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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로운 영혼 Dec 17. 2019

누가 누구를 키워?

엄마라는 이름의 무게.

  내가 아이를, 아이 둘을 키운다는 건 참 무책임한 일이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그것도 자주. 



  내 유년 시절을 돌아볼 때 엄마는 엄하다 못 해 훈육이라는 미명하에 본인의 감정을, 나를 포함한 자식들에게 풀어내신 적이 종종 있는데 그럴 때 마다 우리가 지은 죄? 보다 더 큰 체벌을 받았던 게 아니었나 싶다. 그 중에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 있는 사건이 몇 개가 있다. 시간 순으로 나열하면 먼저, 초등학교 2학년 때 등교하려고 신발을 신는데 엄마가 내 신발을 갑자기 들어올려서 내 뺨을 시원하게 때려주셨다. 겨우 9살 아이였는데 , 그 이유는 시험성적이 형편없다는 것이었다. 신발로 맞은 후의 일은 전혀 기억에 없다. 충격으로 인해 기억하지 못 하는 게 아닐까 싶다. 두 번째는 여러 번 반복 되던 것이었는데 아마 자매들끼리 싸운다는 것 혹은, 시험성적이었을게다. 집 가까이 위치한 제재소에서 각기목을 짜오셔서 그걸로 초등학생인 우리들 몸을 구석구석 잘 때려주셨다. 부러진 적도 있었으니 정말 제대로 맞았나보다. 학기 초 신체검사 때 가끔 멍들어 있는 모습이 부끄러웠던 기억이 남아 있다. 세번째는 고등학교 2학년 때였는데 밤 10시 정도에 침대에서 잠든 나를 보시고는 화가 나셨는지 내 머리채를 낚아 채시고 어찌나 가열차게 돌리시는지 강제 상모 돌리기를 했다. 옆에서 내 동생이 말렸던가...겁에 질려있었던가..


  한국에 살 때는 돌아보지 못 했는데 한국에 계신 엄마와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살고 가정을 꾸리고 아이 둘을 낳아 보니 그 때의 엄마가 이해 되면서 이해 되지 않는 상황이 반복이 된다. 그렇게 정리되지 않는 복잡한 감정속에서 몇년 째 살고 있다. 내가 엄마가 되어 보니 우리를 감정적으로 혼내던 그 시기에 아마도 아빠와 부부싸움을 하셨던게 아닌가 하고 짐작해 본다. 내가 결혼생활을 해 보니 그렇다. 


   아이를 키우면서 대단한 각오나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닌데 하지 않겠다고 다짐 한 것이 내 신체의 일부를 이용해 혹은 물건을 이용해 체벌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과 무관한 감정들로 아이들에게 화풀이 하지 않겠다는 것.  2017년 파리에서의 등짝 스메싱, 한 번만 빼면 지금까지 잘 지켜오고 있다. 그런데 한 번만 빼고 잘 지켜오면 뭐하나 싶다. 첫째 아이 혼낼 때 소리를 바락바락 지르는 것을...게다가 남편이랑 다툰 날이다 싶으면 아이의 버르장머리 없음에 대한 기준의 역치가 낮아져서 소리 지르는 빈도나 강도가 더욱 높아진다는 게 문제다. 


  내가 특히 못 참는 게 있는데 첫째가 갑자기 뒤에서 달려들어 내 목을 조르며 매달린다거나 (첫째는 절대 지치지 않는 에너자이저 51개월 남자아이) 둘째가 자고 있을 때 첫째가 소리를 질러 깨우는 것 등이다. 첫번째 상황에서는 내가 어떤 기분 좋은 환경에 놓여있더라도 내면에서부터 깊은 빡침이 화산폭발하듯 터져나온다. 오늘은 두 번 째 상황이 첫째를 프리스쿨에서 막 데려와 차에 태우며 벌어졌는데 기본적으로 남편과 다툰 다음 날이라 역치도 매우 낮았다. 그러니까 첫째가 날 잘 못 잡은거란 말씀. 둘째 낮잠 재우려고 40분 정도 여유 있게 나와 둘째의 낮잠에 성공하고 첫째를 막 태우는데 일부러 소리를 질러대는 첫째 때문에 나는 그만 뚜껑이 열렸고 결국 협박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며 아이를 혼냈다.  길가에 차를 세워 혼내다 보조석에 쏟아진 짐들이 눈에 들어 와 차에서 내리는데 첫째는 엄마가 동생과 본인을 길가 차 속에 두고 내릴까봐 겁에 질려 엉엉 울어 대기 시작했고 낮잠에서 강제 기상한 둘째도 오빠 따라 울기 시작했다. 울음소리가 스테레오로 차 안에서 빵빵하게 울려 퍼지는데 어떻게 어떻게 정리를 하고 둘째 에프터 스쿨 프로그램으로 가는 길 차 안에서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이 정도 밖에 안 되는 내가 어떻게 사랑받고 사랑 주는 아이로 키우나 싶고 내 아이가 커서, 지금의 나 처럼 우리 엄마는 왜 나에게 감정적인 체벌을 했을까 하며  감정적으로 불안정한 성인으로 자라면 어떡하지 하는 슬픔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눈물을 몇 번 훔치고 십여분 만에 도착한 태권도장 앞에서 조용한 뒷자리를 보니 그렇게 서럽게 울던 첫째는 울다 잠이 들었다. 귀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이 구역의 미친년은 나다 하는 모습으로 애를 혼냈던 것이 먹혔는지 정말 오랜만에 기특하게도 첫째는 저녁밥을 잘 먹었고 목욕을 끝낸 후  첫째 침대에서 책을 읽어주고 잘자 포옹을 해주면서 용서를 빌었다. "엄마가 아까 혼낼 때 소리 질러서 미안해" 라고. 그런데 앙금이 남아 있는지 평소 같으면 "괜찮아~ 그럴 수 있지~"라고 말하던 첫째가 아무 대답도 안 하고 화제를 돌렸다. 내일 한 번 더 용서를 빌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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