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다반사
나를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에서 스토리의 전환을 알리는 한 장면이 필요하다면,
상당히 붐비지만 꽉 막혀있진 않은 고속도로 위나 설악 IC를 통과해 양평 쪽으로 향하는 구불구불한 산길에서 엑셀과 브레이크를 능숙하게 오가며 운전을 하는 내 얼굴일 거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어제 하루 T맵에 찍힌 나의 주행시간은 6시간 34분.
출근하면서 운전한 30여 분을 추가하면 7시간이 넘는다. 최장기록 달성.
나는 운전면허를 따놓고도, 정말 귀여운 연습용 스파크를 선물 받아놓고도 무서워서 운전을 못하는 사람이었다. 혹시 내가 핸들을 확 틀어버리면 어쩌지, 운전을 하다가 중간에 그냥 그만하고 싶으면 어쩌지, 차선을 따라가지 못해서 옆에 있는 차를 그어버리면 어쩌지? 터널 벽으로 그냥 확 돌진하고 싶으면.. 어쩌지어쩌지..
운전을 해야만 하는 날이 생기면 전날 밤부터 불안과 걱정이 한가득이어서 정작 당일이 되면 몇 배의 시간을 들여 대중교통을 타고야 말았다. 서울의 주차문제나 대중교통의 편리함, 대기오염과 미세먼지, 도로 위에서 낭비되는 시간에 대한 말들은 운전하지 안(못하)는 나를 합리화하기에 충분했다.
참 많이 변했다. 지난 1년 동안 정말 여러 가지가 변했지만, 그중에서도 라디오를 들으며 편안하게 운전하고 있는 내 모습을 문득 인식하게 될 때면, 이놈의 인생이 확실히 새로운 국면에 들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운전에 대한 나의 공포는 똑같은 직선로로 매일 출퇴근하며 사라져 갔고, 장거리는 기본에, 좁은 시골길, 덜컹거리는 산길을 운전해 가야만 일이든 뭐든 할 수 있는 직업적 요구는 쓸데없는 걱정들이 생겨날 여유를 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하루 7시간 운전이 괜찮은 건 아니다. 어제는 정말 제대로 된 파김치가 되어 사무실로 복귀했고, 집까지 겨우겨우 차를 끌고 와서 바로 뻗었다. 운전하는 내내 그냥 멍했다가, 조금만 지체하는 차들에도 화를 막 냈다가, 갑갑하고 답답한데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체념하다가.. 짜증이 나다가.. 아. 주. 힘든 시간이었다.
어제 들러야 했던 사업지는 세 곳이었고, 그곳에서 만난 어르신들은 모두 나를 걱정하셨다. 누가 봐도 어설프지만 표정만은 매우 능숙한냥 후진해서 차를 돌리는 나를 보며 어르신들은 그 먼 데서 혼자 왔냐고, 몸 조심하라고, 수고했다고.. 위로를 하려고 하셨던 것 같다. 별일 아니라는 듯 다음 행선지로, 또 다음 행선지로 네비를 찍고 출발했지만 나는 사실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그게 좀 티가 났나 보다.
사무실에서 벗어나 산이 많은 마을들을 훌훌 돌아다닐 수 있는 출장은 내가 선택한 이 일에서 발견한 해방이자 즐거움이지만, 어제 같은 긴 시간의 홀로 운전은 너무 외롭고 지치는 일이었던 것 같다. 다시는 그렇게 일정을 잡지 말아야지. 후회후회다.
운전하는 모습으로 다시 시작되는 이 스토리가 단지 전환일지, 반전에 대한 예고일지, 어쩌면 도약으로 이어질지. 글쎄, 그걸 알려면 아직 한참은 남은 것 같다. 한동안은 달려봐야겠지. 어쨌든 오늘이 쉬는 날이라 정말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