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엄마는 추억 더듬기에 재미를 들였다. 만날 때마다 엄마가 길어 올리는 추억의 두레박에는 시원하고 쌉쌀하고 때로는 웃음을 자아내는 이야기가 찰랑댄다.
엄마와 점심을 먹고 아들에 남편까지 넷이 공원에 둘러앉았다. 옛이야기를 하다가 하마터면 분위기가 싸해질 뻔했다. 그 시절 나의 시집살이 한탄이 터져 나와서다. 남편의 불편한 기색을 읽은 나는 얼른 이야기를 돌리려 했으나, 한발 늦었다. 엄마가 속상했던 기억을 꺼냈기 때문이다.
결혼하고 처음 맞이하는 추석. 내가 10월에 결혼했으니 이듬해 추석의 일이다. 벌써 이십오 년이나 지난 이야기를 발굴했다. 시댁에서 만두를 빚었는데 만두 찌는 일을 내가 하게 되었다. 하필이면 찜기 손잡이가 고장 나는 바람에 요령 없이 젓가락으로 뚜껑을 열다가 사고가 나고 말았다. 뜨거운 김에 무작정 노출되어 왼손가락을 덴 것이다. 찬물로 얼른 열을 식혀보았지만, 소용없었다. 벌겋게 달아오른 손가락을 보고 어머님이 함께 있던 둘째 형님과 병원에 다녀오라고 했다.
가까운 종합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다. 자초지종을 들은 의사는 손가락을 살피더니 2도 화상이라고 했다. 다행히 심각한 상태는 아니나 임신 초기로 약을 먹을 수 없으니 며칠 병원에 와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소독하고 화상 연고 같은 걸 바르고 상처 부위를 거즈로 감쌌다. 검지, 중지를 데었는데 엄지를 뺀 네 손가락 전체를 붕대로 감아줬다. 둘째 형님이 웃으며 과잉 치료 아니냐고 물었지만, 의사는 표정 없는 얼굴로 대꾸하지 않았다.
그 손으로 집에 돌아와서 일을 했다. 콩나물 다듬는 간단한 일이었지만, 괜히 서러웠다. 차라리 오른손을 다칠 것이지. 그러면 일은 안 했을 텐데. 아니다, 남들 일하는데 그냥 있는 것도 내 성격에는 불편해서 안절부절못했을 것이다. 아버님과 남편은 외출에서 돌아왔지만 내가 다친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내 부주의로 일어난 일이었지만, 원망의 화살은 남편에게 향했고 지레 감정이 북받친 나는 혼자 마음이 요동쳤다. 내 눈이 쏘아대는 레이저가 따가웠던 걸까. 한참 만에야 알게 된 남편은 붕대 감은 손을 보고 놀랐다. 순간, 왈칵 눈물이 났다.
다음날 차례를 지내고 병원에 들렀다가 친정에 갔다. 엄마는 보자마자 알아챘다. 어찌 된 연유인지 듣더니 안쓰러워했다. 일도 못 하는 딸이 만두를 찌다 손을 데었다는 사실이, 더구나 임신 초기에 그랬다는 점이 못내 안타까웠던 모양이었다. 친정에 오니 드디어 내 편이 생긴 기분이 들었다. 남편에게는 엄살을 떨었지만 나보다 더 아파하는 엄마 앞에서는 그럴 수가 없었다. 얼마 다치지 않았는데 의사가 과하게 붕대를 감아준 거라며 엄마를 달랬다.
흉터는 한참 갔다. 그 일이 엄마 마음에는 여전히 짠하고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었나 보다. 오랜만에 기억의 바닥에서 끄집어 올린 걸 보면. 그때 당시는 아들만 귀히 여기고 며느리에게는 의무와 책임을 앞세우는 어머님 처사에 상처받는 일이 많았다. 엄마가 속상해할까 봐 차마 털어놓지 못한 일들에 비하면 이건 약과인데. 몸을 다치는 일보다 마음을 다치는 일이 더 힘들었는데. 내게 일어난 작은 일조차 소홀히 여기지 않는 엄마의 사랑을 읽는다. '흥, 나는 이런 엄마 있다. 당신은 없지?' 한껏 어깨 뽕이 들어간 마음이 든든한 뒷배를 믿고 터져 나온다.
“남편, 잘해! 안 그러면 엄마한테 바로 이를 거야.”
남편 반응은 익히 예상된다. ‘누나들 오면 나도 다 이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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