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없이 쓸 수 없다.
2015년 9월, 첫째를 출산하고 친정 엄마께서 도와주신 3개월은 버틸만했다. 엄마가 계시는 동안 낮잠은 친정 엄마께서 거의 안아 재워 주셨고 밤잠은 내가 젖을 물려 재웠다. 아이 셋을 키운 엄마의 경험치에서 나온 '강한 권유'로 그리 재웠기 때문에 친정 엄마가 한국으로 돌아가신 후엔 내 첫째 아이는 흔히들 말하는 '손 탄 아기'가 되어 있었다. 다시 말해, 내가 아이를 그리 예민하게 만든 게 아니라는 면피용 시작을 하는 것이다.
출산을 앞두고 남편과 함께 병원에서 진행하는 여러 수업도 들었는데 아기 속싸개 하기, 씻기기, 재우기, 젖 물리기 등등에 관하여 배웠지 아기가 잠을 안 잔다는 얘기는 들어 보지 못했다. 아니, 재우기에 대해 배울 때 5S라고 해서 Swaddle (속싸개), Side or Stomach Position (옆으로 안기), Shush (입으로 쉬~~ 소리 내기), Swing (흔들어주기), Suck (공갈 젖꼭지)을 이용하면 아기가 잘 잔다는 얘기는 들었다. 아기를 낳기 전에는 저 5S가 무슨 마법이라도 되는 줄 알았다. 5S면 아기는 꿀잠을 잘 줄 알았다. 그리고 아기라면 공갈 젖꼭지는 다 좋아할 줄 알았는데 공갈 젖꼭지를 병원에서 머물던 첫째 날만 물고 그 이후로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 보다 더 큰 문제는 그때 내가 너무 무지했다는 것이다.
엄마가 가신 후 한 달을 더 첫째 크립을 안방에 놓고 지냈다. 남편은 작은 방에서 조그마한 간이침대를 놓고 불편하게 잠들었는데 슬슬 남편도 편한 침대에서 잠들고 싶었나 보다. 그렇게 4개월이 되던 날 첫째를 독립시켰다. 그 날 이후로 나는 밤마다 안방과 아이 방을 수시로 오갔다. 5개월이 넘어가면서는 체중도 꽤 나가 두 팔로 지탱해 몇 십분, 혹은 1시간여를 안고 재우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라 아기띠를 사용해서 재웠다. 그렇게 아기띠와 우리 부부는 혼연일체가 되었다. 아기띠로 안고 스쾃 자세를 하면 좀 잘 자는 것 같다 싶으면 며칠은 그렇게 재우고 또 안 먹히면 좁은 방을 좌우로 왔다 갔다 하다가 또 안 자는 것 같으면 클래식을 틀었다가 어떤 날은 백색소음도 틀었다. 즉, 우리는 줏대 없이 우왕좌왕 방법 없이 아기를 재웠다. 아기는 세상에 나오는 순간, 밥 잘 먹여 주고 똥 잘 치워 주면 잠은 자연스럽게 드는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젖병도 안 물고 공갈 젖꼭지도 안 물던 아기라 나는 인간 공갈젖꼭지가 되어서 밤마다 젖꼭지 셔틀을 했다. 복도 너머로 첫째가 "앙~"하고 울면 나는 용수철처럼 침대에서 튀어 올라 첫째 방에서 어느새 젖을 물리고 있었다. 어떻게 복도를 갔는지는 전혀 기억에 없다. 순간이동이라도 한 듯이 나는, 아이 방 수유 의자에 앉아 수유를 하고 있다. 그리고 다시 잠들면 크립에 뉘어 놓고 다시 안방으로 건너가기를 반복했다. 한 살 전까지는 평균 4-5번은 오갔다.
첫째가 남자라는 이유로 목욕은 항상 남편 몫이었는데 그 목욕시간이 일정하지가 않았다. 목욕하고 난 후 루틴도 없었다. 그냥 씻기고 옷 갈아입히고 젖 먹여 재웠다. 안 자면 배가 고파 그런가 하고 젖을 더 물렸고 잘 먹어야 잘 잔다는 말에 젖양을 늘리려고 젖 잘 나오는 차를 물처럼 마셨던 기억이 있다. 결과적으로 18개월까지 모유수유를 했으니 젖은 잘 나왔던 것 같다. 그런데 잘 먹어야 잘 잔다는 말도 맞는 말은 아닌 것 같다. 모유 수유하는 아이들은 밤에 잘 깬다는 말을 위안 삼아 지냈다.
두 돌이 되면 잘 잔다는 말에 은근히 기대했다가 무참히 깨지고 세 돌이면 잘 잔다는 말에 또 배신을 당하고 그렇게 첫째는 만 4살이 되었다. 이사한 후 병원을 한 번 더 옮긴 곳에서 처음 만나는 소아과 의사에게 만 4살 정기검진을 받았다. 그때가 한국에 3주간 다녀온 후라 시차 적응도 하랴 둘째 걸음마 시작해서 쫓아다니랴 낮에 체력이 전혀 따라주지 않던 때였다. 그런데 첫째 침대에서 첫째가 잠들 때까지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가만히 누워 있어야 하다니 고역이 따로 없었다. 그러다 둘째를 내가 재우고 첫째를 남편이 재웠는데 피곤한 남편은 첫째를 재우다 같이 잠드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평일이면 해야 할 일이 있는데 잠이 드니 화가 났을 테고 주말에 잠들면 억울해했다. 그렇게 하소연하듯 나온 나의 질문에 그녀가 제시해 준 방법의 중요한 포인트는 '단호함'과 '일관성'이었다.
1. 지금까지 하던 대로 목욕 후 책 읽기는 유지할 것
2. 책 다 읽은 후 '잘 자'라는 말을 하고 며칠은 아이 방문을 열어 두고 방 앞에서 아이 상태를 살펴볼 것 -이때 아이가 침대에서 내려오면 내려오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할 것. 자꾸 내려오거나 나오면 방문을 닫겠다고 말해 줌.
3. 아이가 잠들면 방문을 닫을 것
그리고 의사는 첫째에게 전하는 말도 잊지 않았다.
"@@. 너는 이제 4살이야. 너는 정말 멋지고 용감한 아이야. 나는 알고 있단다. 네가 혼자 잘 수 있다는 걸. 다음에 병원에 오면 혼자 잔다고 와서 말해줄 수 있겠니?"
그랬더니 첫째가 "Yes"라고 하는 게 아닌가? 그렇게 쉽게 약속하는 게 아닌데 싶은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날 밤 그녀가 제시해 준 방법으로 재우는데 엄청난 반발과 눈물로 씨끄러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조용했다. 복도에 앉아서 아이가 뒤척이는 소리며 침대에서 내려와 어떻게든 안 자려는 모습을 보면 조바심이 났지만 단호함과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애썼다. 그리고 혼자 잠드는 아이가 되는데 일주일도 안 걸렸다. 이제는 책 세권 같이 읽고 노래 한 곡과 토닥토닥 몇 번 후 잘 자라는 말만 하고 나오면 내 세상인 것이다. 이 간단한 걸 하는데 4년이 걸렸다. 요즘은 책 다 읽어주고 잠깐 옆에 누워 있으면 나를 정색하고 바라보며
"엄마? 안 나가고 뭐해?" 라며 눈을 동그랗게 뜬다.
민망하다. 반면 아플 때는 옆에 있어달라고 한다. 그럴 땐 기꺼이 잘 때까지 꼭 끌어안고 있는데 잠드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도 매우 단축되었다. 물론 항상 잘 자는 건 아니다. 이제는 더 이상 혼자 못 자겠다고 심각하게 말을 할 때도 있다. 그럴 때면
"Dr. Arnal이 @@이 혼자 자는 줄 아는데. 그럼 다음에 가서 혼자 못 잔다고 말할까?"
그러면 아니란다. 그리고 못 이기는 척 혼자 잘잔다.
거의 포기했던 첫째의 만 4살에 한 늦은 수면 교육과 둘째의 5개월에 한 수면교육을 통해 배운 것은 아이에게 기회를 주라는 것이다. 아이를 믿고 기회를 줄 것. 첫째가 아기였을 때 아쉬운 점은 첫째 처럼 수면교육을 했어야 했는데 하는 것이 아니라 밤이건 낮이건 자다 깨서 울 때 바로 달려가 들어 안아 올린 것이다. 그냥 조금 여유를 가지고 1분이고 2분이고 지켜봤으면 그 울음 끝에 몇 번은 다시 잠들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둘째를 키우면서 든다. 다시 스스로 잠들 기회를 내가 빼앗은 것 같아서 잠으로 힘들어하는 첫째를 보면 짜증이 나다가도 미안했다. 만 2살이 넘어서 등을 대고 자기 시작했다. 그 전 까지는 아기띠에서 재우거나 차에서 재워 눕힐 생각만 했다. 그리고 만 4살이 되도록 혼자 잠드는 법도, 자다 깨서 다시 잠드는 법도 모르는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이제 혼자 잠들다니 정말 감개무량하다.
아이들이 어릴 땐 육아의 절반을 수면이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싶다. 비록, 나는 아직 현재 진행형이지만 모든 엄마들이 아이들 잠에서 해방되길 바란다. 진심으로 그러하다. 예민쟁이 첫째가 여전히 일주일 중 3-4번은 한밤 중에 안방으로 건너와 나를 깨운다. 그나마 둘째 재수면 교육으로 횟수가 줄었다. 만 5세가 되는 올 가을엔 한 달에 3-4번으로 줄어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