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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남편이 아이를 사랑하게 해 주세요.

갓난아이를 품고 매일 기도했다.

by 혜윰이스트

나는 결혼이 당연한 삶의 과정이라 생각했다.
결혼을 하면 아이를 낳는 것도 자연스러운 순서라고 믿었다.
하지만 남편의 생각은 달랐다.
그의 세계에서는 결혼도 선택 사항, 아이를 낳는 것도 선택 사항이었다.
그 차이는 결혼 후 우리 관계에 미묘한 거리를 만들어냈다.

대부분의 부부는 몇 명의 아이를 낳을지를 고민하지만, 우리는 "낳을지 말지"부터 논의해야 했다.
남편은 항상 말했다.
"네가 원한다면 낳자."
하지만 나는 남편이 원하지 않는 아이를 억지로 세상에 데려오고 싶지 않았다.

그 생각이 발목을 잡아 결정이 계속 미뤄졌다.

그러던 어느 날, 시어머니로부터 문자가 왔다.
평소에 그저 "둘이 행복하면 됐다"라고 하시던 시어머니셨다.
며느리에게 연락을 먼저 하시지 않는 분이 처음으로 보낸 문자에 손주 이야기를 꺼내셨다.
"손주를 볼 수 있으면 여한이 없겠다."
그 메시지는 나를 흔들었다.
내가 그 아이를 낳기로 결심한 순간, 남편이 아니라 시어머니의 소망 때문이라는 사실이 나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난 뒤에야 알았다.
남편은 혹시 내가 임신할까 봐, 낳을지 말지의 결정을 내리기도 전에 임신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독한 피부약을 끊고 1년 가까이 불편을 감수해 왔다는 것을.
그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나는 더더욱 그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었다.
아이를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그저 나를 위해 스스로 타협한 것이었을까?

아이를 키우며 나는 항상 눈치를 봤다.
남편이 아이를 원치 않았다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까 봐.
아이가 울거나 아플 때마다 내가 더 열심히 아이를 돌봐야 한다고 느꼈다.
남편이 이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날 괴롭혔다.
그래서 내 기도는 언제나 같았다.
"우리 아이가 첫마디로 '엄마'가 아니라 '아빠'를 말하게 해 주세요."

육아휴직 동안 나는 아이와 모든 시간을 함께 보냈고, 아이에게 "아빠"를 부르는 연습을 더 시켰다. 아빠를 더 가까운 존재로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내 기도하던 대로, 아이는 거짓말처럼 "아빠"를 먼저 말했다.
아이는 자라면서 엄마보다 아빠가 더 좋다고 말하는 "아빠 껌딱지"가 되었다.

남편은 늦은 시간 귀가할 때에도 늘 자는 아이를 확인했다.
깨어있을 때에는 나보다 더 즐겁게 아이와 놀아주었다.
남편은 아이를 너무도 사랑했고, 아이 역시 그 사랑을 알아채고 있었다.

결국 이렇게 바라는 바를 이뤄냈다.

내가 남편과 아이를 연결하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 그 과정에서 내가 얼마나 고독했는지를 아무도 알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아이가 아빠를 더 따르는 모습을 보며 또 다른 고독이 찾아왔다.
그래도 이제는 안다.
이 고독은 이전에 겪었던 것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그러니 계속 그렇게, 아빠의 소중한 아이로 남아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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