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책에서 읽은 <어웨이 프롬 허>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주인공과 같은 상황이 내게 일어난다면’이라는 가정하에 나는 남편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직은 막연하지만, 언젠가 그런 날이 오면 남편은 어떻게 대처할지 궁금했다. 답을 정해놓고 던진 질문은 아니었다. 정작 나는 ‘남편에게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이라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남편은 영화 <장수상회> 이야기를 들려줬다. 장수상회라는 마트에서 일하는 노신사 성칠이 동네 여인 금님과 썸을 타게 된다. 주변 사람들은 둘의 만남을 지지한다. 알고 보니 마트 사장은 성칠의 아들이고, 금님은 성칠의 아내다. 성칠이 치매에 걸려 기억을 잃자, 가족과 동네 사람들이 합심하여 둘이 다시 사랑할 수 있는 분위기와 여건을 만든 것이다.
“글쎄,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그 사랑을 지켜봐 줘야 하지 않을까? 마음은 아프겠지만. 그런데 시간이 좀 더 남았다면 다시 나를 기억하고 사랑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 것 같아. 나에게 돌아올 수 있도록.”
남편의 대답은 의외였다. 그런데 영화 <장수상회>에서처럼 주위 사람들이 그런 노력을 기울인다 한들 과연 잊은 기억이 돌아올 수 있을까?
기억을 잊는다는 건 슬프다. 아픈 기억은 잊을수록 좋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한 기억까지 지워진다는 건 나의 삶이, 내가 사라진다는 의미니까. 나는 어떤 기억이 지워진 걸 가장 마음 아파할까? 나일까? 아니면 아이들, 남편, 부모·형제, 친구?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조차 알지 못할 테니 어찌 보면 그런 나를 바라보는 상대가 더 마음 아파하지 않을까?
‘누죽걸산’이라는 말이 있다.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 사람들이 만들어낸 우스갯소리지만, 그만큼 움직이는 게 건강에 중요하다는 말일 것이다. 결국 나를 위해서도, 나를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서도 운동이 답이다. 이렇게 틈이 나면 남편과 등산하고, 걷는 시간을 늘려야겠다. 손가락 운동이 치매 예방에 도움이 된다니 탁탁탁 자판을 두들기며 사랑하는 이들과의 기억도 남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