지금을 만들고 감동하면 좋겠다.
4. 죽음을 생각하다 임신을 한 건 조금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그리는 동안도 아침이에게 조금 미안했고, 그림을 완성한 얼마 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엄마는 장례식장에서 자주 내 그림을 떠올렸다고 고맙다고 했다.
결국 다 같은 선 위에 있는 것이라고, 나는 자연, 섭리같은 단어의 주변을 생각했다.
5. 할머니는 어디로 갔을까.
할머니는 고생을 하고도 황폐해지지 않은 정말 멋진 사람이었다.
그리고 죽는 날까지 아픔에도 삶에도 지지 않고, 호쾌하고도 당당한 영혼을 지키고 있었다.
결혼 후 처음 병원에 계신 할머니께 오빠를 소개했을 때 "내 사위는 별론데, 네 사위는 멋지네. 잘 됐다."고 할머니는 우는 엄마를 웃게 해주었다.
그래서 몸은 쓸모를 다해 두고 떠났지만 그 영혼은 더 자유롭고 여전할 것 같다.
신혼집이 원주에 있다고 알려드렸던 게 다행이라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