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한 키에 마른 몸. 까만 커트 머리에 올려진 빨간 베레모. 작은 얼굴에서 큰 지분을 차지한 쌍꺼풀 진 똥글똥글한 눈, 끝이 동그라니 오뚝 솟은 코, 작고 얇은 빨간 입술, 즐겨 입던 무릎 아래 길이의 플레어스커트.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구사하는 일본어와 살짝 어눌한 한국말. 대학 시절, 작문을 가르치던 아베 선생님은 아담한 체구와 달리 온몸에서 에너지가 뿜어 나왔다. 가르침은 봄햇살처럼 따사했고 평가는 겨울바람처럼 냉랭했다.
첫 작문 과제의 주제는 ‘봄’. 정해진 분량은 원고지 200자. 서툰 일본어로 200자를 정확히 맞추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나는 내용보다 한국말을 일본어로 어떻게 옮기고 제한된 분량을 맞출지에 급급했다. 봄은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이요, 로 시작하는 지극히 상투적인 글을 제출했던 기억이 난다. 선생님의 반응은 전원 퇴짜였다. 사십여 명이 쓴 글은 천편일률적이라 했다. 일반적인 봄 말고 ‘나만의’ 봄을 쓰라고 강조했다.
기억 속의 봄을 하나씩 들춰보았다. 나는 열두 살 무렵까지 시골에서 자랐다. 뒷산을 오르내리며 이름 모를 꽃을 구경했던 일, 진달래를 따오면 엄마가 꽃잎을 올린 술빵을 만들어준 일을 기억에서 골라내 글을 지었다. 전원이 다시 제출한 과제는 처음과는 확연히 달랐다. 아베 선생님이 말한 대로 사십여 개의 봄이 탄생했다. 진달래 꽃잎이 장식된 술빵을 즐기는 나의 봄이 있고, 노랑 우산에 노랑 장화를 신고 노랑 병아리를 쫓던 친구의 봄도 있었다. 비로소 ‘나만의’ 글이 무엇인지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다.
한 번은 오픈북 시험을 봤다. 사전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한 시험이었다. 대신 시험 시간에 주제를 주고 제한된 시간 내에 글을 써서 제출해야 했다. 시작종이 울리고 주제가 칠판에 적히자마자 연관된 경험을 뽑아내느라 머릿속은 분주했다. 제한된 시간이 쫄깃쫄깃한 긴장감을 몰고 왔다. 초조함을 다독이고 기억을 헤집었다. 가까스로 뽑아낸 경험을 차근차근 문장으로 풀어냈다. 모르는 일본어 단어는 사전에서 찾아내 문장에 박음질했다. 마침내 삐뚤빼뚤 서툰 바느질 솜씨로 나만의 글 옷을 완성했다.
과제가 주어질 때마다 나는 ‘나만의’ 경험 고치에서 뽑은 실로 글 옷을 지었다. 먼지 앉은 기억이 새 옷을 입고 등장했다. 때로는 갓 뽑은 싱싱한 경험이 캐주얼한 차림으로 작문 쇼윈도에 전시되기도 했다. 시간이 갈수록 저마다의 색깔을 더해가는 글에 아베 선생님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언제 냉랭한 겨울바람이 불었나 싶게 햇살이 따사로운 봄이 이어졌다. 짧고도 강렬한 글쓰기의 봄이었다.
비록 머리를 싸매는 괴로운 시간이었지만, 그때가 처음으로 나만의 글 옷 짓는 법을 제대로 배운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아베 선생님이 강조한 ‘나만의’ 글을 쓰는 일은 여전히 글쓰기의 핵심이지만, 나는 자주 그 사실을 잊는다. 때로는 숨바꼭질하듯 모호함 뒤로 숨어버리거나 첫 과제 때처럼 누구나 쓸 수 있는 봄을 끼적거린다. 나만의 경험에서 뽑아낸 실로 소담한 글 옷을 만들어나가는 일은 ‘쓰다’라는 동사의 삶을 사는 한 계속될 나의 고민이자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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