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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훈 Oct 30. 2022

도착했을 땐 여전히 여름이었다

첫인상

 베트남에 도착했을 땐 여전히 여름이었다. 

 하노이의 여름은 평균적으로 낮 최고 34도, 저녁 최저 26도로 우리나라의 여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여름은 5개월 동안 지속된다.

 무거운 배낭을 멘 등과 어깨, 겨드랑이에 금세 땀이 찼고 이미 검게 그을린 얼굴을 따라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내 눈은 마중 나오기로 한 사람을 찾아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잠시 후 공항 밖 주차장 근처에서 동시에 나를 찾고 있는 한 남자를 만났다.

 픽업 차량을 타고 공항을 빠져나오자 이글거리는 태양이 달군 대지에서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수백 대의 오토바이가 그 도로 위를 달리며 경적을 울리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청춘들과 함께 봉사하며 하노이에서 1달간 살기로 했다.


 어제까지는 준비돼있던 마음이 공항에서 바로 봉사기관으로 간다는 말에 하나도 준비되지 않고 허둥지둥하다.

 봉사지는 어떤 곳인지, 봉사 기관과 숙소가 분리되어있는지 그 어느 것 하나 머릿속에 그려볼 수 없고, 내가 가고 있는 곳이 어딘지도 몰라 창밖에 풍경과 달리는 오토바이들을 바라봤다.

 오토바이들이 앞뒤 좌우, 사방으로 에워싸고 도로를 달리고 있는 탓에 귀빈의 입성과도 같은 풍경이었으나 쉴 틈 없이 경적을 울려대며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가고 있었기에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차가 도로의 걸림돌 같았다.


 함께 지낼 봉사자들이 궁금했다.

 해외에 봉사를 올 정도면 어떤 사람들일까? 쾌활하고, 붙임성 좋고, 끼가 많은 사람들을 상상했다.

 정작 나는 모든 게 적당한 사람이다.

 평범한 나 자신도 봉사에 지원했으면서도 왠지 그곳에 모여있는 사람들은 유독 특별한 사람들일 것 같았다.

 새로운 도전 새로운 만남을 앞둔 내 심장은 빠르게 뛰고 있고, 긴장과 흥분, 설렘이 공존하고 있다.

 차가 멈춘 곳에서 내려서 봉사센터 문을 열었다.


 세계여행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이들은 어떤 준비를 하는지 알 수 없지만, 나는 이런 구성, 특히 봉사활동을 세계여행에 넣기 위해 노력했다.

 나의 갈증과 갈망으로 시작한 여행이 새로운 지역에 대한 답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도전과 경험으로 점철되길 원했기 때문이다.

 여행 중에 특별한 기회를 만나 다채로운 경험을 할 것이라는 불확실성과 희박함을 기대하기엔 너무 어렵게 얻은 기회고 소중한 시간이기에 최소한의 장치를 만들어 둔 것이다.


 세계여행을 하면서 내가 기대하는 것은 다양한 사람들과 부대껴보는 것이고, 기존과 다른 활동을 해보는 것이다.

 생각하기에 봉사는 이에 꽤 적합한 활동이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봉사자들과 숙소에 모여 살며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봉사를 준비하고, 봉사를 마친 뒤 자유시간에 함께 놀고, 주말이나 휴일에는 근교 여행을 계획해서 다녀올 수 있다.

 봉사 이전과 이후에도 계속 여행을 이어가는 내게는 해외봉사가 그 지역을 여행하는 방법 중 하나로 생각됐다.

 하루 중 보람 있는 무언가를 하고, 그 지역 문화를 알아가는 근사한 여행 말이다.

 가장 근사한 것은 행위의 목적이 봉사에 닿아 있다는 것이다.

 봉사자들이 이곳으로 오기까지 다양한 이유와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나도 그렇다.

 그런데 다른 이유들 만이라면 굳이 봉사 단체에 올 필요가 없다.

 마음에 어떤 이타성이 있는 것이다.


 이런 나의 베트남 소식을 들은 한 선배는 '넌 뭘 하는지 모르겠다.'라고 했고, 한 친구는 '착한 짓 말고 하고 싶은 거 하고 다녀'라고 했다.

 그 선배가 모르는 건 내 여행뿐만이 아니고, 내 친구는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것이 뭔지 모른다.

 타인의 이견을 들을 때마다 세계여행 자체가 타인에게 이해받기 위해 떠난 여행이 아니므로 덤덤히 넘겼다.

 이를 이해하려면 세계여행을 떠난 이유를 알아야 하고 나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알아야만 하니 전체를 설명할 자신이 없는 탓이다.

 이 책이 완성되면 뒤늦게나마 많은 것을 전할 수 있을 것이다.

 청춘을 갈망하는 사람들에게도 닿는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아무튼 꽤나 통찰력 있고 사려 깊은 선배도 이런 말을 전하는 것을 보니 가히 내 여행이 범상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봉사 기관에서 제공해준 픽업 서비스를 통해 하노이 공항에서 기관까지 편하게 올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봉사지의 문을 열었다.

 두꺼운 철문을 열고 들어가자 ㄷ자 형태로 앉은 사람들이 일제히 나를 바라봤다.

 크게 인사하려던 입을 막고서 안내한 곳에 다소곳하게 앉았다.

 해외 봉사를 하러 모인 사람들은 왠지 시끌벅적하게 있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토록 적막하게 앉아있을 줄이야.

 정면에 있는 기둥에는 신짜오(Xin Zhao : 안녕)라고 쓰여 있었다.

 흘깃거리는 시선이 느껴져서 왠지 얼굴이 달아올랐지만 애써 태연을 가장하고 앉았다.

 나름 멋스럽게 챙겨 입고 돌아다녔던 싱가포르에서 바로 하노이로 왔다면 봉사단체와 협약을 맺으러 온 업무 담당자 정도의 느낌은 났을 텐데 호찌민에서 온종일 걸으며 고된 여행을 하고 넘어온 터라 행색은 초라하고 검게 그을린 피부는 현지인에 가깝다.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쭈구리처럼 앉아있다.


 왠지 모르게 긴장됐다.

 늘 새로운 곳에 가면 이전보다 나은 모습으로 시작하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이다.

 밝지 못했다면 밝게, 자주 웃지 못했다면 환한 미소를, 친근하지 못했다면 친근하고 싶은 것 말이다.

 마음에 들지 않았던 내가 아닌, 마음에 쏙 드는 내가 되고 싶은 것은 늘 단체 생활 중 반복되는 갈망이었다.

 사람은 첫인상이 중요하다는데 늘 그 첫인상을 내가 원하는 만큼 좋게 가져갈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이십 대의 나는 새로운 무리 속에서 흡족할 때도 그 반대일 때도 있어서 혼란스러웠다.

 분명히 여기에서는 무리에 잘 어울리고 인정받고 재밌는 사람이었는데, 또 다른 쪽에서는 어정쩡한 존재로 어색한 미소를 지어야 했다.

 첫날 섣불리 말을 건네고, 소위 나대다가 겉돈 적도 있다.

 그럴 때면 집으로 돌아와서 난 원래 이렇지 않은데 라는 생각을 했다.

 조금 더 머리가 컷을 때는 이것도 나고 저것도 나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다.

 자신의 색이 뚜렷한 사람들은 어느 곳에서나 변하지 않고 자신으로써 존재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나는 조화와 평화의 상징처럼 늘 맞추고 포용하려고 노력했기에 흔들리고 새로운 색을 덮어쓰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대체로 처음에 드러나지 않고 나중에 인정받거나, 처음에 모든 이들의 정착을 돕고 무리가 친해지면 나중에 뒤로 빠지는 경우가 많았다.


 다양한 팀 활동에서 내가 가장 부러워했던 사람들은 말을 참 맛깔나게 하는 사람이었다.

 첫인상이나 자신의 주관이 뚜렷한 것과 무관하게 말주변이 좋은 사람은 주변을 웃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재밌는 이야기를 많이 아는 사람이 재밌는 줄 알았는데 그냥 말 자체를 맛깔나게 하는 사람들이 재밌더라.

 글도 그렇다. 

 이야깃거리가 풍부한 사람의 글은 분명 흥미롭지만 글 자체를 맛깔나게 쓰는 사람의 글은 어느 소재든 흥미롭다.

 나로서는 그런 맛깔난 표현의 재주가 늘 부럽다.


 어쨌거나 당장의 나는 경직된 쭈구리였다.

 분명 도착하기 전까진 여행 중 끌어올린 텐션이 있었기에 어디에 가든 자신이 있었다.

 다른 국적의 사람들을 만나는 게 별건가 싶었다.

 필리핀, 일본, 대만 등 각국의 친구들을 사귀며 여행한 내가 아닌가.

 아마 문을 열면서 분위기가 쾌활했다면, 그들이 내게 다가와서 말을 걸고 내가 여기에 오기까지 여정을 궁금해했다면 필시 그렇게 됐을 것이다.

 어색한 표정과 경직된 몸놀림으로 회계를 담당하는 스탭 앞에 앉았다. 

 괴상할 정도로 큰 배낭과 함께.




 열려있는 문밖을 보고 어쩐지 마음이 느슨해졌다.

 열기가 가득한 베트남의 오후는 늘 이렇게 느슨하다.

 동네를 한 바퀴 둘러볼 생각으로 문 밖으로 나왔다.


 습도 때문인지 필리핀보다 더 덥게 느껴졌지만 무더위 속 낯선 마을을 느슨히 걷고 있는 기분이 꽤나 마음에 든다.

 얼마 가지 않아서 길가의 쌀국수 집을 발견하고 주저 없이 들어가서 자리에 앉았다.

 "신짜오~!" 준비한 인사말을 이제야 던져본다.

 베트남어로 적힌 메뉴판을 읽을 줄 모르기에 포라는 말과 손가락 하나를 펴고서 멋쩍게 웃다가 주인 내외가 고개를 갸웃하는 것을 보고 재빠르게 옆사람이 먹고 있던 쌀국수를 가리켰다.

 퍼보(쇠고기 쌀국수)다. 

 환하게 웃는 것을 보니 다행히 주문이 제대로 된 것 같았다.

 베트남어에는 6개의 성조가 있기 때문에 성조에 따라 발음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대부분 이해 못 하는 듯했다.


 잠시 후, 지금까지 먹은 그 어떤 쌀국수보다 진한 육수의 쌀국수가 나왔다.

 매운 베트남 고추와 고수를 넣고 꿧이라는 열매를 짜서 상큼함을 섞은 뒤, 약간 꾸릿한 향이 날 정도로 진하게 우려낸 국물을 한 모금 마시고 '좋다' 하고 있으니 주인 내외분들께서 웃으시면서 나를 바라본다.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니 고맙다는 표정이지만 나로서는 제대로 된 맛을 볼 수 있어서 황송할 따름이다.

 대화를 시도해보려 했으나 영어를 전혀 모르시는 듯해서 연신 엄치를 세워 맛있음을 표현했다.

 고추를 더 넣자 고추를 더 가져다주시고, 땀을 흘리자 선풍기를 내쪽으로 맞춰주시고, 꿧을 짜려고 하자 먹을 줄 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주시니 웃음이 절로 났다. 

 그 푸근함이 좋았다.

 베트남의 끼니는 먹고 돌아서면 사라질 정도로 부담 없는데 특히 쌀국수가 그렇다.


 식당 옆에서 쓰어다 커피까지 한잔하고 숙소로 돌아오자 봉사자 한 명이 반갑게 맞아주며 우체국에 가려는데 같이 나가지 않겠냐고 묻는다.

 봉사자와의 최초 교류였다.

 길을 걸으며 프랑스에서 왔고 한 달간의 봉사 일정을 마치고 곧 돌아간다며 운은 뗀 그는 베트남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과 더불어 좋은 세탁소와 괜찮은 빵집, 시장 등 이 동네의 정보를 사십 분가량의 발걸음에 전달했다.

 시장에서 사과를 구입하는 모습까지 모든 것이 자연스러워서 그는 이 마을에 완전히 녹아든 듯했다.

 그는 다음날 아침 홀연히 프랑스로 떠났다.

 그날의 정보는 대단히 명료하고 유용해서 1달간의 베트남 생활을 뒷받침했다.

 기묘한 사람, 기묘한 만남이었다.


 숙소는 봉사지에서 복귀한 봉사자들로 북적였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해외 봉사를 왔다.

 삼삼오오 무리 지어 있거나 혼자 심각해 있는 이들을 보니 어찌 말을 건네야 할지 몰라서 배정받은 캐비닛에 짐을 풀고 있으니 야푸와 바티스라는 두 청년이 다가왔다.

 나와 같은 방을 쓰는 룸메이트들이다. 

 한국에서 온 나를 흥미로워하는 것 같았다.

 이들이 베트남을 떠날 때까지 대부분을 함께 했으므로 소개하자면 야푸는 중국계 프랑스인이고 중국을 몹시 싫어한다.

 여행하면서 중국 관광객들과 마찰이 여러 번 있었기 때문이다.

 첫마디가 '중국인이니?'여서 그가 중국인인 줄 알았다.

 그는 내가 중국인이 아니라는 사실보다 마음껏 중국인을 흉볼 수 있음을 다행으로 생각하는 듯했다.

 밝을 때는 대체로 자고 어둠과 함께 일어나는 사나이어서 야푸가 사용하는 침대 옆 커튼은 밤이 돼야 열린다.

 늘 눈을 삼분의 일쯤 감고 있어서 퇴폐적인 느낌이고 좋아하는 건 술, 담배, 여자지만 대부분의 것에 관심이 없다.

 드라마 <가십걸>을 봤다면 시즌 1의 척과 행동, 말투, 외모가 매우 흡사하다.

 바티스는 바르고 붙임성 좋고 활발하다.

 페이스북 CEO 마크 저커버그를 닮았고 큰 키에 친절하고 서글서글한 탓에 봉사자 대부분에게 인기가 좋다.

 어느 반에나 한 명쯤 있는 성격 좋은 친구와 같다.


 이들 2인조와 더불어 스페인에서 온 3명의 남녀가 봉사자 무리의 분위기를 주도한다.

 스페인에서 온 아이들은 하나같이 쾌활하고 유머러스하고 준수하다.

 셋이 형제자매라고 해도 될 만큼 흡사하게 엘프를 닮아서 나는 이들을 레골라스 패밀리로 칭했다.

 그 외의 봉사자들은 둘 혹은 셋이서 왔고 노르웨이, 영국, 헝가리, 벨기에 등의 유럽 국가와 미국, 캐나다, 아르헨티나 등의 아메리카에서 왔다.

 봉사기관을 운영하는 베트남 현지 스태프들과 인턴 과정으로 참여 중인 첸과 징을 제외하면 봉사자 중에 아시아에서 온 사람은 나 혼자였다.

 첸은 캄보디아에서 징은 미얀마에서 왔다.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 나라에서 온 친구들도 있었지만 서구권에서는 누구나 영어를 활용할 수 있는 것인지 나를 제외한 모두가 능수능란하게 영어를 사용했다.

 국가에 상관없이 프랑스어, 영어, 스페인어가 자유롭게 오가는 것을 볼 때면 신기하고 부러웠다.


 통성명을 마친 야푸와 바티스가 오늘 저녁이 몹시 별로라며 밖으로 나가지 않겠냐고 했다.

 마침 출출하던 터라 흔쾌히 응하고 방을 나섰다.

 숙소 앞에 세워진 두대의 오토바이에 올라타고 나는 바티스 뒤에 앉아 전달받은 헬멧을 썼다.

 대단한 밤이 시작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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