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이유
면접관 참여를 요청받았다.
면접관이라니 가당치도 않다는 생각을 하다가 이유를 듣고 이내 승낙했다.
베트남 대학생 봉사 지원자들 중 한국어 실력 검증이 필요한 일이 있는데 내가 봉사 기관 내에 유일한 한국인이라고 하니 별 수 없는 일이다.
한국인이 한국말 잘하는 게 당연한 상황에서 이게 뭐라고 영어가 미숙해서 기죽어 있던 어깨가 펴지고 걸음이 당당하다.
면접장 문을 열고 들어가니 지원자들이 잔뜩 긴장한 채 앉아있다.
봉사하기 위해 찾아온 어린 동지들이 반가워서 살갑게 인사를 건넸으나 내가 얼마 전 이곳에 도착한 봉사 병아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지원자들이 알 수 없는 노릇이라 경직된 분위기가 쉬이 풀리지 않았다.
일상적인 질문을 건네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지원자들이 최대한 실력 발휘할 수 있도록 노력했지만 잔뜩 기합이 들어간 것을 보니 그마저도 고도의 면접 질문이 된 것 같았다.
총 3명의 면접자가 내 영어실력보다 뛰어난 한국어를 자랑했다.
그날 저녁에 기관장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합격자들이 한국어와 문화를 조금 더 알 수 있도록 멘토가 돼줄 수 있냐는 요청에 흔쾌히 그러겠노라 답했다.
멘토링 활동 자체에 부담이 없을뿐더러 나 또한 학생들을 통해 베트남을 알아갈 기회라고 여겼다.
그렇게 판티응옥, 트엉, 부아영 세 학생의 한국어 멘토가 됐다.
회사원 김창훈이 세계 여행자가 되더니 베트남에서 선생님 소리를 듣는다.
오전에 봉사지에서 만난 2반의 아이들에게도 선생님이 될 예정이다.
오전에 봉사지 사전 방문이 있었다.
스탭과 동행하며 봉사지와 숙소를 오고 가는 방법과 봉사지에서 해야 할 일을 배우고, 기관 담당자 및 봉사 대상자들과 만나는 자리였다.
숙소와 학교, 식당, 놀이터 등 다양한 시설이 갖춰진 이곳에서 아이들은 서로를 보듬으며 하나의 마을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다.
각자의 이유로 어딘가에 장애를 가진 아이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모두 학습에 장애를 겪고 있다.
신체는 계속 성장하고 있지만 인지 능력은 아주 어린아이의 수준에 머무는 것도 그런 어려움 때문이다.
나뉘어 있는 반을 부르는 명칭은 따로 없는 듯했으나 위치상 2반에 배정됐다.
각 반마다 담임 선생님이 한 명씩 있고, 인턴 실습 중인 대학생 보조 선생님도 있다.
한 시간 반 가량 수업을 함께 하면서 인사를 나누고 선생님들의 역할을 눈으로 살폈다.
선생님이 이미 있는데도 봉사자가 필요하려나 싶었는데 한 명이 아이들 둘, 셋 정도만을 도울 수 있었다.
자폐 증상을 가진 아이가 셋인데 한 아이가 자리를 이탈하면 힘겹게 유지하던 수업의 균형도 무너지기 일수여서 사람이 많을수록 좋아 보였다.
아이들은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된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지만 관심을 갈구하는 눈빛은 숨길 수 없었다.
이 아이들의 선생님이 될 것이다.
매번 저 교실문을 들어올 때는 따뜻한 마음과 사랑만으로 다가갈 수 있기를 기도하며 돌아섰다.
짧은 방문을 마치고 교실을 나서려는데 아이 한 명이 다가와 그림을 손에 쥐어줬다.
선물인가 보다.
밤이 되자 어느새 일어난 야푸와 바티스가 다가와 나가자고 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햄버거면 괜찮다고 답하고 잠시 셋이서 낄낄대며 웃었다.
전날 저녁을 먹으러 밖으로 나갔을 때 도착한 곳은 버거킹이었다.
바티스 오토바이 뒤에 올라타서 헬멧을 건네받을 때 까진 봉사지의 첫날 프랑스 친구들과 외식이라니 파티를 가는 것일까 상상하며 기대에 부풀었었다.
이럴 거면 왜 그렇게 비장하게 출발한 것인가 싶었으나 철딱서니 없는 남자들 셋이 앉아서 각자 라지 사이즈 콜라와 햄버거 두 개씩을 먹고 있으니 그 맛과 포만감에 기분이 좋았다.
여지없이 개구진 청년들의 모습이었다.
이제 막 잠에 깬 표정으로 낄낄거리던 야푸가 다른 봉사자들과 함께 맥주를 마시러 갈 거라고 했다.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봉사자들이 좋아하는 곳이 있다고 하여 멀뚱히 따라나선다.
스무 명 정도의 봉사자가 둥그렇게 둘러앉았다.
이 정도 인원 모일 줄은 몰랐기에 어리둥절하며 앉아있으니 주말인 내일 떠나는 봉사자가 있어서 환송회 겸 모인 거라고 바티스가 상황을 정리해줬다.
시장 옆 야외 공터에 작은 의자만을 깔고 앉아있는 분위기가 꽤 좋았다.
동남아는 자신의 문화와 특색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고, 그런 곳에 현지인과 여행자가 많다.
잠시 후 수통 맥주가 나오자 모두가 열광했다.
수통 맥주가 대체 무엇인가 하고 보니 맙소사 군대에서 쓰던 구형 수통이다.
서구권에서 온 이 봉사자들은 수통에 담긴 맥주가 너무 신기했나 보다.
물론 나 역시 신기하다 누가 수통에 맥주를 담아 팔 생각을 했을까.
저 형태의 수통이 깨끗할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원체 그런 것을 신경 안 쓰는 데다가 알코올이 소독해줄 것을 믿으며 개운하게 들이켰다.
얼음물에 보관했는지 놀라울 정도로 시원한 맥주를 맛볼 수 있었고 양도 꽤 많았다.
눈이 마주친 야푸에게 '내가 한국 군인이다.' 으스댓더니 호들갑스레 감탄하며 자기가 더 으스대는 눈치다.
빈 수통은 다시 수거해서 세척 후 재활용하는 듯했다.
술이 있으니 게임이 있고 게임이 있으니 취하는 사람이 나오는 밤이었다.
숙소로 돌아왔으나 흥이 식지 않아서 급기야 Grab택시를 나눠 타고 호안끼엠의 맥주 거리로 나가 한잔을 더하고, 단체로 클럽에 들어가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수줍어서 말을 못 하던 봉사자들도 우리끼리 취해서 춤추고 노래하는 순간에는 다 몸을 흔들었다.
알코올이 땀으로 다시 빠져나올 때쯤에야 숙소로 돌아왔다.
야푸와 바티스, 레골라스 삼 남매 외에도 많은 봉사자들이 있고 그들 대부분은 이십 대를 막 관통하고 있다.
다양한 나라에서 다양한 이유들을 갖고 이곳 베트남까지 왔지만 핵심은 대게 비슷하다.
<다른 나라에 살아보는 것, 여행, 봉사에 대한 경험, 휴식>.
이 나이 때에 이렇게 나와서 다른 나라에 살아보고 봉사를 하는 것이 이들에게는 크게 별난 선택이 아니라고 했다.
이들 나라의 교육과정이 어떻게 되는지, 이전에 어떤 삶을 살아오는지는 다 알 수 없지만, 대부분 청년들이 이런 시간을 갖는다는 말에 나는 이것이 참 좋다는 생각을 했다.
나도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몇 해 전까지 삶이 계속 팽창해 가는 것만 같았는데 조금 더 느슨해질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주말에 일층에 앉아 노트북에 이런 생각을 정리하며, 봉사를 하고 여행하고 쉬는 시간을 가진 이들이 돌아가 공부를 하거나 삶을 머릿속으로 그려보고, 주변인들에게 과거의 그 추억을 나눌 것을 상상해보니 참으로 좋았다.
그래서 매번 봉사자들이 떠나갈 때면 그 뒷모습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축하했다.
베트남의 하루는 봉사와 그 밖의 여가 시간으로 반복됐다.
봉사 임무가 종료되고 쉬는 기간을 갖고 있는 야푸는 자고 또 자고 밤이면 봉사자들과 함께 밤을 불태웠다.
Ed sheeran의 <Shape of you>라는 곡이 나올 때가 가장 신났고 우리는 베트남에서 이 노래에 빠짐없이 춤을 췄다.
이 노래에는 기이한 열기가 있어서 도입부가 들리면 슬그머니 일어서거나 조명을 끄거나 의자를 흔들고 책상을 두드리는 것은 매일 밤 흔한 장면이었다.
조용하던 봉사자들도 ‘Girl you know I want your love’부터 따라 하기 시작하는 이 노래에는 마법이 있어서 누구든 몸을 맡기는 수밖에 없다.
우리는 노래에 몸을 맡기고, 청춘을 스스로의 선택에 맡기고, 'I'm in love with the shape of you'를 외쳤다.
도전 속에 있는 느낌이 좋다.
이전에 생각만 할 때는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선택을 내뱉기 전까지 한껏 움츠려 있었다가 결단한 그날부터 기지개를 켜 매일 나로 하여금 도전 속에 있음을 느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