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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로운 영혼 Feb 27. 2020

잠에 관해서는 하위 1%

첫째 아이의 잠에 관한 이야기

  새벽 2시.

목감기로 건조해진 목 탓에 잠들기 전에 차를 한 잔 마셨더니 화장실이 급하다. 평소처럼 불도 안 켜고 볼일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첫째 아이가 방문을 다급하게 열고 나오는 게 들린다. 그리고 바로 안방 문도 열리는데 내가 침대에 없는 걸 보고 바로 둘째 방 문을 열었다.


"엄마 여기 있어~"


라고 했지만 듣지 못했나 보다. 둘째 깰까 봐 작게 말했는 데다 내가 없다는 사실에 울며 달려가니 내 목소리가 들릴 리가 없었을 게다.


  짜증 섞인 한숨을 쉬는 남편을 뒤로하고 둘째 방으로 달려가 보니 나를 보고 안도하면서도 동생 울음소리에  갈 곳 잃은 불안한 눈빛의 첫째가 우두커니 서 있다. 난데없이 단잠을 빼앗긴 둘째는 집이 떠나가라 서럽게 울고 있다. 첫째에게 네가 깨운 동생부터 재워야 하니 방으로 들어가서 기다리라고 했지만 완강하게 거부한다. 평소 같았으면 큰소리도 치고 협박도 했을 텐데 최대한 이성의 끈을 잡으려고 노력했다. 아침에 남편이랑 첫째의 잠에 대한 고민과 얘기 끝에 당분간 물리적인 훈육이나 큰소리치는 일도 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둘째 재수면 교육이 거의 자리 잡아가는 중이라 짜증이 발끝부터 올라왔지만 최대한 침착하게 둘째부터 달래는데 오빠 방에서 들리는 오빠와 아빠의 목소리에 둘째는 잠이 홀라당 깨서 신이 났다. 조용히 해도 재울까 말까 한데 옆방에서 들려오는 남편의 목소리와 첫째의 울음소리에 둘째 재우는 시간은 더욱 길어졌다. 그 와중에 남편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자제력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저 속이 얼마나 타 들어갈꼬...'


  그러던 중 남편이 첫째를 포기하고 안방으로 들어가 버린 후, 첫째는 더욱 크게 울어대기 시작했고 남편이 다시 달래 보았지만 잘 먹히지 않았다. 결국 이럴 때 희생양은 둘째다. 떨어지지 않으려는 둘째를 급히 크립에 억지로 눕히고 나와 첫째 방으로 갔다. 당연히 둘째는 서럽게 울어대는데 남편의 타이름이 통하지 않던 첫째는 나를 보더니 방긋 웃으며 신이 났다. 동생이 우는데도 너는 웃음이 나오냐는 남편의 질문에 고개까지 끄덕이며 그렇다는 첫째의 모습을 보고 남편은 더 이상은 평정심 유지에 도움이 되지 않는 듯 바로 자리를 떴다.


  벽 너머로 둘째는 계속 울어대고 나를 기다린 첫째에게는 일장연설을 했다. 하면서도 새벽 3시에 이게 뭐하는 상황인가 싶었다. 첫째에게 토닥토닥 100번을 해 주고-일종의 수면 의식이다- 문을 조금 열어 놓고 안방으로 건너왔다. 여전히 둘째는 서럽게 울고 있다. 10여분이 채 지나기 전에 첫째는 잠이 들었으나 여전히 둘째는 간헐적으로 울고 있다. 새벽 5시 반이면 출근을 해야 하는 남편은 도저히 잠들 수 없는 상황에 짜증 섞인 외마디 말을 남기고 거실로 나가버렸다. 다행히 둘째도 겨우 잠이 들었다. 이렇게 우리의 밤잠은 첫째에 의해 "또" 망가졌다.


  그렇다. 첫째는 잠에 있어서는 하위 1%이다. 보통의 아이들이 그렇긴 하겠지만 잠들어야 하는 상황을 매우 싫어한다. 잘 깨기도 하고 아침잠도 없다. 첫째 갓난쟁이 때부터 야제증이며 야경증, night terror 등 관련하여 안 찾아본 게 없다. 뾰족한 해결책은 없다. 다들 시간이 약이라고 한다. 다음 날 아침에 지난밤에 일어난 일에 대해 물어보면 해맑게 모른다고 하니 더욱 황당하지만 그 말을 믿어야 하는 건지 말아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고보니 요즘 제법 오빠의 영역을 다부지게 침범하고 있는 둘째 탓에 애먼 첫째를 더욱 혼냈는데 나부터 마음의 여유를 갖고 더 많이 안아주고 놀아주면서 너그러워져야겠다고 다짐한다. 남편도 잘 따라주니 고맙다. 오늘 밤 재울 때 여느 때와 달리 좀 더 많이 안아주고 장난도 쳤더니 내 품에 안겨 있던 첫째가 


"엄마 안아줘서 고마워"


란다. 내가 요즘 잠자리에서 얼른 자라고 다그치기만 했지 기분 좋게 수면 의식을 한 적이 없었지 싶은 순간이었다. 일관성을 가지고 따뜻한 엄마가 되어보련다. 오늘은 부디 통잠이란 걸 자 주길 바란다. 첫째야.  늙은 어미 아비는 너무 피곤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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