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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로운 영혼 Feb 06. 2020

아이 담임 만나는 날

Parent Teacher Conference Day.

 매주 일요일 저녁이면 첫째가 다니는 Pre-K의 담임으로부터 학부모 대상 전체 메일이 온다. 간단한 인사와 함께 다음 주에 아이들이 배울 것에 대해 요일별로 정리한  PDF 파일이 첨부되어 있다. 그 안에는 한 주의 알파벳 -A부터 매주 한 개씩 배움- 색깔, 도형이 있고 어떤 책을 읽을지, 어떤 노래를 부르는지 그리고 어떤 야외 활동을 하는지가 적혀 있다. 그래서 미리 보고 한 주가 어떻게 전개될지 예상할 수 있고 잠자리에 들 때 첫째와 소소한 얘기를 나눌 수도 있다. 시간이 허락하면 도서관에 가서 Pre- K에서 읽을 책을 미리 빌려오기도 한다. 초반엔 잠자리에서 책을 읽어 주고 마지막에 유튜브로 보여주기도 했는데 이게 잠을 방해하는 것 같아 생략하기 시작했다. 첫째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 중 하나는 수요일의  'Show and Tell'이라는 시간인데 한 주의 알파벳, 도형, 색깔과 관련된 그 무엇을 가져와서 친구들 앞에서 설명하는 시간이다. 작년 9월, 새 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안 되었을 때 깜빡하고 그 '무엇'을 챙기지 않고 보냈다가 첫째가 집에 와서 말해주길래 알게 되었는데 그 말을 전하면서 어찌나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던지 미안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래서 그 후로는 달력에 표시를 해 놓았다. 작년 9월엔 문장으로 영어를 구사하던 때가 아니라 'Show and Tell' 시간이 즐겁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내 생각은 완전히 빗나갔다. 그냥 본인이 가지고 있는 장난감을 가지고 가는 것 자체를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술술 하고 싶은 얘기를 하고 있나 보다. 


  보름 전 메일함에  [Parent Teacher Conferences Invite]라는 제목으로 한 개의 메일이 더 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콘퍼런스라니 뭔가 거창한 듯한 느낌이고 신청한 사람만 참여하는 듯한 뉘앙스라 조금 긴장된 마음으로 메일을 열었는데 담임, 부담임과 학부모가 만나서 아이의 학교 생활에 대한 전반적인 얘기를 나누는 시간이란다. 아침 8시부터 20분씩 상담 시간이 정해져 있고 가능한 시간에 사인 업을 하라는 것. 그리고

Pre-K는 학부모 상담 일정으로 당일(수요일) 쉬고 즉, 아이를 등원시키지 말고 목요일과 금요일도 선생님들의 교육이 있어서 쉰단다. 선생님과의 상담보다 더 당황스러운 상황이었다. 혈기왕성한 52개월과 오빠가 좋아서 맞으면서도 쫓아다니는 16개월을 데리고 3일을 보내야 하다니....  정신 차리고 다시 메일을 읽어 보니 상담하는 20분 동안 아이들을 봐주기도 한단다. 아이 둘을 맡길까 하다가 내키지 않아서 남편의 일정을 조율하기로 했다. 그렇게 수요일 아침 10시. 오랜만에 외국인과 Face to Face 긴 대화가 예상되니 조금 부담스럽긴 했다. 아침마다 아이를 데려다 줄 때도 매일 얼굴 보며 인사를 하고 아이에 대한 얘기나 날씨 얘기 등을 나누지만 그래 봤자 1분 남짓한 시간인 데다 특별한 얘기가 없이 정말 소소한 거라 별 부담이 없었는데 선생님들과 공식적으로 얘기를 한다니... 학부모로도 처음인 상황이고 내가 교육을 받아 본 적이 없는 미국에서 처음 학부모가 되어 미국 문화와 아이의  Pre-K 생활에 대해 얘기를 나눠야 한다니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 건지 감이 오지 않았다. 


  혹시 긴장해서 하고 싶은 말을 못 할까 싶어 검색을 하고 내가 하고 싶은 질문 5개를 내 손전화기에 기록했다. 남편은 아침에 아이 둘을 데리고 외출을 했고 나는 부랴부랴 평소보다 조금 더 정성을 들여 화장을 하고 아이를 데려다 줄 때는 잘 입지 않는 정장 바지와 구두까지 꺼내 신었다. 5분 여유 있게 도착하니 교실 안에서 내 앞에 예약한 학부모가 선생님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그리고 10시 4분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상담 중이다. 첫째 방과 후 케어를 해 주시는 선생님이 날 보더니 약속시간이 언제냐고 묻는다. "열 시인데 교실 문을 두드려서 내가 왔다는 걸 알려줘야 하는 거예요?"라고 물었더니 그렇단다. 얼른 얼굴 들이밀고 문 두드리란다. 

그리고 담임이 너의 얼굴 확인했냐고 확인까지 한다. 고맙다는 말과 함께 눈인사도 잊지 않는다. 


  그렇게 내 차례가 되었고 담임 둘이 나오더니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요. 혹시 이 사진첩 봤어요?" 하는데 너무 긴장해서 전화기에 적어 온 내 질문만 열심히 쳐다봤지 볼 생각을 못 했던 터라 

"아니요. 이게 뭐예요?"라고 물었더니 

펼쳐 보여 준다. 그동안 아이들의 활동을 사진으로 남긴 것. 사진 몇 장 보는데 함박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교실 안으로 들어가 담임, 부담임과 책상을 사이에 두고 사이좋게 마주 보고 앉았다. 간단하게 인사를 하고 첫째가 수업 중 가위질했던 종이랑 아이의 전반적인 생활과 발달상황이 적힌 A 4 용지 2장을 나에게 건넨다. 아이의 운동 능력, 학습 능력, 사회화 능력 그리고 강점도 잘 적혀있다. 내가 뽑은 5개의 질문에 대한 답이 물어볼 필요도 없을 정도로 잘 적혀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육탄전?을 하는 반 친구가 있는데 알고 보니 둘이 제일 쿵짝이 잘 맞아 자주 놀다 보니 자주 부딪힌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그렇잖아도 그 친구에 대해 좀 심각하게 물어보려 했는데 궁금함이 해결되었다. 


  첫째는 미국에서 학기가 시작되는 9월 생인데 한국으로 치면 학기가 시작되는 3월생의 고민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텍사스에서는 입학하려는 해의 9월 1일에 입학이 허가된 나이가 되어야 한다. 즉, 5살엔 유치원에 들어갈 수 있는데 이든인 9월 17일에 만 5세가 되기 때문에 유치원엔 만 5 세하 고도 11개월 13일에 유치원에 들어갈 수 있다. 다시 말해, 만 5살에 유치원에 들어가면 입학한 지 17일 만에 만 6세가 되고 친구들은 대부분 만 5세라는 말씀이다. 그래서 지금 반 아이가 내 아이 포함 11명인데 그중에서 2번째로 나이가 많단다. 당연히 학습적인 면에서 9명의 아이들보다 조금 빠를 텐데 그러한 부분에서 부딪힘이 많단다. 본인이 상황을 조절하려고 하다 보니 친구들과 마찰이 생긴단다. 집에 있는 3살 터울의 여동생과도 항상 있는 일이라 어떻게 하면 좋을지 얘기를 꺼내는데 담임도 3살 5살 남자아이 둘의 엄마이고 부담임도 3살 5살 여자 아이 둘의 엄마라 셋이서 딱딱한 상담이 아닌 엄마들끼리 하는 얘기처럼 친근하게 나눌 수 있었다. 

 

  내가 긴장했던 만큼 어려운 자리도 아니었고 공식적인 자리긴 했지만 무거운 자리도 아니었다. 그리고 담임들이 전해주는 첫째 아이의 학교 생활이 그동안 내가 집에서 보아오던 아이의 모습보다 더 어른스러운 인상을 받았다. 영어를 집에서 쓰지 않아 작년 9월에 입학할 때 걱정이 좀 됐다고 하니 반에서도 영어 알파벳이나 단어를 읽는 수준도 매우 높고 (물론, 그 나이와 반 아이들에 비해) 스페인어까지 잘 구사하고 있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단다. 그래서 모국어인 한국어만 집에서 사용하고 토요일에 한국어 학교에 다니고 따로 영어는 안 하는데 괜찮을까 하고 물었더니 첫째의 언어능력에 조금 놀라는 눈치다. 미국에 사는 한국 아이들은 기본으로 다 하는 거라고 말해줄 걸 그랬나 싶다. 


  얘기를 나누고 나와보니 벌써 10시 40분이다. 20분 동안 무슨 얘기를 하나 걱정했는데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아침마다 짧게 인사하고 대화하던 것과 달리 마주 앉아 아이에 대해서만 얘기하니 뭔가 좀 더 아이 학교 생활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 같아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내가 미국에 살고 있다는 걸 한 번 더 실감한 날이기도 하다. 


  상담이 끝난 후 아이 둘을 데리고 씨름하고 있을 남편을 생각하며 자유부인의 시간을 잠시 즐겼다. 그 즐기는 시간에도 어쩌다 미국에서 학부모가 된 것일까.. 어쩌다 여기 살고 있는 것일까.. 하는 질문이 끝이 없다. 어쨌든 보름 동안 끙끙대던 일이 끝나서 홀가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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