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3월부터 도서관에서 여는 독서 모임에 참여했다. 첫날, 기대와 긴장이 섞인 마음을 안고 모임 공간 문을 살포시 열고 들어섰다. 세 쌍의 반짝임이 내게 쏟아졌다. 가벼운 인사를 주고받으며 자리에 앉았다. 가방에서 책과 노트, 펜을 책상 위에 꺼내 놓고 아직 오지 않은 이들을 기다렸다. 정처 없이 이리저리 시선을 돌리다 회원들과 눈이 마주칠 때면 우린 서로에게 수줍은 미소를 건넸다.
청일점인 사서와 여자 회원 여섯 명이 참석했다. 신청자는 총 여덟 명인데 부부 참가자가 코로나에 걸려 불참했다. 사서는 올해 독서 모임을 처음 맡았단다. 재작년과 작년 다 모임이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는데, 너무 어려운 책을 다뤄서인 것 같다고 그는 짐작했다. 올해는 11월까지 유종의 미를 거둬보자며 의욕을 보였다. 회원 중에는 독서 모임 경험자도 있고 책을 너무 안 읽어서 책을 읽고자 참여한 새내기도 있었다.
첫 모임이라 시범적으로 사서가 책을 정하고 첫 시간을 이끌었다. 우리는 앞으로의 진행 방식에 대해 먼저 의견을 나누었다. 사전에 각자 읽고 싶은 책을 추천했는데, 다음부터는 선정한 책의 추천자가 그 주 모임을 이끄는 방식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본격적인 책 이야기에 들어갔다. 책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을 각자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경험을 양념처럼 버무려냈다.
태어날 때부터 심장에 구멍에 있는 아이를 두 번에 걸쳐 수술하며 힘든 시간을 이겨낸 이야기, 장애가 있는 아이를 위탁시설에 맡기고 참여하는 이 시간이 너무 소중하다고 말하는 이, 직장 상사의 괴롭힘으로 얼마 전 퇴사했다는 사람, 자퇴하고 홈스쿨링 중인 고3 아들과 매일 부딪히는 고된 일상을 토로하는 이. 누군가 내밀한 이야기 버튼을 누른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마음이 이끄는 말들을 하나둘 풀어 놓았다. 첫 시간인데도 관계의 거리가 한층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개중에는 책과 상관없는 이야기를 불쑥불쑥 꺼내는 이들도 있었다. 독서 모임이 처음이라 그러하리라. 샛길로 빠지는 이의 이야기도 나는 흥미로웠다. 그런 나와 달리 엉성하고 서툰 분위기에 불편함을 드러내는 이도 있었다. 너무 나갔다 싶으면 노련한 사서가 내용을 정리하며 다시 책 이야기로 자연스레 이끌어 주었다. 날것 그대로의 향이 진하게 풍기는 분위기에 난 한껏 긴장했던 마음이 스르르 풀어졌다.
3월은 판도라의 상자에서
기지개를 켜며 말하네
아직 꽃 피지는 않았지만
이제 곧 활짝 피어나리라는 것 알지 *양광모, <3월 예찬> 일부
벚꽃 축제가 진즉에 끝났다. 예상보다 늦게 핀 벚꽃으로 주인공 없는 축제가 곳곳에서 열렸다. 일본에서는 벚꽃 개화 시기를 계산하는 방법이 있다. 2월 1일부터 시작해서 매일 최고기온 합이 600℃에 도달하는 날이 바로 벚꽃 개화 시기다. 하지만 이상기온으로 예측을 벗어나는 일이 더러 생기면서 곤혹스러워하기는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별반 다르지 않은 듯하다. 어쨌든 들쑥날쑥한 기온 속에서 꽃을 피우는데 드는 에너지를 끌어모아야만 비로소 꽃이 활짝 미소 짓는 날이 온다는 뜻일 테다. 우리의 모임도 격주로 만나면서 온도가 높은 날도 있고 낮은 날도 있을 것이다. 그런 날들의 에너지가 모이고 모여 언젠가는 연연한 벚꽃을 피워내는 날이 오리라. 아직 꽃 피지는 않았지만, 머지않아 활짝 피어나리라.
#진즉에썼다가게으른퇴고로늦은글 #독서모임 #곧활짝피어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