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광이가 돼야 한다

영어가 끈적하게 내 일상에 달라붙었다

by 김창훈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기도 전에 벌써 잠든 아이들의 코 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잡담을 마치고 동시에 누웠다고 생각했는데 눕자마자 잠드는 것을 보니 그 능력이 부럽기만 하다.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누운 청년들의 코 고는 소리는 국적이 없다.

아직은 낯선 침대 위에서 눈을 감으면 어김없이 풀벌레 소리가 들려오고, 낯선 환경과 내일 봉사에 대한 생각으로 피곤함과 설렘, 복잡한 심경이 내려앉는다.


영어가 끈적하게 내 일상에 달라붙었다.

부족한 내 영어실력이 불편하다.

세계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우려했던 것이다.

부족한 영어로도 세상을 돌아다닐 수 있을까 불안하고 의문이었던 것이 필리핀, 싱가포르,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를 통과하는 동안 숨어서 자취를 감추고 있다가 태국에서 불쑥 실체를 드러내 진득하게 일상을 감싼다.

여행에 필요한 것을 준비하고 출발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때의 난 영어 실력을 포함해서 많은 것을 준비하고 세계여행을 시작할 수 없었다.

흘러가는 시간에 내 용기가 갉아 먹히기 전에, 의지와 의미가 퇴색되기 전에 결심하고 빠르게 실행해야 했다.


산과 바다, 도시와 명소 등을 오가며 낯선 장소를 탐색하는 여행만을 연속했다면 크게 불편하지 않았을 언어 수단이 영어를 중심으로 활동해야 하는 봉사 현장에서 도전 그 자체를 이루는 단일 요소가 됐다.

이런 환경인 줄 알았기에 이곳에 오길 결정한 것이고, 걱정, 두려움, 망설임 등 그 모든 것을 포함한 불편한 마음을 맞서고 이겨내야 한다.

여태껏 영어를 쓸 수밖에 없는 환경에 있었으면서도 유독 태국에서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은 내가 선택한 봉사 팀이 영어를 교육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봉사의 본질이 영어에 있는 탓에 영어 실력에 떳떳하지 못하니 움츠러들기 십상이다.

게다가 영어 실력이 부족한데 왜 영어 봉사를 택했는지 누군가 추궁한다면 도전이라는 개인적 의도가 있기 때문에 아주 떳떳할 수 없었다.

봉사를 임하는 것에 있어서는 떳떳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감히 봉사자 중에서는 가장 최선을 다하고, 가장 마음을 담고 있다.

부족한 실력이 교육하는 정도에 해가 되지 않는 것은 정말 다행이다.


이런 도전에 맞서는 방법은 그 안으로 온전히 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것은 미쳐야지만 움츠러듬을 떨쳐내고 이겨낼 수 있다.

“미치광이가 돼야 한다.”

베트남에서 그라힘이 했던 말이다.

여느 때처럼 평화로운 주말 아침, 책을 읽고 있는 그라힘에게 다가가서 인사를 건넸다.

그날은 누군가에게 말을 꺼내고 싶은 날이었다.

인자한 웃음을 띤 그는 책을 내려두고서 몸을 열어 이야기할 자세를 취했다.

그 웃음과 그 자세가 나로 하여금 마음 가운데 있는 말을 꺼내게 했다.

삶의 지혜를 구하는 마음으로 내가 베트남까지 어떻게 오게 됐는지 요즘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는지 등을 차근히 말했다.

영어에 한계가 있어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한정되고 마음처럼 전달하기 힘들어 답답했지만 그라힘은 모든 말을 끝까지 경청해 줬다.

잠시 후, 그는 살면서 많은 어려움들이 있었다며 입을 뗐다.

살면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는데 그것들이 어떤 문제인가에 따라 상황에 따라 어려움과 해결방법이 매번 달랐다고 했다.

인생은 좋을 때와 나쁠 때가 오고 가는 굴곡이 있고, 특히 나쁠 때 자신에겐 인내가 필요했다고 했다.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썼더니 스트레스만 생겼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덧붙여서 이런 말들을 해주었다.

“모든 삶은 여행이다. 도전해라. 미치광이가 되어봐라.” 이후로도 나와 대화할 땐 도전과 미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라힘은 십오 년 전까지 프로그래머 일을 했다.

아프리카에서 태어나 남아공에 살다가, 아르헨티나로 이동했는데 그곳은 정말 다른 세상이었다고 했다.

‘정말 다른 세상’ 나는 그 말에 담긴 것을 차마 헤아릴 수 없었다.

그다음엔 오스트레일리아로 갔고 다행히 그곳에서 비자를 받고 살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런 삶의 여정 중에 프로그래머였던 그라힘은 어느 날 백페커스를 하기로 결심하고 13년간을 운영하다가 2년 전에 그만두고 베트남에 왔다.

삶을 통과해 온 이야기들은 시간과 공간을 격하고 곧장 마음으로 들어왔다.

그의 이야기가 특별했기 때문이 아니라 온전히 내 말을 경청해 주고 내게 삶의 지혜를 나누어주는 그의 태도 때문이었다.

그는 조언하지 않고 담담히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굳이 조언이라면 도전과 미쳐야 하는 것이었는데 그런 말을 건넬 때 그의 표정과 눈동자까지 모두 선명하게 기억한다.

그는 내가 보내고 있는 시간이 눈부신 청춘의 일부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내 말을 들어줄 때 내 생각이 정리되고, 그의 눈동자에 비친 나를 보면서 지금이 무모하더라도 도전하고 부딪쳐야 하는 시기임을 알았다.

때론 미친것처럼 보일지라도 지금은 그래야 할 때다.


태국에서 영어로 인해 움츠러든 마음을 인지하면서부터 계속해서 되뇌고 있다.

지금이 움츠러들 때가 아니라 미친 척하고 자신 있게 나설 때라고.

못하는 영어로도 더 봉사자들에게 말 걸고, 함께 교육 방법을 논의하고, 회의 때도 생각을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렵다.

정말 미쳐야만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다시 찾아온 아침, 수건과 세면도구를 손에 들고 잔디밭을 가로질러 가는 길에 따라온 몽롱함은 샤워를 하면서 곧장 씻기 운다.

머리가 깨질 듯이 차가운 물에 졸음이 버틸 재간은 없다.

문에 옷을 아슬하게 걸어두고서 바가지로 뜬 물을 처음에는 손과 발에 뿌려보고, 그 차가움에 놀라서 차마 몸에 물을 끼얹지 못하고 머리를 먼저 감다가, 결국 몸에 한 바가지 크게 붓고 나면 이제 새로운 하루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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