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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후조리원은 정말 엄마들의 파라다이스인가?

코로나19는 사람들의 목숨만 앗아간 게 아니었다.

by 혜윰이스트

엄마들의 파라다이스, 산후조리원에 입성하게 되었다.

산후조리원에 들어간 첫날, 비로소 내 몰골을 마주하게 되었다.

얼굴과 목에 핏줄이 다 터져 웬 외계인이 눈앞에 나타난 줄 알았다.

출산의 증표처럼 느껴져 슬프지는 않았지만 묘한 기분이 들었다.


누가 산후조리원을 파라다이스라고 했는가?

내가 그동안 들어왔고 짐작했던 산후조리원 생활은 나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우선 면회가 금지되어 있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사람들과의 물리적 거리감은 더욱 극명해졌고, 첫 아이를 낳은 내가 기대했던 조리원의 따뜻함은 고립감으로 바뀌었다.

조리원 동기, ‘조동’이라는 것도 나에게는 없었다.

다들 문을 꽉 닫은 채 생활하고 있었기에 수유를 하러 가거나 관리를 하러 나올 때를 제외하고는 각자의 조리실에 갇혀 무얼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과거 산후조리원을 경험한 선배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조리원 동기들과 아기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양육에 대한 정보도 오고 갔다고 하는데 나에게는 그저 전설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산후조리원을 퇴소하고 나서도 연락을 주고받으며 인연을 이어가 엄마가 되고 처음 맺게 되는 사회적 관계라고 하던데 나에게 그 처음은 없었다.


전화나 문자로 가족들과 연락을 하고는 있었지만 나는 외로웠고 동시에 두려웠다.

처음으로 아이를 품에 안았을 때, 그 작고 연약한 존재가 내 품에 안겨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지만 혹시 내가 하는 어떤 것들이 아이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까 봐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잘 먹이는 게 조리원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첫 번째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젖을 잘 물지 않아 결국 유축한 젖을 젖병에 넣어주거나 분유를 먹여야 했을 때 모든 게 나의 부족함에서 비롯한 것이라 여기며 자책했다.

산후조리원 경험이 있는 지인들은 ‘새벽 수유콜은 받지 않아도 된다.’ ‘조리원에 있을 때 자유를 마지막으로 누릴 수 있으니 명심하라.’ ‘무조건 많이 자고 푹 쉬어라.’ 등 새벽에 수유를 굳이 하지 말고 자라는 이야기들을 들었던 게 기억났지만 나는 새벽에 가서 아이를 만나고 유축하며 젖양을 늘리기 위해 애썼다.

내게는 그 시간이 내 불안을 잠재우고, 내가 엄마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모든 것이 낯설었다. 아기가 제대로 자라고 있는지, 내가 잘하고 있는지 확신이 없었다. 유난히 짧고 깜빡이는 아기의 숨소리조차 불안하게 느껴졌다.

나는 정말 괜찮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나는 나를 믿어야만 했다.

그 안에서 가족은 나와 아이뿐이었기에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도움받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나는 아이를 위해 모유 수유를 하고 싶었고 유방 전문가와 간호사의 조언을 받아들여, 그들의 경험과 지식에 의지했다. 그렇게 아이를 위해 조리원 생활을 적응해 나갔다.


조리원의 방은 아늑했고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그 안에서의 나는 혼자였고 마냥 편하지 않았다.

얼마 만에 느끼는 사무치는 외로움인지.

창문 너머로 비치는 바깥세상은 그대로인데 모든 게 달라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이에게 모든 것을 쏟아부었지만, 그 과정에서 나 자신은 점점 더 작아지고 희미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내가 한 가지 배운 것이 있다면, 고독 속에서도 나를 믿는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였다.

불안감이 나를 삼키려고 할 때마다, 나는 스스로를 다독였다. "너는 잘하고 있어."라고.

엄마가 되어 경험하는 것들이 모두 처음인 건 나뿐만 아니라, 내 아이가 태어나 만난 이 세상도 엄마라는 존재도 처음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산후조리원의 시간은 내게 고독의 무게를 깊이 느끼게 했지만, 동시에 나의 강인함도 발견하게 했다.

그 시간들은 나에게 엄마로서의 첫 발걸음이자, 세상 속에서 늘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왔던 나 자신과 마주한 가장 고요한 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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