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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는 알았다. 내가 지워지고 있다는 걸.

나를 위한 시간은 없었던 육아휴직 시기

by 혜윰이스트

출산 후 7개월 동안 모유수유를 하느라 매일 새벽 수차례 잠에서 깨어났다.
유축기를 사용하던 시간도 있었다.
멍하니 기계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앉아 있을 때면, 생각도 감정도 없이 무감각하게 시간을 흘려보냈다.
지금 돌이켜보면, 아무 감정이 없었기에 오히려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시간에 무언가를 깊이 느끼고 생각했더라면, 더 버거웠을지도 모르겠다.

육아휴직은 아이뿐만 아니라 엄마인 나에게도 필요한 시간이었건만, 나는 왜 그 시간들을 온전히 아이만을 위해 쏟아부었는지 모르겠다.
맘카페에 글을 올릴 시간에도 아이와 조금이라도 더 놀아주고 싶었다.
SNS를 할 시간에도 아이의 눈을 한 번 더 바라보고 싶었다.
복직 후엔 그런 시간이 없을 거라 생각했기에, 아이가 잠든 시간마저 오롯이 아이를 위한 일로 채워갔다.

이유식과 간식을 직접 만들어 먹였고, 놀잇감도 손수 만들었다.
찍은 사진들로 사진첩을 꾸몄고, 읽는 책마다 육아에 관한 것이었다.
심지어 복직 이후의 생활에 필요한 물품들까지 미리 준비해 두었다.

육아휴직 시절은 워킹맘의 삶보다 시간적으로 훨씬 여유로웠지만, 나는 그 여유를 모두 아이를 위해 쓰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정작 나를 위한 시간은 없었고, 그렇게 내가 지워져 가고 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그 시기는 코로나로 외출조차 조심스러웠던 때였다.
자연스레 아이와 단둘이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고, 어느 날 베란다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다가, 꺼진 TV 화면에 비친 나와 아이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아이는 품에 안겨 있었고, 나는 그 아이를 안고 있었다.
그런데도 베란다 창 밖의 하늘보다 이상하게 예쁘지 않았다.

아이에게서 들려오지 않을 대답을 상상하며 혼잣말을 건넸다.
나를 위한 시간은 없이, 복직 후를 걱정하며 아이의 미래만을 준비하던 날들이었다.
‘내가 이렇게 아이에게 시간을 쏟고 있는데, 과연 일을 하면서도 양육이 가능할까?’
그 질문을 수없이 되뇌었다.

그리고 복직 후, 예상했던 대로 내 시간은 더 이상 아이만을 위한 것으로 채워지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에게 온 마음을 다 쏟았던 육아휴직 시기를 떠올리며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었다.
그 시절 미리 준비해 두었던 것들 덕분에, 복직 후의 바쁜 일상 속에서도 아이에게 주고 싶었던 것들을 조금이나마 전할 수 있었다.

고립감에 사무치던 시기였지만, 아이와의 시간만큼은 더없이 풍성했다.
그리고 내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 건, 한참이 지난 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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