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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윰 Jun 23. 2024

그리움의 정체


<H마트에서 울다>를 읽었다.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저자는 자라면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늘 고민하고 힘들어했다. 미국에서 살면서 미국인으로 인정받고 싶어 했던 그. 하지만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엄마와의 영원한 이별을 겪으면서 이제는 누군가 자신에게서 한국인의 모습을, 엄마의 흔적을 발견해주길 애타게 바라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한국 식재료와 음식을 파는 H마트는 그에게 엄마를 회상하며 그리워하는 장소가 되었다. 엄마가 해준 한국 음식은 곧 엄마와의 추억이자 사랑이며 부인할 수 없는 그의 절반의 정체성이다.  

    

책 내용 중에서도 나는 유독 음식 이야기에 끌렸다. 엄마를 향한 그리움을 ‘망치 여사’ 유튜브를 보고 한국 음식을 만들며 달래던 저자. 저자와 달리 나의 엄마는 살아있지만, 엄마가 해준 음식이 그리울 때가 종종 있다. 노쇠한 엄마에게 이제는 내가 음식을 해드리는 상황이지만, 기억 속 엄마의 맛을 살려내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아들도 다르지 않았던 모양이다. 얼마 전 아들이 불쑥 외할머니가 만들어주던 고추장물이 먹고 싶다고 했다. 유독 고추장물을 떠올린 건 흔히 맛볼 수 없는 음식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들은 6살 때부터 초등학교 3학년까지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이후에도 할머니가 만들어준 음식을 먹으며 할머니 손맛에 길들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그리움이리라.    

  

고추장물은 경상도 음식이다. 음식 이름 때문에 고추장이 들어간다고 오해할 수 있으나, 그렇지 않다. 아마도 고추와 간장과 물로 만든다고 하여 고추장물로 불리는 게 아닐까 싶다. 따뜻한 밥에 넣고 비벼 먹으면 밥 한 그릇은 뚝딱 비운다고 해서 일명 밥도둑이다. 만드는 법을 엄마에게 물어보면 노약한 몸을 이끌고 당장 만들어주겠다고 할까 봐 묻지 않았다. 인터넷에서 찾은 레시피로 기억을 복구하고 재료를 준비했다.      


먼저 풋고추와 청양고추는 꼭지를 따고 씻어 물기가 빠지게 두었다. 멸치는 대가리를 떼 내고 내장을 손질했다. 프라이팬을 달군 후 손질한 멸치를 넣고 수분기가 날아가도록 볶았다. 그런 다음 믹서기에 넣고 갈았다. 물기 빠진 풋고추와 청양고추는 씨를 발라내고 다졌다. 간 멸치, 다진 고추를 냄비에 넣고 물과 진간장, 조선간장, 갈아 놓은 마늘을 넣고 끓였다. 중간에 매실액을 첨가하고 국물이 자작해질 때까지 졸이면 완성이다.      


이렇게 만든 고추장물을 아들도 남편도 맛있다며 먹었지만 나는 뭔가 아쉬웠다. 엄마가 만들어준 그 색깔이, 그 맛이 아니었다. 뭐가 빠졌을까? 나중에 엄마에게 물어보고서야 레시피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엄마는 국물용 멸치를 사용했다. 멸치를 다듬고 칼로 다져서 넣는단다. 프라이팬에 굳이 볶지 않아도 푹 끓이면 비린 맛이 나지 않는다고 조언했다. 또 하나! 엄마는 고춧가루를 넣었다. 칼칼한 맛과 색깔의 차이는 바로 고춧가루였다. 재료를 곱씹는 내게 다진 양파도 추가하면 한결 맛이 좋다고 엄마는 덧붙였다.   

  

내가 짐작하는 가장 큰 차이는 손맛이다. 나는 ‘손맛’ 하면 엄마의 맛이 떠오른다. 엄마에게 음식 만드는 법을 물어보면 엄마는 재료나 양념을 정량으로 말하지 않는다. 조금, 적당히, 많이 정도의 상당히 추상적 언어로 대답한다. 대체 ‘적당히’가 어느 정도를 말하는 거야 되물으면 그때서야 내가 가늠할 수 있는 양으로 설명해준다. 엄마는 계량컵이나 계량스푼을 사용한 적이 없다.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감’으로 요리를 한다. 그렇게 되기까지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터득한 요리 솜씨에 가족을 생각하는 사랑과 정성이 담뿍 담긴 맛. 그것을 나는 엄마의 맛, 손맛이라고 정의한다. 나도 마음만은 뒤지지 않는데 아직은 감이 부족한 걸까.    

  

내가 그리운 건 엄마가 만들어준 특정 음식이 아니다. 엄마가 나를 위해 만든 모든 음식에 고스란히 스민 엄마의 손맛, 즉 사랑이 그리운 거다. 저자도 나와 같은 마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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