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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Jan 14. 2024

울음이 모여드는 곳


나는 집에 있는 걸 좋아한다. 일정이 없는 날이면 며칠이고 현관문 밖을 나가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 내가 자발적으로 밖으로 나가는 날은 마음이 답답할 때다. 시야가 확 트인 넓은 곳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가깝게는 한강공원, 멀리 나갈 때는 양수리 두물머리를 찾는다. 강은 언제나 내게 품을 내어준다.    

  

오늘은 두물머리로 향한다. 영하의 날씨에도 사람들이 제법 있다. 외투를 단단히 여미고 강가로 걸어간다. 두물머리의 상징인 400년 된 느티나무가 가지를 드러낸 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여름 내내 풍성하던 잎을 모두 떨구고도 서 있는 자태가 의연하다. 겨울의 냉랭함에도 굴하지 않는 당당함이 빛난다.  

    

느티나무에게 안부를 묻고 나는 강 앞에 선다. 강 가장자리는 얼음이 얼어 있다. 어제 내린 눈이 얼음 위에 엎드려 가만히 나를 응시한다. 강물이 잔잔히 흘러간다. 해가 먼 산을 넘어가며 강에게 연약한 작별을 고한다. 해가 사라지니 눈(雪)은 시무룩하고 강은 표정이 어두워진다.   

  

강을 한참 바라보고 있으면 오늘 하루, 아니 지금까지 내 마음을 휘젓던 감정들이 물결의 템포로 잦아든다. 어느 순간 침잠한 마음 위로 멈칫멈칫 슬픔이 자리한다. 강 앞에서는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강은 친구처럼 마음의 말에 귀를 기울여준다. 답답해서 토해내는 숨도, 구겨진 속내도 묵묵히 품어준다.  

    

강은 울음의 자성(磁性)을 띠고 있는 것 같다. 남들에게 보이기 싫어 내 안에 차곡차곡 쌓아둔 눈물을 끌어당긴다. 갇혀 있던 슬픔이 끝내 비집고 나와 울음의 단추를 하나둘 푸는 모습을 강은 말없이 지켜본다. 어둠이 내려앉으면 곳곳의 울음들이 강으로 모여든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     


강은 알지 못했다.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이라는 사실을. 밤이면 강도 어둠을 커튼 삼아 참았던 눈물을 흘려보낸다. 슬픔은 슬픔을 알아보고 울음은 울음을 알아챈다. 그렇게 강과 나는 어둠을 틈타 서로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어둠이 사라지면 우리는 눈물을 감추고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갈 것이다.    

  

눈물은 마음의 말이다. 눈물로밖에 표현할 길 없는. 강 앞에서 마음의 말을 꺼내놓은 나는 다시 삶 안으로 발을 내디딘다. 맨몸으로 겨울에 맞서는 느티나무처럼 의연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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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경림 <갈대>



#강 #울음 #눈물 #슬픔 #마음의말 #갈대 #신경림 #라라크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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