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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로운 영혼 Feb 10. 2020

기억을 더듬어

미국에 오게 된 계기

  가끔 생각한다. 내가 어쩌자고 '가족이 있는' 한국을 떠나 먼 미국에 살고 있지? 그것도 아이 둘을 낳고 가정을 꾸려서 말이다. 인생이야 원래 계획한 대로 안 된다지만 적어도 미국에 나오던 2010년엔 이렇게 오래 살게 될 줄은 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해외에서 일정기간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계기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수동적 이유, 다른 하나는 능동적 이유가 되겠다.


  내게는 위로 4살이 많은 언니와 아래로는 3살이 적은 여동생이 있다. 아주 어릴 때 기억은 거의 없어서 장담할 수 없지만 적어도 조각조각의 기억들이 남아 있는 사춘기 시절을 돌아보면 우리 엄마는 나와 언니를 그렇게 비교했다. 언니는 여로모로 나 보다 나았다. 물론 엄마 말에 의하면이다. 얼굴도 반반하고 성적도 좋고 야무지고 책도 많이 읽고 그리고 프랑스, 파리로 공부까지 하러 가서 졸업하고 직장 잘 다니고 있으니 어딜 가나 언니는 부모님의 자랑 거리였을게다. 반면 나는... 흠... 주저하게 된다. 이게 바로 어렸을 때부터 비교당하는 아이의 단적인 예다. 나는 자존감이 참 낮았다. 왜 과거형이냐? 극복해 가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극복해 가고 있는 내가 기특하다. 숱한 비교 속에서 내가 언니를 이길 수 있는 길은 언니가 공부하고 있는 프랑스, 파리보다 더 폼 나는 나라로 나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막연하게 20대가 되면서 '언젠가는 나가야지' 하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정말 막연하게... 질투는 나의 힘이라는 영화 제목처럼 질투가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그리고 능동적 이유는 박사과정 중에 2007년 미국 샌디에이고에서의 학회에 발표할 기회가 생겨 참석하게 되면 서다.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의 11월은 말 그대로 환상적이었다. 너무 건조해서 립밤을 몇 분마다 발라 줘야 하는 것만 빼면 정말 완벽했다. 원래 학회라는 것이 놀기 좋은 시간과 장소에서 한다더니 샌디에이고에서의 학회장은 좋아도 너무 심하게 좋은 경치 속에서 이루어졌다. 학회장 건물을 조금만 벗어나면 뒤로 바다가 펼쳐져 있는데 요트들이 줄지어 서 있고 저녁노을이 바다 위에 부서지며 만들어내는 모습은 벅차면서도 뭔가 울컥하게 만들었다. 조그맣고 냄새나는 실험실에서 매일 쥐들과 씨름하며 내가 가는 길이 옳은 것인지 그리고 매일 한계와 게으름과 부딪히며 점점 작아질 때 만난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에서의 미국의 첫인상이 매우 아름다웠다. 나와 같은 주제로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있고 그 들과 열띈 토론을 하고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또, 아침저녁으로 셔틀버스를 타고 학회장으로 오갈 때 버스 안에서 흘러나오던 재즈도 한 몫했다. 한국에서는 버스 안에서 나오는 음악이 거의 정해져 있지 않은가. 그런데 재즈를 사랑하는 내게, 스웩 넘치는 흑인 아저씨의 여유 넘치는 모습과 버스 안에서 흘러나오던 재즈는 '미국은 이런 도시야'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긴 비행을 마치고 한국에 도착한 후 내 트렁크를 내리려는데 내 옆에 앉아 있던 남자가 (외국인이었음. 미국인 인지는 확실하지 않음) 내 짐을 내려주는 것이 아닌가???  한국에서는 한 번도 겪어 보지 못 한 상황에 나는 정신이 혼미해져 쓰러질 뻔했다. 나는 누가 봐도 건장한 체격을 가진 대한민국의 튼튼한 20대 후반의 여인이었기 때문에 물리적인 힘을 써야 하는 상황에서 내게 도움을 주려고 하는 남자(애인 빼고)를 본 적이 없다. 그런데 내 짐을 부탁도 안 했는데 내려 주다니. 어머!! 나는 외국에서 살아야 해!! 하고 강하게 인상이 남은 내 인생의 나름 사건이었다.  


  이런 이유로 아마도 나는 지금 미국에 살고 있지 싶다. 마음 속에 품고 있던 외국 생활에 대한 끊임없는 상상이 내게 해외로 나올 기회가 생겼을 때 주저하지 않도록 했다. 그러나 가끔은, 문득, 한국의 길거리 순대가 먹고 싶을 땐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남의 땅에 와서 이렇게 살고 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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