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 물렀거라
지난 목요일 오후, 남편에게서 문자가 왔다.
"집에 물 잘 나와?"
뜬금없는 문자와 조금 전까지도 콸콸 나오는 뜨신 물로 둘째 똥 묻은 엉덩이를 씻겼기에 아주 잘 나온다는 답을 하고 첫째를 데리러 차에 시동을 켰다. 자연스럽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를 들으니 휴스턴에 water main break가 발생해서 침수된 지역이 있고 곳곳에 단수도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 정도가 심한가 보다.
프리스쿨 선생님들께 뉴스 소식을 알리니 당황해하는 눈치다. 2017년 여름, 이 곳 텍사스를 쓸고 갔던 허리케인 하비의 피해가 아직도 복구되지 않은 곳이 많기 때문에 물이라고 하면 텍사스 사람들은 학을 떼는 것 같다. 우리 가족도 2년 전, 이 곳으로 이사 올 때 가장 유념했던 부분이 상수 침수 지역 여부였다. 금방 복구하겠지 하는 생각으로 아이 둘을 데리고 집에 와 저녁 준비를 하는데 담임으로부터 문자가 온다. 결국 내일 프리스쿨 문을 닫는다는 것. 남편도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연락을 받았다. 뉴스를 틀어보니 여전히 복구 진행 중이고 물은 반드시 끓여 먹어야 한단다. 휴스턴 물이 더럽기로 미국 내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기 때문에 항상 먹는 물엔 신경을 쓰는데 이번 수도관 파열로 씻는 것조차도 조심해야 한다고 한다. 괜히 아이들 배탈이라도 나면 일이 복잡해지니 필터를 거친 물도 복구가 될 때까지는 먹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토요일 아침, 마침 똑 떨어진 물을 사러 Costco에 갔던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보통은 외출하면 돌아올 즈음 전화가 오는 터라 뭔가 일이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물이 없단다. 물이 쌓여 있어야 할 곳이 텅텅 비어 있단다. 그 많던 물이 비어 있다니 쉬이 상상이 되지 않는다.
뜻밖에 주어진 3일 연휴의 첫날, 늦봄과도 같은 날씨에 자연스럽게 뒷마당에서 바비큐를 시작했다. 지저귀는 새소리 그리고 적당히 부드러운 바람에 기분이 좋아진다. 그 보다 잘 익어가는 고기 냄새에 허기짐을 느끼며 다 익을 때까지 아이 둘과 비눗방울 놀이도 하며 겨울의 끝자락을 만끽하는데 슬몃, 이런 일상이 감사하게 다가왔다.
요즘 이 곳의 뉴스나 커뮤니티 소식을 접하다 보면 코로나 확진자 수를 비롯해서 대형마트에서의 사재기도 빈번히 들을 수 있기 때문인데 과연 어디까지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냐에 대해 남편과 얘기를 하다 우리는 그냥 평상시와 같이 생활을 하고 어린아이 둘은 조금 더 위생에 신경 쓰기로 했다. 사람 많은 곳, 특히 밀폐된 실내는 되도록이면 피하기로 했다. 미국 정부가 한국 정부만큼 투명하게 상황을 보고 할 것 같지는 않고 또한, 코로나 검사 비도 한국에 비하면 어마어마하게 비싼 것이 불만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주 후에 예정된 2박 3일간의 여행은 진행하기로 했다. 평범하다 못해 지루하기까지 하던 하루하루가 감사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첫째 나이 세 살에 처음 맛 본 스모어를 18개월인 둘째와 같이 만들어 먹으며 에너지 넘치는 이 두 아이와 함께 다녀도 될 곳과 조심해야 할 곳이 빠르게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당분간은 조금 더 위생에 신경 쓰며 살아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