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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훈 Oct 30. 2022

헤어짐을 잘 못하는 사람

모두 안녕히

 신짜오! 하고 외치면 그 어느 누구도 응답해주지 않는다. 원래 그렇다. 

 무심한 아이들 뒤로 다가가 하나씩 안아주거나 눈 마주치면서 이름을 불러주고 나면 그제야 봉사지의 하루가 시작된다.  

 반갑다 애들아 잘 잤니.


 그림 그리기를 잘하는 히오우

 춤을 잘 추는 센

 교실 탈출 달인 륵

 손뼉을 잘 치는 정

 퍼즐을 잘 맞추는 하이

 다른 친구들을 잘 보살피는 투우

 동그라미를 잘 그리는 두우

 집중력 좋은 남

 운동신경이 좋은 탕

 우리 교실에는 이렇게 9명의 아이들이 있다.


 이들 중 세명의 아이는 자폐 증상을 갖고 있고 다른 아이들을 각자의 불편한 점이 있다.

 그래서 우리 교실은 바깥세상보다 조금 느리다.

 낮말 맞추기, 그림에 색칠을 하거나 색종이 오려 붙이기,

 숫자나 낮말 등 기초 베트남어 공부,

 퍼즐 맞추기, 블록 조립 등을 하다 보면 어느새 숙소로 돌아갈 시간이 된다. 

 물론 중간에 점심시간도 있다.


 베트남의 점심시간은 2시간으로 굉장히 길어서 점심을 먹고 책을 보고 낮잠을 자도 충분하다.

 잠을 자다가 너무 많이 잔 것 같아서 화들짝 놀라 일어났지만 여전히 점심시간 인적도 여러 번이다.

 밥은 식당 건물 3층, 넓은 강당 같은 곳에서 혼자 먹는다. 

 이곳에 배정된 봉사자가 나뿐만은 아닌데 한 명은 음식이 입에 맞지 않다며 안 먹고, 다른 한 명은 여행을 떠나서 만나지 못했다.

 덕분에 이곳에서 자유롭게 밥도 먹고 누워서 잠도 잔다.

 학교에서 봉사자 휴게 장소를 따로 마련해줬는데 그곳엔 에어컨이 없다.

 첫날 그곳에서 열사병 같은 낮잠을 잔 이후로는 이곳에서 의자 세 개를 붙여서 쉬고 있다.

 한 것이 많지 않은데도 점심시간에 무척 깊은 잠에 빠지곤 한다. 

 낮잠이란 놈이 원래 잠들면 헤어 나올 수 없이 몸을 잠기게 하지만 스스로는 그만큼 아이들에게 마음을 쏟고 있다고 생각했다.

 2시간의 점심시간을 보내고 나면 다시 한번 하루가 시작되는 기분이다.


 수업이 마치는 시간은 나보다 아이들이 더 좋아해서, 청소를 하는 동안 이미 갈 준비를 하고 눈동자는 밖으로 나가 있다. 

 륵은 몸도 이미 나가 있어서 매일 선생님에게 혼난다.

 하루 중 이 순간에 아이들 행동이 가장 기민하고 단결된다.

 수업 중 가끔 레크리에이션과 체육 활동을 하지만 이렇게가 대체로 반복되는 일과다.

 아이들은 지루해하는 것 같기도, 흥미로워하는 것 같기도 하다.


 '아이들은 행복할까'

 선생님이 준비한 프로그램이 아이들에게 도움되겠지라고 생각하다가도 이내 다시 '아이들은 행복할까’ 생각에 빠지곤 한다. 

 행복이란 단어가 등장하면서 행복하지 않은 것과 행복한 것을 구분하려 하는 것이 불행한 점이라고 생각하지만, 지금 생각하는 것은 이 수업 과정이 아이들을 위한 최선일까 단지 그것이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이 아이들에게 나의 시선과 몸짓이 도움 되고 위로가 되고 있을까.

 베트남어를 모르는 탓에 아이들에게 내가 줄 수 있는 것이 마음밖에 없다.

 아이들은 단어를 소리 내지 못하고 뭉뚱그려진 말과 표정 몸짓으로 의사를 전달하지만 듣는 것은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선생님이나 스태프들에게 매일 물어가면서 아이들이 표현했던 것 중 모르는 단어와 내가 말해주고 싶은 단어를 적어서 외운다.

 A4용지에 이런 단어와 문장을 적다 보니 앞뒤로 한 장이 빼곡해졌다.

 그래도 언어를 자유롭게 할 수 없는 것은 너무도 많은 한계를 가져와서 그저 눈을 맞추고, 웃고, 고개를 끄덕이거나 단호한 표정 짓는 것 등을 주로 할 수밖에 없다.

 아이들과 동일한 의사소통을 하는 셈이다.

 수업을 하기 위해서는 이것으로도 충분하지만 마음으로 수업 이상의 것을 해주기엔 부족하다.

 그래서 나는 이 교실에 있는 선생님보다 더 많이 아이들을 살핀다.

 아이들의 교재보다 아이들의 표정을, 아이들이 색칠하는 종이보다 아이들의 눈을 더 본다.

 그렇게 아이들 그 표정과 시선 속에 녹아있는 마음을 짐작하다 보면 '아이들은 행복할까, 어떻게 해야 할까'란 고민을 하게 된다.


 아이들 중 한 명의 이름은 ‘정’이다. 앞서 손뼉 치기를 잘한다고 소개했다.

 나는 그렇게 큰 박수 소리를 이전에 들어보지 못했다.

 정이는 귀를 막기도 하고, 아프리카 원주민 같은 소리를 내기도 하고, 손을 지휘자처럼 휘젓거나 허벅지를 때리기도 하면서 고요한 교실에 신나는 BGM을 만든다. 

 다양한 소리 중 박수 소리가 제일 크다.

 젬베 같은 악기를 가르칠 수 있다면 굉장한 음악가가 될지도 모른다.


 정이는 가끔 슬프고 그래서 운다. 

 가끔은 화가 나서 달리기도 한다.

 그럴 때면 선생님께 혼난다. 잘못인 걸까. 모르겠다. 이곳은 일반적인 교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의 감정이 요동치는 것은 그가 가진 장애 때문이다.

 다른 친구들이 테이블에 둘러앉는 동안 정은 교실 우측 뒤에 혼자 앉아있다.

 슬플까, 기쁠까, 화가 날까, 행복할까 어느 것도 알 수 없다.


 봉사가 끝나고 숙소로 돌아오다 보면 유독 교실 밖 사람들을 바라본다.

 한편에 혼자 앉아있는 사람, 슬픈 사람, 기쁜 사람,

 도로에서, 버스에서 시끄럽게 하는 사람, 달려 다니는 사람.

 내가 사는 서울 망원동에는 밤 열두 시 무렵이면 음이 하나도 안 맞는 노래를 허공에 부르며 지나가는 사람도 있다.

 적어도 자폐증에 대해서는 전문적인 치료 전략으로써 수업이 진행돼야 할 것 같았다.

 고작 2년이란 시간 동안 배운 상담심리학의 기초 지식으로는 어림없었다. 


 정이는 입에 항상 무엇을 물고 있다.

 때로는 고무줄, 때로는 철사, 때로는 컵 그리고 손등. 그래서 정이 손등에는 흉터가 있다.

 그런 정이가 가끔 웃는다. 

 그럴 때면 나도 기뻐서 이상하게 눈물이 날 것 같다.


 다 함께 티브이를 보다가 댄스음악이 나왔는데 아이들이 갑자기 우르르 앞으로 나와서 춤을 췄다.

 신나서 춤을 추다가 나에게 보여주겠다고 그동안 배운 것을 하나도 안 맞게 춘다.

 모두 다 달라서 어떤 것을 따라 해야 하는지 모른 채로 나도 춤을 춘다.

 못 추면 못 추는 대로 모두 춤을 춘다.

 정은 너무 신이 나서 발을 동동 구르고 박수를 쳤다.

 그 동동 구르는 발소리가 아직도 생각난다.

 발을 동동동




 비행기는 타자마자 움직이더니 곧 이륙했다.

 베트남에 대해 많은 것을 갈무리하지 못하고 라오스로 간다.

 세계여행을 시작하고 비행기를 많이 탄 것은 아니지만 이젠 비행기 타는 것이 별스럽지 않다.

 어떤 감정이 무덤덤해진다는 것이 아쉽다.

 이 여행 동안 감정에 대해서는 하나라도 더 예민했으면 한다.


 베트남을 떠나기 전에 동네 이발소를 찾아갔다.

 한국을 떠난 후로 한 번도 자르지 않은 머리가 덥수룩했다.

 동네 모퉁이를 돌아가면 길에서 머리를 자를 수 있다.

 벽에 거울을 걸고, 그 앞에 푹신한 의자를 두고 앉는데 왠지 낭만스럽고 그리운 풍경이다.

 도전의 마음으로 그곳으로 향하다가 더위속에서 잘리는 머리카락을 견딜 자신이 없어서 세탁소 앞 이발소로 방향을 틀었다.


 머리를 정리한 뒤에는 사진관에서 사진을 찾았다.

 봉사하는 동안 틈틈이 찍은 사진을 인화해서 아이들에게 주기 위함이다.

 마지막을 앞두고 아이들에게 뭔가 줄 수 있는 것을 떠올려 봤지만 사진 말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미 줄 수 있는 것은 수업 중에 다 줬다.


 하노이에 머물면서 정든 것이 너무나도 많다.

 일상의 말벗이 되어주고 나중에는 정말 벗이 된 스태프들과 봉사자들, 매일 가던 쌀국수집, 오토바이와 매일 다니던 길 그리고 봉사지의 아이들.

 아이들은 내가 언젠가 떠날 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찾아온 모든 사람들이 그랬으니까 하루라도 안 보이면 떠난 줄 안다. 

 언젠가 하루 양해를 구하고 사파에 다녀온 적이 있다.

 화요일에 등장한 나를 보고 아이들이 몹시 반가워하던 것이 떠오른다. 

 그날은 유별나게 아이들이 곁에 있었다. 

 월요일 하루 보이지 않자 어느새 떠난 것으로 생각했나 보다. 

 헤어짐을 앞두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떤 표정, 어떤 행동들, 어떤 선물을 해야 할지.

 표현하고 싶은 게 내 마음에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이런 고민들만 한다.

 고민만 하다 시간이 갔다.


 나는 참 헤어짐을 잘 못하는 사람이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담담히 지난 일과 미래를 말하고 멋진 미소와 포옹으로 마무리하던데 어찌 그럴 수 있을까.

 영화가 아니어도 일상을 살다 보면 다른 사람들은 헤어짐을 잘하는 것 같이 느껴진다.

 나는 늘 그것이 서툴고 참 못한다.


 마지막 날 아침에 봉사지에 도착해서 사진을 나눠줬다.

 현재의 예쁜 모습을 간직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와 함께한 시간도 있었음을 기억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준비한 사진이다.

 아이들과 평소와 같은 하루를 보내고 싶었지만 알 수 없게 가라앉은 기분은 쉽사리 올라오지 않았다.

 아이들이 내게 준 그림들, 내가 준 사진들, 아이들의 소리 그리고 어떤 온기가 교실에 이리저리 뒤섞여있었다.

 이따금 들려오는 정의 박수 소리가 내가 아직 이곳에 있음을 알려주지만, 내일이면 들리지 않을 정의 박수 소리가 내가 그곳에 없음을 알려줄 것이다.

 수업이 진행되면서 그 시간이 더 애틋해졌다.


 나눠준 사진들은 점심때쯤 되니 바닥에 나부꼈다.

 수업을 마칠 시간엔 1분이라도 빨리 교실을 나가고 싶은 아이들 눈이 일찍부터 교실 밖으로 향해 있었고, 마치겠다는 말이 나오자마자 우당탕 모두 문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렇게 아이들이 떠났다.

 교실 바로 옆이 숙소면서 교실을 벗어난 것만으로도 해방감을 느끼는 아이들을 보며 웃음이 났다.


 공항을 가기 전 아침에,

 늘 가던 쌀국수 집에서 늘 먹던 퍼보(쇠고기 쌀국수)를 먹고 마을을 한 바퀴 빙 둘러 걸었다.

 늘 수줍게 웃어주던 쌀국수 집의 주인 부부도 안녕히. 

 그렇게 많이 갔음에도 사진 하나 남기질 못했다.

 신선한 과일을 살 수 있던 시장과 좋은 향으로 깨끗하게 세탁해서 곱게 개어주던 세탁소, 빵집, 사진관, 이발소, 야푸가 추파를 던지던 길가의 카페. 

 밤이면 슬리퍼를 신고 나가 세상 신나게 받아오던 길거리 반미.

 옹기종기 쪼그려 앉아서 마시던 수통 맥주.

 내 마음속에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호안끼엠 부근보다 이곳이 베트남의 풍경이었다. 

 베트남이여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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