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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훈 Oct 30. 2022

어떤 경험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 한 느낌

발을 디뎠다

 매미소리 쏴—

 아이는 구급차를

 못 쫓아왔네.


 하이쿠 시인인 이시바시 히데노의 시다.

 여름이면 늘 이 하이쿠 시가 떠오른다. 김연수 작가의 책을 읽고 난 다음부터다.


 매미소리 쏴—

 김연수 작가의 청춘의 문장들에 따르면 이는 삶의 여백이자 죽음의 적막을 언어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어 귀를 때리는 한여름의 매미소리를 역설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라고 한다.

 매미소리가 천지를 울리다가 문득 멈춘 상태.

 그래서 이시바시 히데노가 ‘매미소리 쏴—‘(소나기처럼 갑자기 일제히 들리는 매미소리)라고 할 때, 듣는 사람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다.

 ‘매미소리 쏴—‘의 귓전을 울리는 이 매미소리는 적막을 표현하기 위한 장치니까


 언제나 더운 필리핀에도 여름이 있고 4월, 5월이 그 여름이다.

 이 여름은 덥지만 아직 건기에 해당해서 물놀이를 즐기기 으뜸이다.

 수천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필리핀에서 바다를 가는 것은 너무도 쉬운 방법인데 막탄의 바다는 개인 사업자들의 점령으로 관광객이 즐비하다.


 필리핀에 도착한 지 일주일, 나는 스쿠버 다이빙에 도전했다.

 물속에서 느끼는 적막은 안정의 적막함이다.

 밑으로 내려간 물속에서의 소리는 대체로 온유하고 깊다.

 내 숨소리만 들리는 적막 속에서 바라보는 앞쪽 바다 세상은 신비롭고, 수면 쪽은 황홀해서 점차 나의 숨소리마저 들리지 않게 되다가 이따금 정신을 차린다.


 같이 갔음에도 깊은 수심에서 혼자 있다는 생각이 들면 두려움이 밀려오는데 그때는 숨이 가빠진다. 

 가쁜 숨소리보다 호흡기에서 더 이상 소리를 내지 못할 것을 떠올리는 것이 무섭다. 

 스쿠버 다이빙은 수영을 못하는 내가 두려움을 이기고 도전해 낸 것 중 하나다.

 수영을 못해도 다이빙을 할 수 있다는 말은 수영을 못 하는 내게 잘 들리지 않았지만 필리핀에 온 것은 그 용기를 낼 수 있게 했고 함께 해준 사람들은 그것을 실행하게 했다.

 앤드류, 헤일리, 세라, 소피아에게 감사하다.


 처음 물속에 들어간 날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앤드류의 입에서 뿜어진 뱃고동 소리에 웃음이 터진 탓인지 바닷속을 보게 된 감격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땅 위의 것들을 다 보지 못해 아쉬워하다가 바닷속 세상도 있음을 알게 되니 세계관이 얼마나 넓어진 것인지 모르겠다.


 한번 물속에 다녀오면 어김없이 한 번의 휴식을 갖는다.

 물속 세상은 신비롭지만 나는 물 밖의 세상이 더 좋다. 

 이국의 언어와 음악소리가 들려오고, 새파랗고 탁 트인 바다 풍경 속에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와 박힌다.

 그늘 아래 스르륵 잠이 든다.


 물속에서는 장비가 없이 숨을 쉴 수 없고 말로 대화할 수 없다.

 놀라운 것을 발견해도 상대에게 의사를 정확히 전달할 수 없으니 말이란 이렇게 소중한 것이었다.

 그래서 물속에서는 수신호라거나 불빛이나 소리 나는 물체를 때려서 의사를 전달하는데, 이 신호들은 모든 언어를 뛰어넘는 직관성과 통일성을 갖춰서 대화가 되지 않았던 상대들과도 대화가 되게 한다.

 어쭙잖게 말로 표현할 뻔했던 것들도 간단한 손짓만으로 상대에게 알려 그가 보고 그의 것으로 해석해내게 하니 대단하다.


 산호와 작은 물고기들에게 나는 땅에서 처럼 강하고, 어두워 깊은 수심과 큰 물고기 앞에서 나는 작고 연약하다.

 땅에서 느리다고 했던 거북이는 물에서 몹시 빠르고, 물에서 느린 나는 땅에 가서야 거북이보다 빠르다.

 어릴 때 나는 달리기를 곧잘 해서 달리기 대회에 나가곤 했다.

 영채, 민수와 뛰어놀던 둑실의 언덕을 가장 먼저 뛰어내려왔고 나이 먹기나 얼음땡처럼 빠른 달리기를 필요로 하는 게임이 있으면 여간 잡히질 않았다.

 엄마와 외할아버지가 화났을 때도 마당에서 나무를 두고 뱅뱅 돌기만 했다면 나는 잡히지 않았을 것이다. 

 운동회 때는 1등에게 찍어주는 도장이 손에서 지워지지 않게 간직했다가 엄마한테 자랑하는 것이 기쁨이었다.

 목욕탕을 나오면 동순천 다리까지 달리기 시합을 하던 우리의 승패가 바뀌던 날까지 엄마는 내가 아는 가장 빠른 사람이었다.


 운동회 때 계주가 열리면 어김없이 주자 중 하나로 뽑히곤 했는데 한 번은 반대항 계주에서 배턴을 놓쳤다.

 이후로 나는 계주 때마다 배턴을 놓칠까 봐 불안해했다.

 어떤 날엔, 무등경기장에서 열린 육상대회에 100미터 주자로 출전하여 세 번째로 결승선을 통과했고, 그날은 개인전에서 처음으로 결승선을 일등으로 통과하지 못한 날이었다.

 출발이 빠르지 못했다거나 결승선을 통과할 때까지 속력을 줄였으면 안 됐다는 자책을 했지만 그것보다. 

 내가 가장 빠르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움텄다.

 청팀과 백팀으로 나눠진 내 기억의 마지막 운동회에서 나는 마지막 주자의 기회를 다른 아이에게 넘겼다.

 왜 네가 마지막 주자로 안 나가냐고 아이들이 물을 때마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했지만 사실 나는 두려웠다.

 ‘배턴을 놓치면, 따라 잡힌다면.’

 그날 다른 사람이 운동장을 뛰는 것을 바라보던 기억은 선명해서 어떤 경험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 한 느낌을 나는 알고 있다.

 이후로 나는 내 앞에 있는 도전 기회를 쉽게 놓치지 않았다.


 다이빙 수업을 하던 마지막 날 야간 다이빙 후 물 위로 나와서 본 밤하늘에는 별들이 흩날려 있었다. 

사방이 몹시도 고요해서 부표 위에 가만히 누웠다.

 금요일에 마지막 퇴근을 하고 일요일에 비행기를 탔다. 

 세계여행을 가겠다며 내가 살던 세상 밖으로 나와 필리핀에 도착한 게 얼마 전이다. 

 다른 나라가 아니라 다른 세상에 온 것처럼 완전히 다른 일상을 살고 있다. 

 바닷속을 유영하고 밤바다 한가운데에 누워 별을 본다.


 파도소리 쏴—

 손바닥으로 귀를 막으면 물속의 소리가 나고 손을 모아서 귀를 막으면 물밖의 바닷가 소리가 난다.

 어릴 때는 손을 모아서 귀를 막으며 물밖의 바닷가를 상상할 때가 많았는데 이제는 손바닥으로 귀를 막아 물속을 떠올려볼 때가 많다. 

 글을 멈추고 가만히 눈을 감고 손바닥으로 귀를 막았다.




 "인생에서 비행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몇 초보다 더 해방감을 주는 시간은 찾아보기 힘들다."

 알랭 드 보통씨의 <여행의 기술>에서


 한국을 떠나는 날까지 내게 준비된 것은 여행 배낭과 필리핀으로 가는 비행기표 한 장뿐이었다.

 공항에 도착해서야 챙긴 것을 되돌아봤지만 돌아올 표가 없이 떠나는 길에 무책임을 동반한 자유를 선사했다 여기며 발을 디뎠다.


 서른이 넘은 아들이 멀쩡히 다니던 회사 생활을 멈추고 세계여행을 간다는 말에 엄마는 얼어붙었다.

 흙빛으로 변한 엄마의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다.

 왜 세계여행을 떠나기로 했는지 타인에게 전달할 수 있을 만큼 명확한 이유를 정리하지 못했을 때였다.

 다만 세계여행을 가야겠다는 확신은 있었다.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고 그저 세상을 둘러보고 오겠다고 했다.

 왜 떠나는지에 대한 이유는 계속 내 안에 있었지만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관점에서 내 결정을 판단했다.

 이 글이 다쓰일 때에야 세계여행이어야 했던 이유를 온전히 전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여행을 떠나야겠다고 결심한 이유와 세계여행을 떠나야 하는 이유 모두.

 여행과 여행이 연속되는 세계여행은 여행의 방법과 이유를 끝없이 고민하고 시도하게 한다.

 세계여행의 방법은 여행의 목적과 닿아 있고,

 여행의 목적은 여행을 떠난 이유와 닿아있고,

 여행을 하는 이유는 내 삶의 고민과 닿아있다.

 나는 내 인생의 주체로 바로 서기 위해 청춘의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내 옆자리에는 꼬마가 앉았다.

 생애 첫 비행기를 타는 이 어린이는 발을 동동 구르며 많은 질문을 쏟아냈다.

 아이 엄마는 얌전히 있도록 주의시키면서 동시에 설렘을 함께 해준다.

 비행기가 어떤 것인지 필리핀은 어떤 곳인지 이야기하는 동안 이륙의 순간이 다가오고 그들의 목소리는 점점 커져갔다.

 엄마의 목소리는 커져가고

 아이는 말수를 잃어가고

 엄마는 모든 느낌, 혹은 아이가 느낄법한 감정을 뛰어나게 설명했다.

 ‘간다!! 빠르다!! 떴다!!! 느낌이 이상하지?!!!’ 비행기는 그렇게 이륙했고 덕분에 나도 그렇게 이륙했다.

 아마 아이보다 내가 그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이다. 나는 엄마의 말을 귀담아 들었다.


 떠난다.

 비행기가 상승하는 몇 초 만에 나는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감을 느꼈다.

 인간관계, 의무, 지위, 부, 명예, 시선, 욕심, 미래

 나를 감싸고 있던 모든 것이 다 부질없는 것이 됐다.

 세계여행을 만들어가는 것 하나만 오롯하다.


 새벽 필리핀 막탄 공항.

 한국으로부터 발을 떼어 필리핀으로 발을 디뎠다.

 어느 장소에 가면 그 지역 특유의 향에 반응하게 되는데 코끝에 느껴지는 향이 네팔을 떠올리게 한다.

 대학교 2학년 때 학교에서 네팔 해외봉사를 간 적이 있다. 

 네팔 카트만두에 도착했을 때 느낌이 마치 이와 같았다. 

 온몸에서 느껴지는 더위와 습기도 비슷하다.

 그때 봉사자 숙소에서 많은 인원이 샤워할 방법이 없어서 숙소 앞 호수로 나가서 단체로 샤워를 했다. 

 마을 주민들의 빨래터이자 공용 샤워장이었다.

 그렇게 샤워하며 장난치고 있으면 지나가던 주민들이 우리를 보고 웃었고, 우리도 참 많이 웃었다.

 막탄 공항을 나와 막막함을 느끼던 찰나 픽업을 위해 대기하고 있던 스탭을 만났다.

 이동하는 차 창밖으로 폭우가 쏟아지고 있다.


 함께 지낼 룸메이트가 잠든 방에 도착해서 기어이 희미한 불빛에 의지해 샤워장으로 갔다.

 땀을 흘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몸을 식히지 않고는 이 더위와 습함을 이기지 못할 것 같았다.

 허름한 감옥의 샤워장 같은 곳에서 죄수의 심정으로 샤워를 하는 동안 석회로 막힌 샤워기 구멍 사이로 나오는 고압의 얇은 물줄기가 아팠다.

 마음에 울컥하는 것이 있어서 눈물이 났다.

 이곳에 오기까지 과정들이 생각났기 때문인지, 이곳의 열악함 때문인지, 기분이 좋아서인지 알 수 없었다.


 금세 몸이 찝찝해지는 덥고 습한 새벽

 이국의 낯선 침대, 낯선 룸메이트

 온몸과 마음으로 뒤척이며 잠을 청했다.


 여행, 한국을 떠난 날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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