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rpeland에서 저렴한 가격에 아늑한 숙소를 구했다.
짐을 풀고 속옷과 양말 빨래를 해서 라디에이터 부근에 널었다.
라디에이터가 있는 곳에서는 자고 일어나면 빨래가 바짝 말라있어서 좋다.
습기를 머금은 옷이 자는 동안 가습기 역할도 해준다.
<노르웨이의 숲>에서 일본 가정식을 소박하고 맛깔나게 설명해둔 탓에 입안 가득히 군침이 돌았다.
기어이 쌀을 먹어야 할 날이다.
구글에서 위치를 확인한 뒤 차를 타고 마을에 있는 초밥집으로 향했다.
한적하고 작은 항구 마을 같았다.
숙소가 몹시 아늑하고 창문 밖 풍경이 근사했기 때문에 숙소에서 먹기 위해 연어 초밥을 포장했다.
방 안에서 경건한 의식을 치르는 것처럼 포장 용기를 벗기고 창문에 걸터앉아 초밥을 먹었다.
윤기 나는 쌀밥에 간이 잘된 샤리는 감동스러웠고 네타로 사용된 노르웨이산 연어 또한 좋았다.
유독 양이 적게 느껴졌다.
창밖에는 하얀 배들이 돛대만을 세운채 항구에 정박해있었고 아주 느릿하게 어둠이 오고 있었다.
미도리의 요리 솜씨는 나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아주 훌륭한 것이었다.
전갱이 초절임에, 다시 국물로 간을 한 두툼한 계란말이, 손수 만든 시금치 조림, 가지 조림, 순채 장국, 버섯밥, 거기다 단무지를 잘게 썰어 깨소금 뿌린 것을 듬뿍 곁들여 내놓았다. 양념은 산뜻한 간사이풍의 싱거운 맛이었다.
“아주 맛있는데.” 하고 나는 감탄해서 말했다.
-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 중
초밥을 사서 숙소에 도착했을 때 한국인 가족이 무거운 짐을 내리는 것을 봤다.
반가워서 인사를 하고 짐을 엘리베이터 앞까지 옮기는 것을 도왔다.
노르웨이에 온 뒤로 처음 보는 한국인들인데 jorpeland가 사람들이 찾지 않을 곳이어서 더 의외의 만남이었다.
가족 모두 등산을 좋아해서 아들이 휴가를 사용하고 그동안 번 돈으로 부모님을 모시고 왔다고 한다.
아마 3대 트레킹 정복이 목표인 듯했다.
짐이 범상치 않았다.
노르웨이의 아름다움을 보는 동안 부모님을 떠올렸기 때문인지 그 모습이 무척 좋아 보였다. 부러웠다.
노곤한 몸으로 일찍 침대에 누워서 잠들기 전까지 부모님을 생각했다.
늘 웃는 모습을 먼저 떠올린다. 그리고 "아들"이라고 외치는 목소리를 떠올린다.
나의 부모는 천사와 어린아이 같은 모습을 가졌다. 그들을 생각하면 늘 마음이 애잔하다.
호강시켜드리진 못해도 고된 삶은 살지 않게 해드리고 싶었는데 내 인생을 찾기 위해 발버둥 치느라 내 부모의 삶을 잠시 나에게서 떨어트렸다.
2년간 우리 가족을 짓누르고 있던 아빠의 혹을 제거하고 6개월 후 아산 병원 홍석준 교수가 수술 잘 됐고 전이가 없다고 진단 한 날부터 나는 맹렬하게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2년간 주말을 투자했던 중앙대 상담심리 과정이 종료되기 전에 고려대와 가톨릭 대학교 석사 과정에 합격 통보를 받았다.
나는 그것을 그대로 둔 채 세계여행을 결심했다.
여행 자체를 위한 계획은 크게 없었으나 이 여행을 결심하기까지 모든 과정이 내게 준비였던 셈이다.
이런 나를 보고 부유해서 할 수 있는 결정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돈이 삶의 우선순위에 있지 않던 내 삶의 형태를 보고 할 수 있는 착각이었으나 우리 집은 단 한 번도 부유해본 적이 없다.
내가 바로 서고 내 삶을 사랑할 수 있어야 내 부모도 행복할 것이라고 믿을 뿐이다.
예전에 친한 선배 하나가 잔뜩 취해서 내게 야이 거지새끼야 라고 했을 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건 취한 사람과 드잡이 하고 싶지 않기도 했지만 그 말이 맞았기 때문이다. 나는 참으로 가진 게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입이 쓰고 자존심이 상했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도 그 말에 부인할 것이 없었다.
그 형이 어떻게 내 사정을 알고 한 소리인 줄은 모르겠다.
이듬해 봄이 오기 전에 가진 돈을 모두 끌어모아서 학자금 대출을 다 갚아버렸다.
그럴수록 더욱 마음을 부유하게 함으로써 삶을 살아왔다.
가진 게 없어 자꾸 움츠러들고 삶에 짓눌리는 부모님께도 우리가 재산으로 부유하지 못해도 상관없으니 마음이 부유한 가족을 만들자고 했다.
우리가 건강하고 삼시세끼 밥을 챙겨 먹을 수 있고 사랑이 넘치는 가족이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했다.
이런 말과 상관없이 너무 늦지 않은 언젠가 호강시켜드릴 생각이다.
이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다 보면 이 여행이 그만한 가치가 있는지 의심이 고개를 들고 어깨가 무겁지만 그런 무게와 어두움이 여기에 깃들어선 안된다.
빠르게 고개를 털어 날려 보내고 눈을 감았다.
Preikestolen는 3대 트레킹 장소 중 하나다.
전날 Kjeragboltn을 오르기 시작하면서 곧장 암벽 등반의 고됨을 경험했기 때문인지 Preikestolen는 평이하게 느껴졌다.
잘 정비된 길을 따라서 왕복 4시간이 소요됐고 나무가 우거진 풍경을 보면서 걷는 맛이 있었다.
길 끝은 피오르드 절벽이었는데 돌출된 부위에서 피오르드가 만든 협곡을 내려다볼 수 있어서 근사했다.
이 부분을 Pulpit Rock이라 부르고 '꼭대기 부분이 평평한 604m 높이의 절벽에서 탁 트인 전망과 산악 등반을 즐기기 좋습니다.'라고 구글에서 설명하고 있다.
604m의 산이 아니다 수직으로 깎아 내려진 절벽이다.
그곳에 도착한 이들은 모두 멋진 사진을 찍기 위해 그 절벽 끝에 앉거나 선다.
어떤 의미에서 내가 생각하던 트레킹과 일치했지만 이미 전날 경험을 통해 노르웨이의 트레킹이란 거칠고 날 것이어야 한다고 인식에 변화가 있었다.
3대 트레킹 장소가 인기 있는 명소인지 끝 지점에서 한국인 여행자 두 명을 만나서 서로 원하는 만큼 사진을 찍어줬다.
사람마다 사진을 찍는 구도가 다른데 한국인들만큼 보편적으로 센스가 좋고 원하는 만큼 찍어주는 민족은 없다.
Pulpit Rock도 좋지만 그곳이 내려다 보이는 곳까지 조금 더 올라가서 전체를 눈에 담는 게 더 좋았다.
다들 몸을 돌려 돌아갈 때도 나는 그곳에 앉아 있다가 안개가 자욱해서 더 이상 먼 풍경이 보이지 않을 때 일어났다. 운이 좋았었나 보다.
시계방향으로 큰 원을 그리며 이동하는 여행 경로 중 좌측 하단부에 계속 언급하고 있는 3대 트레킹 장소가 몰려있다.
마지막 트레킹 장소인 Trolltunga에 가기 위해 근처 마을인 odda로 이동했다.
첫날 총 10시간의 이동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인내했기 때문에 4시간 정도의 운전은 한순간도 지루하지 않았다.
멋진 풍경이 있는 곳에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었고, 떠오르는 생각을 메모하거나 몇 장의 책을 읽었다.
odda는 트레킹을 준비하는 이들을 위한 마을과도 같았다.
트롤퉁가 스튜디오라는 호스텔에 도착하니 이전과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28km, 왕복 8-12시간이 걸리는 Trolltunga 트레킹은 각오가 필요하다.
그런 각오로 장비를 점검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이미 트레킹을 마치고 지친 몸을 달래면서 다른 여행자들에게 경험을 이야기해주는 여행자도 있었다.
절뚝이며 샤워장으로 향하는 여행자도 있었고, 포기하는 여행자도 있었다.
그런 소란함 속에서 나는 마트에서 사 온 재스민 쌀을 씻어서 냄비에 안쳤다.
밥심으로 올라갈 생각이다.
특별한 장비도 없고 뒤로 물러설 생각도 없다.
러닝화가 통기성을 위해 메쉬 소재로 되어있어서 비만 안오길 바랄 뿐이다.
재스민 쌀은 찰기가 부족하기 때문에 죽을 끓인다는 생각으로 물을 넉넉하게 넣었는데 주효했다.
핀란드에서 받은 반찬을 봉투에서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