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못하는 밤

또 1년차

by 영랑

그 중에 가장 참기 힘들었던 건 내모습이었을거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허둥대는 나.

그게 전부 인 내 모습.


어렸을때는, 정말 정말 사회 초년생이었을때는 달랐던 것 같다.

뭔가 일이 터지면 눈 앞의 상황에 완전히 함몰되서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지 누구한테 말할지 혼날지 혼낼지 정신없이 뭔가를 해보다가

혼나고 욕먹고,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욕도 하고 그러면서 털어버리고.

하루이틀이면 상황종료. 내가 뭔 짓을 해도 어려서 그래, 몰라서 그래 해버리면 그만.

그때도 그게 참 특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그 뻔뻔함을 다 써버린 걸까.


요즘은 그게 안된다.

상황도 상황인데 그걸 대하고 있는 내가 보인다.

똑똑하게 합리적으로 담담하게 이 상황을 대했는지 아닌지, 왜 아니었는지 스스로를 평가하고 자책한다.

해결될 일은 때가 되면 다 해결되고, 뭔 짓을 해도 안되는 일은 안되고,

세상에 큰 일도 없고 작은 일도 없고, 거기에 해당하지 않는 드라마틱한 일은 사실 잘 일어나지 않고.

어차피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일을 바라보는 나의 태도라는걸, 그걸 알게되서일까

아니면, 세상 대부분의 일을 그렇게 치부해버리기 시작할만큼 오만한 어른이 되어서 일까.

어쨌든 요즘 내 눈에 자꾸 거슬리는건 내 모습이다.


이제 시작한지 1년. 새로운 공간, 사람, 말과 문화, 사고방식 아직 버거운 것도 많은데

그래서 뭐 성과라고 할만한 게 없는게 오히려 자연스러운 상황인데도,

몰아쳐오는 노동과 해석과 분석과 결정의 압박과 속도에 떠밀리는 긴긴 하루가 이어지면

하루에도 몇번씩 번아웃이 오고 좌절이 오고 무릎이 풀썩 꺽이는데,

그런 내 모습이 그렇게 꼴보기가 싫은거다.


왜 그걸 미리 보지 못했어, 머리가 왜 이렇게 안돌아가고 손이 왜이렇게 느려.

그때 왜 한번 더 확인을 안했어, 왜.

왜 더 당당하지 못하니, 왜 더 침착하게 원래 너가 생각하고 있었던 것을 말하지 못하고,

왜 자꾸 눈치를 보고 왜 스스로를 검열하고 지나치게 소심해지고!

자책으로만 머릿속이 터져나간다.


뭐 처음이니까 그럴 수도 있다는거 알고.

신경쓸게 너무 많은데 한 두개쯤 놓치고 갈 수도 있고, 이제와서 되돌릴 수도 없는거 너무 신경쓰지 말자고

앞으로 할 수 있는거 더 하면 된다는 것도 알고,

사람들 하는 말 하나하나 따지고 들어봤자 네 말 이해못할거라고 생각하니까 그냥 마는 거고,

또 말해봤자 내 입만 아프니까 그냥 넘어가는 거고,

내가 나이도 많은데 이 정도는 그냥 그러려니 이해할 수도 있는 거고,

셀프 위로와 주변에서 던져 준 몇마디 위로로 대충 마음 추스려놓고,

그냥 괜찮다고 그래놓고,

아까 저녁 한 7시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헤매고 있다.

내가 지금 뭐하는건지 몰라서.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내가 누군지 몰라서. 지겨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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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랐던 내가 있었다는 걸 아직 기억하는데, 그 기억이 있어서 더 어려운 것 같다.

이제 한 풀 꺽인, 것 같아 보이는 낯설고 탐탁치 않은 내 모습에 적응하는거,

움추러들기만 하는 나를 지켜봐야하는거.


여기가 아니고 거기있었으면 다르지 않았을까,

왜 굳이 여길와서 굳이 이런 꼴을 자꾸 봐야하는걸까.

그렇게 묻기 시작하면 너무 힘들어져. 이유가 분명한데 아직 도달하지 못했을 뿐이야.

그만 봐. 지금은 그만 봐.


또 달라질거야. 나를 잃어버리지는 않을거야. 너가 포기만 안하면.



(2025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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