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차
#1 숲가꾸기
나무를 심었으면 가꾸어야 한다. 심고 그냥 몇 십 년 둔다고 해서 크고 윤기 좔좔 흐르는 멋진 나무가 되는 게 아니다. 나는 주로 인공적으로 나무를 심어놓은 숲에 가게 되는데, 이런 숲에선 나무의 생장 과정에 따라 '숲가꾸기'라는 것을 한다. 이번에 간 곳은 12-3년 정도 된 소나무 숲이었다. 나무들이 워낙 촘촘하게 붙어 있고, 흙이 좋지 않아서 생각보다 잘 자라지는 못했다고 했다. 땅과 가깝게 달린 가지들에는 잎이 거의 없어 반만 상록수였다. 생장에 방해가 되는 덩굴이나 관목들을 제거하고, 특히 못 자란 나무들도 일부는 베어버려야겠다는 의견들이 오가는 중 저 멀리 벚나무는 베지 않아도 되겠다고 누군가 말했다. 어린 소나무들 사이에 삐죽 솟아 잎은 하나도 달고 있지 않은 죽은 나무였다. 고사목이야말로 제거 1순위가 아니었나? 어차피 소나무 생장에 방해도 안 될 거고, 새들이 오가다 쉬거나 누군가의 서식처가 되고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 이어졌다.
아 이래서 나무가꾸기가 아니라 숲가꾸기구나,
숲 정리가 아니라 숲가꾸기구나.
(2023.3.12.)
#2 나무의 무게를 재는 일
오래전 읽은 조정래 작가의 소설 속에서였던가.. 들어 본 적 있던 까마득한 도시 정읍에 출장을 갔다. 정작 일이 벌어지는 곳은 고창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착각해서 정읍역으로 가게 된 거다. 남쪽나라에 대한 편견 때문인지 훨씬 따뜻하고 또 맑고 또 푸르게 느껴지는 마을길과 산길을 타고 쭉쭉 들어가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남아있다는 편백나무 솎아베기 시험림에 도착했다. 약도, 강도, 극강도 등으로 구간을 나누어 솎아베기 했다는 표지판이 있었다. 편백나무는 난온대 수종이라 내가 사는 북쪽 동네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높이 자라 바람에 흔들거리는 잎들과 바닥에 떨어진 열매들이 역시나 새롭고 또 놀라웠다.
나무는 우리와 같은 생물이기 때문에 아무리 같은 품종 같은 기후에 일정한 간격으로 심어놓았다고 해도 각기 다른 나무가 된다. 이 나무들을 상품처럼 사고 판다고 할 때, 농작물들처럼 그때그때 무게 재서 팔면 좋겠지만, 나무는 당근이나 양파보다는 훨씬 크고 무겁다. 살아있을 때 품고 있던 물 때문에 나무를 벤 직후의 무게와 시간이 흘러 다 마른 후의 무게 또한 차이가 난다고 한다. ha단위 면적의 산째로 거래되는 걸 생각하면 어떤 방식으로 가격을 매겨야 할지 막막하다.
보통은 재적에 따라 나무의 양을 따진다. 국립산림과학원은 소나무, 낙엽송, 편백나무 등 총 7개 수종의 직경과 수고에 따른 재적을 계산하여 표를 만들었다. 어차피 가지나 잎은 효용가치가 떨어지니, 수간(줄기)에 대한 부피를 계산할 수 있도록 한 거다. 그런데 최근 가지와 잎, 뿌리까지 모두 수거해야 하거나, 연료 등의 목적으로 나무를 통째 사용하고자 하는 수요가 늘어나면서 무게 단위로 더욱 정확히 나무를 측정해야 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오늘 나의 출장지는 어떻게 잎과 가지를 포함한 나무의 무게를 재고 또 표준화하여, 우리나라에서 나무를 무게 단위로 사고팔기 원하는 사람들이 믿고 쓸만한 단위를 만들어 낼 것인지, 그 계획을 듣고 현장 시연을 보는 자리였다.
방법은 단순했다. 전국 지역 별로 충분한 양의 표준목들을 채집(?)하여 그 무게를 하나하나 다 재는 것이다. 우선 나무를 베고, 줄기는 적당한 크기로 잘라 재고, 줄기에 달려있던 가지들은 다 수집해 모아 재고, 떨어진 잎들도 다 모아 재고, 그다음 그것들을 다 더하는 일. 단순하지만 고되고 어렵고 위험한 작업이 될 것이었다. 원시적이지만 이 방법 말고는 아직 다른 수가 없는 작업들. 저 거대한 생명체의 삶과 죽음을 계속해서 맞닥뜨리는 일. 과정은 똑같아도 똑같은 나무는 단 한그루도 없을 일. 어쩌면 '표준화'라는 게 불가능할 일. 그치만 그렇게 된 것처럼 믿게 될 일. 우리가 같은 인간들에게 하고 있는 것처럼.
(2023.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