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의 문장들 4

by 김창훈

45도가 넘는 경사의 바위 산을 기어이 올라갔다.

체감은 70도의 가파름이었다.

하나의 거친 암벽을 타고 정상에 올라서자 밑에서는 보이지 않던 또 하나의 암벽이 서있다.

신음을 내뱉었지만 이를 악물고 다부지게 올라갔다.

이른 아침 싱그러운 산보와 같은 트레킹을 상상했던 나에게 불쑥 다가온 거친 현실이었다.

대체 노르웨이 3대 트레킹이라는 말을 붙인 사람은 누구인가, 트레킹은 무엇이고 등산과 차이는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트레킹을 명명한 이들은 적어도 이 트레킹 코스에 등산화 추천을 해줬어야 했다.

미끄러움 방지를 위한 밑창이라거나 충격 흡수를 위한 탄탄함 따위는 없는 내 뉴발란스 러닝화는 가벼운 게 최대 장점이어서 오로지 체력과 순발력으로 올라갔다.

위태로운 구간마다 잡을 수 있는 밧줄이 있었으나 그마저도 안전하진 않았다.

온전히 기대면 위험해서 밧줄을 잡고도 몇 번 미끄러져 넘어졌다.


Kjeragboltn는 Kjerag 산에 있는 돌이란 의미다.

이곳에 오고 싶었던 이유는 한 포스터 때문이었다.

암벽 사이에 낀 돌 위에서 발가벗은 남자가 만세하고 있는 뒷모습을 포스터에서 보고 무한한 자유를 느꼈다.

이후 줄곧 이곳에 오고 싶었다.

도전, 모험, 자유를 담은 사진 속 공간에 가면 나도 그러한 것을 얻을 것이라 상상하면서.




트레킹을 시작하기 전 아침엔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잠에서 깼다.

공기는 서늘했지만 침구는 몹시 부드럽고 푹신해서 기분 좋은 잠자리였다.

여행을 하는 동안 곤히 잠들고 개운하게 일어나는 것의 반복이 많다.

몸을 많이 움직이고 스트레스가 없는 탓이다.

여행하는 동안에는 내내 신체가 이완되어있다.


주섬주섬 겉옷을 걸치고 밖으로 나왔을 땐 온전한 협곡의 형태가 눈앞에 드러나 있었다.

그 양 옆으로 끝없이 늘어선 협곡의 벽은 너무나 거대해서 그 앞에 선 스스로가 매우 작은 존재로 느껴졌다.

살면서 나라는 존재를 세상의 일부로 자각한 경험이 많지 않기에 그대로 우두커니 서서 전율을 느끼다가 돌아섰다.

Kjeragboltn 트레킹은 저 협곡의 벽(피오르드) 위로 올라가는 여정이다.


빈속으로 산을 오를 수는 없다는 생각에 라면을 끓여 먹었다.

뜨거운 국물에 몸과 마음이 풀어지고 배가 든든하니 힘이 났다.

라면이라는 놈은 사람 몸과 마음을 달래고 풀어주는 묘한 능력이 있다.


트레킹을 시작하고 꾸준히 두 시간을 걸었을 때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곳은 피오르드의 일부이고 협곡을 이루는 절벽의 상단이다.

삐죽삐죽한 바위산이 아니라 돌로 된 고지대에선 풀 한 포기 나무 한그루 보기 드물고 외계 행성과 같은 느낌이다.

Kjeragboltn, 처음 보는 광경은 상상처럼 대단하지 않았다. 바위틈에 낀 바위 딱 그 정도.

그런데 잠시 후 그 바위가 내가 올라온 높이만큼 허공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멋지고 경이로운 것을 보고, 사진을 남길 수 있는 것은 큰 영광이지만 그 영광스러운 순간이 죽음과 가깝다고 누구도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바위 쪽에 도착한 순서대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사람들이 하나 둘 올라섰다 내려오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슬렁슬렁 해졌다.

대단한 경험이다.

앞서 산을 올라온 사람이 사진을 찍어줄 수 있는지 물어서 가로로 세로로 멀리서 가까이서 줌을 당겨서 풀어서 이 포즈 저 포즈로 최선을 다해 찍어줬다.

그에게 내 카메라를 맡기고 나도 줄을 섰다.


내 차례가 다가오고 바위 앞으로 다가갈수록 바위 밑으로 상상할 수 없는 높이의 허공이 보였다.

바위에 오른 사람이 떨어질 수도, 바위 자체가 떨어질 수도 있다.

그 열린 가능성이 주는 감정이 몹시 복잡했다.

혼자인 데다가 이런 상황을 전혀 생각지 않았기에 불안하고 초조함을 나누고 기댈 수도 없었다.

포스터를 보고 내가 기대했던 것은 이 장소를 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저 바위에 올라서는 것이었다.

사진 속 그 남자는 어떻게 저기에 옷을 벗고 올라가서 뒤돌아 만세 포즈를 하고 서있었을까.

불안함, 초조함, 긴장이 뒤섞여 감정의 파도를 타는 동안 차례는 다가왔고 끝내 눈 질끈 감으며, 해볼 건 다 해보자 싶은 마음으로 조심스레 바위 위로 기어서 올라갔다.

고소 공포증이 있어서 높은 곳을 생각하면 손에 땀이 나고 어지러워서 바위에 오르는 동안 밑은 아예 쳐다보지 않았다.

그 높이 위에 조막만 한 마음으로 앉았다.

차마 일어설 용기는 나지 않아서 그 자세 그대로 사진을 부탁한 사람을 바라봤다.

그가 활짝 웃으며 사진을 찍어줬기에 나도 웃으며 포즈를 취할 수 있었다.

적당히 몇 장의 사진을 찍고 이대로 도망가려는데 그가 스탠드업을 외쳤다. 일어나 보라고 괜찮다고.

잠시 망설였지만 역시 안될 것 같다고 고개를 저었다.

나는 안될 것 같다고 손사래 치면서도 ‘이왕 왔는데,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라는 미련이 남았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한 번의 용기와 즉각적인 실행이 이번 세계여행을 시작하면서 되뇐 주문 같은 것이었는데 이번에도 그 용기가 필요했다.

그에게 일어나 보겠다고 말하고서 조심스레 일어났다.

누군가의 작은 박수가 들렸다.

긴장으로 굳어있는 몸의 어떤 상태를 유지한 체 손을 하늘로 뻗어 포즈를 취하고 다시 한번 용기를 주는 사람들의 박수 소리가 들렸다.

몸을 세우고 사람들의 미소가 눈에 들어오자 스스로 해냈다는 어떤 느낌과 자신감이 생겨서 미소를 지으며 올라설 때보다 여유롭게 바위를 내려왔다.


카메라를 받아 들고 다시 그 바위를 보면서 언어로 정의할 수 없는 어떤 감정을 느꼈다.

‘맙소사 내가 저기에 올라갔다니’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을 혼자 여행하기 때문에 감정을 고스란히 내비치고 온전히 스스로를 마주한다.

외롭지만, 외롭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순간들이다.

누구 하나 아는 사람 있었다면 포기했을지도, 용기 있는 척을 하며 올라섰을지도 모른다.

감정을 의지할 곳 없는 경험이 혼자 하는 여행 동안 있다.

서울 자취방에서도 감정을 의지할 곳 없이 혼자 감내해야 하는 외로움이 있었지만 많은 것이 얽히고설킨 거주지의 일상은, 비행기 이륙과 동시에 모든 사슬로부터 벗어나 '여행' 하나만을 계획하고 만들며 느끼는 감정과 달랐다.


내가 넘어온 큰 바위산은 협곡 상단의 아주 작은 돌기에 불과하다.

수직의 절벽 아래는 차마 서서 볼 용기가 없어서 기어가서 엎드린 채로 내려다봤다.

어릴 때부터 높은 곳에 있을 때면 아래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공포가 있다.

난간에서는 몸이 실제로 기울어서 특히 난간을 기피하게 된다.

정말 까마득히 높아서 엎드려 있는데도 긴장과 아찔함이 몰려오고 아득한 높이에 마냥 경탄하게 된다.


돌아가는 길에 다시 한번 가파른 경사 앞에 다다르자 막막함에 헛웃음이 나왔다.

벽에 기대어진 사다리를 올라갈 때 올라가는 자세로 내려오지 반대로는 엄두가 안 나는 것과 같은 기분이었다.

올라와봤기에 내려갈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하며 하행했으나 세 번을 미끄러져 넘어졌다.


결과적으로 재밌는 트레킹 코스다.

왕복 4시간가량의 적당한 거리이고 가는 과정과 목적지가 지루하지 않다.

만들어진 길보다는 자연 그대로를 각자의 방법으로 자유분방하게 올라가는 묘미도 있다.

사방으로 경로가 트여있지만 사람들이 올바르게 가고 있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여기저기 돌에 'T'라고 페인팅이 돼있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여행자 개인에게 선택의 자유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위험한 돌에 올라갈 수 있고, 피오르드 벼랑 끝에 고개를 내밀 수 있다.

포스터의 장면처럼 멋진 사진을 남긴 것은 아니지만 둥근 바위 위를 오르던 경험은 깊게 남아서 지금도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고, 앞으로도 뒤로도 몸이 기울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상상하게 돼서 글을 쓰는 지금도 손에 땀이 배어 나온다.

이런 경험을 하고,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게 값지다.


페리를 타고 피오르드를 따라 이동한 뒤 jorpeland로 갔다.




글을 써보려고 시도한 적이 몇 번인가 있었다. 하지만 그땐 단 한 줄도 쓸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이 너무나 지나치게 선명해서 어디서부터 손을 대면 좋을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젠 알게 됐다. 결국 따지고 보면 - 하고 나는 생각한다 - 글이라는 불완전한 그릇에 담을 수 있는 것은 불완전한 기억이나 불완전한 상념밖엔 없는 것이다.

-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 중


여행을 하면서 뿐만 아니라 여행을 마친 직후에도 몇 차례 글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정말 마음에 드는 글을 단 한 줄도 쓸 수 없었다.

손으로는 글을 쓰고 있지만 기록의 반복에 지나지 않았다.

여행을 하면서 찍은 사진과 메모를 굳이 보지 않아도 모든 것이 머릿속에서 선명했으나 정말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 더듬는 과정이 필요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너무나 찬란한 순간들이었다.

다만 사실의 발자취를 쫓는 것에 비해 순간순간마다 느꼈던 감정의 발자취를 쫓는 것은 점점 어려웠다.

사진과 숙박기록, 메모 등을 참고해도 그랬다.

감정은 그날 여행을 하면서도 몇 발짝 뒤에 놓치곤 했던 것이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서 글이 마음에서 풀려 나오기 시작할 때 결국 경험이 아니라 감정의 파편들이 글의 요소가 됐다.

나 자신이 솔직할 준비가 필요했다.

여전히 용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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