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보약이다.
첫째를 가지고 4주 차부터 입덧이 시작되면서 첫째가 52개월, 둘째가 17개월이 되는 지금까지 나는 통잠이란 걸 거의 자 본 적이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52개월 중에 4개월이나 될까?? 초보 엄마였던 나는 아기는 세상에 나오면 그냥 다 잘 자는 줄 알았다. 그리고 첫째 때 꽂힌 '애착육아' 덕분에 아기를 울리는 일이 내게는 엄마로서 해서는 안 될 일처럼 다가왔고 갓난쟁이인 첫째가 울기라도 하면 바로 달려가 안아 올렸다. 덕분에 나는 지금까지 밤에 깨서 우리 부부 방에 오는 첫째를 데리고 다시 방에 데려가 재우기를 반복하고 있다. 다행이라면 잠들 때 더 이상 붙어 있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적어도 저녁에 씻기고 책 읽고 노래 불러주고 잘 자 하고 나오면 이젠 스스로 잠들기는 한다. 이것도 그나마 첫 애의 네 살 정기검진 가던 날, 소아과 의사에게 정말 하소연 하 듯했던 내 말에 의사가 제시 해준 방법대로 했는데 거짓말처럼 아이가 따라오는 것이 아닌가! 그 전에는 잠들 때까지 옆에서 시체처럼 누워 있어야 했다. 그렇게 평균 한 시간씩을 누워 있는 건 고역이었다.
첫째의 수면문제로 우리 부부는 정말 지겹게도 싸웠던 것 같다. 아니, 아마 남편은 내가 싸움을 걸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만 2살까지 체중이 13-4kg은 족히 나가는 아이를 아기띠로 낮잠과 밤잠을 재웠으니 말 다 했다. 크립에서 재울 때는 자다 깨서 울더라도 내가 아이 방에 가서 다시 재우면 되는데 크립에서 해방되자 (남편이 아이가 2살 되던 해에 크립의 옆문을 떼어버렸다. ) 자다 깨면 안방으로 와서 동네 떠나가라 울어대니 새벽에 출근하는 남편도 예민해지고 그런 남편 때문에 나는 더 예민해지기 일쑤였다. 온갖 방법을 다 써봤지만 전혀 통하지 않았다. 만 2살까지는 거의 3시간마다 깼던 것 같다. 만 3살까지는 밤에 1-2번씩 깨는 아이였다. '2살 되면 괜찮아진다더라'가 '3살' 이 되고 '4살'이 되었다.
그래서 둘째를 가졌을 때는 수면교육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중, 그 다짐이 확고해졌던 계기가 갓 이사 간 후 바로 옆 집의 두 엄마였다. 두 가정 모두 한 살이 채 안 된 아들이 각각 있었는데 두 엄마 모두 혈색이 좋고 심지어 화사한 것이었다. 나는 저때 정말 사람 사는 몰골이 아니었는데 말이다. 알고 보니 둘 다 수면교육을 시켜서 저녁 7시에 육퇴 후 다음 날 아침 7시까지는 본인만의 시간이라는 것이다. 한 엄마는 중국계 미국인, 다른 한 엄마는 소아과 의사인 미국인이었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12시간의 자유'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나는 확고해졌다. 둘째가 태어나기도 전에 나는 이웃으로부터 그 이웃이 소아과에서 받았다는 수면교육 관련 파일을 받았다. 한 자 한 자 꼼꼼하게 필독하고 무엇보다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그렇게 태어난 둘째는 수면교육에 대한 내 각오가 조금씩 무뎌지게 잠을 잘 잤다. 첫째의 무서운 등 센서 같은 것도 둘째에게는 없었고 심지어 혼자 잠드는 경우도 있었다.
둘째가 태어난 후 모유수유를 해야 하니 둘째의 크립을 안방에 들여놨다. 2-3시간마다 수유로 깨야하는 둘째 때문에 자연스레 남편은 첫째 아이 방에서 첫째를 데리고 잤는데 잠들 때까지 한 시간 이상이 걸리거나 더한 경우도 있으니 다음 날 새벽에 일을 나가야 하는 남편은 종종 그런 첫째를 심하게 다그쳤다. 분명히 기분 좋게 목욕도 하고 책도 같이 읽었는데 잠들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너무나 길었다. 그렇게 잠든 첫째는 중간에 깨어나면 서럽게 울어대며 자지 않겠다고 떼를 쓰거나 엄마한테 가겠다고 서럽게 울어댔고 그럴 때면 새벽 2 시건 3 시건 남편은 싫다는 아이를 더욱 호되게 혼냈다. 남편과 첫째 아이 사이가 어그러질까 봐 남편에게 첫째를 재워놓기만 하고 중간에 깨는 것은 내가 재울테니 1층의 빈방에 가서 자라고 했을 정도였다. 거의 매일 새벽 2-3시에 깨는 첫째였다. 아마도 둘째 스트레스였지 싶다.
첫째 때는 상상도 할 수 없없던 일이 둘째를 키우면서 일어났다. 첫째는 백일까지도 밤새 거의 내 품에서 안아 재웠는데 둘째는 백일이 되어가던 즈음에 5-7시간도 자기 시작했다. 수유 텀이 길어지니 젖이 불어 옷이 젖기 일쑤였다. 이렇게만 되어준다면 나는 셋째도 나을 수 있을 것 만 같았다. 첫째 때문에 내가 그리 힘든 것을 아시고 이렇게 순둥순둥 한 둘째를 점지해 주셨나 보다 하면서 참 좋아하던 때였다. 그런데 순둥순둥 한 둘째가 4개월이 넘어가면서 거의 1-2시간마다 깨어나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중간에 첫째까지 깨어 버리니 이건 사람 사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둘째 6개월 즈음, 남편에게 '수면교육'을 선언했다. 수면교육의 찬반이 여전히 전문가와 육아를 하는 부모들 사이에 팽팽한데 결과적으로 나는 수면교육에 반대하지는 않는다. 부모가 잠을 잘 자지 않는 아이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면 수면교육은 필요 없지만 그렇지 않다면 수면교육으로 광명을 찾으라고 말하고 싶다.
이웃으로부터 받은 파일에 적힌 대로 수면교육을 시작했다. 길게는 일주일을 예상하고 시작한 수면교육이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효과가 나타나서 3일째 되던 날부터는 10분도 채 울지 않고 잠들었다. 물론 첫째 날은 고통 그 자체였다. 문고리를 잡고 운다더니 딱 그런 마음이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5일 여가 지나자 저녁 7시에 잠든 둘째는 다음 날 7시에 일어났다. 생긋생긋 웃으면서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통잠을 자느냐.. 그건 아니었다. 왜냐하면 내게는 예민 쟁이 첫째가 있었기 때문이다.
통잠을 자기 시작한 둘째와 첫째의 자리를 바꿨다. 첫째의 침대를 우리 방으로 옮겨왔고 둘째의 크립을 첫째 방으로 옮기며 둘째는 자기만의 방을 갖게 되었다. 첫째의 침대를 옮기면서 남편이 했던 말에 둘 다 빵 터졌던 기억이 있다.
"@@이한테는 방은 사치야"
첫째는 본인의 방이 둘째에게 넘어갔다는 사실도 모른 채 안방에서 아빠 엄마와 비록 침대는 다르지만 한 방에 있다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둘째는 6개월부터 하루 12시간 통잠을 자기 시작했고 낮잠도 졸려하는 눈치가 보이면 안고 방으로 들어가 노래 불러주고 크립에 내려놓고 문 닫고 나오면 끝이었다. 며칠 힘들게 울리면 이렇게 천국이 열리는 걸 모르고 첫째는 끌어안고 살았다니 분하기까지 했다. 둘째가 통잠을 자기 시작하니 남편과도 같은 침대에서 잠들 수 있었고 첫째도 우리 부부와 함께 있으니 밤에 깨긴 해도 덜 울었다. 모두에게 행복한 선택이었다.
3-4일의 짧은 여행이나 한국으로의 긴 여행 중에는 같이 잠들다 보니 흐트러졌던 수면도 집으로 돌아와 처음에 하던 수면 교육대로 하루 이틀이면 둘째는 잘 따라와 주었다. 그러던 둘째가 달라지기 시작한 게 어금니가 나오려고 하는 순간부터다. 그렇게 밤에 깨서 울며 나를 찾던 둘째가 거의 두 달여간을 밤에 1-2번씩 깨기 시작했다. 내 삶은 다시 피폐해지고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어 둘째의 수면교육을 다시 시작하려 한다. 이젠 걸어 다니다 못해 뛰어다니고 울음소리도 여간 큰 게 아니라 걱정이지만 나도 좀 살고 봐야겠다. 그동안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딸이라며 저녁 목욕부터 잠까지 도 맡아하던 남편에게 오늘 아침 선전포고를 했다.
"##이 수면교육 다시 해야겠어"
그랬더니
"가슴이 아프지만 모두를 위해서 해야지" 란다.
남편도 수면교육의 효과를 눈으로 봤기 때문에 하지 말란 말은 못 한다. 나도 처음과는 달리 조금 긴장되는 게 사실이다. 다음 편엔 성공담을 들고 오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