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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훈 Oct 30. 2022

미치광이가 돼야 한다

영어가 끈적하게 내 일상에 달라붙었다

 난 유치원을 차려도 먹고살겠다.


 첫 봉사를 수행하고서 나는 영어 유치원을 차려도 먹고살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아이들의 지지와 호응을 얻으며 즐거울 수 있다니.

 이전에 마이크를 들고 배추 팔고, 레크리에이션을 진행하고, 행사 뛰던 그 경험들이 이렇게 쓰인다.

 모여라 애들아 영어 레크리에이션 시간이란다.




 아슬하게 옷을 문에 걸어두고서 바가지로 뜬 물을 처음에는 손과 발에 뿌려보고, 그 차가움에 놀라서 차마 몸에 물을 끼얹지 못하고 머리를 먼저 감다가, 결국 몸에 한 바가지 크게 붓고 나면 이제 새로운 하루가 시작된다.

 시장에서 산 펑퍼짐한 바지와 이곳에서 준 반팔티를 입었다.

 지급된 옷은 봉사자의 표시이자 봉사 교복 같은 것이어서 봉사하러 갈 때 꼭 입어야 한다.

 이곳에서 지급한 옷은 봉사활동뿐만 아니라 캠프에서 지내는 일상생활을 위한 편의성을 제공해서 봉사자들이 봉사 기간 동안 챙겨 입을 것이라곤 바지뿐이다.

 봉사자들 몇 명과 함께 치앙라이 시장에서 바지를 샀는데 얇고 펑퍼짐한 바지는 냉장고 바지와 개량한복의 중간쯤에 위치해서 통풍이 잘되고 활동성이 좋았다.

 아무튼 둘 중에 하나를 입어야 하기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서 옷 입는 것 때문에 시간을 소요할 것은 없었다.

 씻는 것도 포기한 사람들은 그저 밥 먹고 시간 되면 봉사지로 떠난다.

 나는 아침에 샤워를 하고 밥을 먹고 옷을 갈아입은 뒤 교육 봉사에 필요한 교보재를 챙겨야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 비해 분주했다.


 준비가 된 팀들은 예정된 시간까지 차에 올라타는데 봉고차나 버스가 아니라 트럭 뒤에 타는 것이기 때문에 영락없이 훈련 가는 군인들의 행색과 흡사하다.

 군인과 비슷하다는 말을 했더니 엘리엇이 내게 군대를 다녀왔다며 놀라 묻더니 본인이 우쭐하다.

 베트남에서는 야푸가 그러더니 왜 한국 군인들을 보고 본인들이 우쭐하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헬멧을 쓰고 있으면 머리가 얼마나 간지러운지, 흔들리는 육공 트럭 뒤에서 졸려도 졸 수 없는 이등병의 하루가 얼마나 고단한지, 오래된 총열은 아무리 닦아도 강선이 선명하지 않아서 혼나야 하는 게 군생활이란 걸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바람 때문에 천막으로 지붕을 둘러싼 트럭 안에 2열로 마주 앉아 울퉁불퉁한 비포장 도로에 튕기는 엉덩이를 버티며 간다.

 처음에는 왁자지껄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말이 없어지는데 이럴 때를 대비해서 나는 늘 주머니에 블루투스 스피커를 갖고 다닌다.

 트럭을 타고 봉사지로 가던 첫날, 왁자지껄하던 대화가 사그라들고 덜컹거리는 움직임과 차 소리만 들릴리는 적막 속에서 “이봐 친구들, 음악을 좋아하나?” 따위의 느끼한 말을 하며 스피커를 꺼내 들자 모두가 놀라 환호성을 질렀다.

 팝에 대해 잘 모르고 큰 관심이 없을 때라 내가 보유한 곡이라곤 조금은 오래되고 진부한 것들 뿐이었지만 음악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낭만을 던져주기 때문에 어쨌든 모두가 좋아했다.

 이후로 내가 음악을 틀려고 하면 페드로가 “DJ K”라고 크게 외쳤다.

 적막한 순간을 파고드는 음악이란 대단하다. 

 음악이 나오면 따라 부르는 아이, 좌우로 몸을 흔드는 아이, 차 밖으로 발을 내놓고 멀어지는 풍경과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맡기는 아이. 제각각이지만 모두 미소 짓고 있다.

 태국 치앙라이에서 트럭 뒤에 올라타고 울퉁불퉁한 비포장 도로를 지나 봉사지를 오가는 경험은 인생에 특별한 경험이란 것을 모두가 아는 탓에 이런 순간을 하나라도 더 기억할 만한 것이 있다면 좋은 것이다.

 얼굴과 덩치로는 다 내 또래 같은 애들이 알고 보면 모두 대학생 나이라서 나를 보고 웃고 있는 게 싱그럽다. 

 저마다 청춘의 한때를 도전하는 친구들이다.




 나를 도전과 두려움으로 움켜쥔 영어는 수업에선 해당되지 않았다.

 “A, B, C, D .. H, I, J and then?” “K!!!!”

 “오 그래! 내 이름은 K야!”

 필리핀에서 이름을 K라고 소개한 이후로 K란 알파벳을 내 영어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고, 늘 처음 들어가는 학급에선 이렇게 소개를 한다.

 여태껏 이만한 자기소개, 이만큼 외우기 쉬운 이름은 보지 못했다.

 내 입장에선 아주 평범하고 무성의한 이름이지만 쉽고 독특하기 때문인지 봉사자들 뿐만 아니라 봉사지의 아이들도 내 이름을 즐겨 부른다.

 나이 서른이 넘은 것도 나 혼자, 단일 알파벳도 나 혼자, 동양인 중 교육팀도 나 혼자, 세계여행 중에 봉사지에 들린 것도 나뿐이기 때문에 여러모로 내가 신기한 것인지도 모른다.


 오전과 오후 각각 다른 봉사지(학교)에 방문하고, 2명이 짝을 이뤄서 번갈아 가며 수업을 진행한다.

 봉사자 1명이 적어도 하루에 2번 교단에 서는 셈이다.

 부족한 영어로 교단에 선다는 것을 생각하면 몹시 두렵고 부담되는 일이지만 저학년 (또는 고학년이지만 기초적인 영어만을 다루는 이들)을 대상으론 뛰어난 지식이 필요하진 않다.

 그보다 아이들이 흥미를 갖고 수업에 참여하도록 하는 게 더 앞선 과제라는 것을 봉사 첫날 기존 봉사자들의 수업 진행을 보조하면서 알게 됐다.

 이후로 수업에 대한 부담은 내려가고 즐거운 일이 됐다.

 저학년을 대상으로 봉사자들이 수행하는 것이라곤 큰 의미에서 레크리에이션과 별다른 게 없었던 것이다.

 영어를 사용한다는 것뿐이었다.


 저학년의 경우 ABCD 알파벳과 색상, 동물, 자연 같은 주제 별로 단어를 알려주는 것을 시작으로 수업은 진행되고 지루하면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게임을 병행하는 것은 필수다.

 기초 영어와 레크리에이션 내가 잘하는 것이다.

 나는 단숨에 스타가 됐다.

 키가 고만고만한 동양인 청년은 일단 아이들과 눈높이가 맞고, 유치하고, 충동적으로 뛰어노는 것에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높은 목소리로 말하고, 뛰고, 움직이고 이렇게 수업을 하고 나면 체력소모가 굉장한데 교육을 한 보람보다 아이들의 즐거운 웃음에 대한 보람이 더 크다.

 준비한 교보재는 내 레크리에이션 도구로 전락했고 쉬는 시간에도 아이들이 주변을 맴돌았다.


 고학년의 경우 기초 구조의 문장이나 시제를 포함하게 되는데 이때도 진행 방식은 마찬가지다.

 수준이 있는 영어와 정확한 발음에 대해서는 부담스럽지만 페드로, 로버트 등 다른 친구들과 함께하니 괜찮다.

 나는 내가 잘하는 것에 최선을 다하면 된다.

 희한하게도 어디에서나 내가 활약할 부분이 있다.

 분명 영어 실력이 떨어지고 R과 L, G와 Z 발음은 친구들의 놀림거리지만 교육과 놀이를 병행해야 하는 어린아이들 수업에선 모두 나 하나만 믿고 바라본다.

 아이들과 뛰어놀고 놀이를 만드는 것은 내가 잘하는 것이니 ABC 노래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영어 실력을 늘려주는 것과 무관한 게 아닌가 싶은데도 놀이 중에 단어를 배우고, 영어와 친근해진다고 하니 고민할 필요 없이 아이들을 휘젓는다.


 봉사가 모두 끝나고 네시 반쯤 봉사자 캠프로 복귀하면 곧장 회의가 진행된다.

 하루 중 내가 가장 작아지는 순간이다.

 이 봉사자 회의에서 니키가 오늘 강의 진행 상황을 묻고 강의 방향과 소감, 개선점 등을 요구하는데, 왠지 그 회의실에서는 영어를 뱉는 게 몹시 힘들어서 이때가 심적으로 가장 어렵다.

 선생님 질문을 피하는 학생처럼 밝게 웃으며 경청의 자세를 취하되 시선은 똑바로 마주치지 않고 얼굴도 제대로 비추지 않도록 노력한다.

 누구보다 큰 호응을 이끌며 열정적인 봉사를 하고도 움츠러드니 스스로가 답답했다.

 어서 빨리 언어능력을 주입하는 주사가 발명되기만 바랬다.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기도 전에 벌써 잠든 아이들의 코 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잡담을 마치고 동시에 누웠다고 생각했는데 눕자마자 잠드는 것을 보니 그 능력이 부럽기만 하다.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누운 청년들의 고로롱 크엉. 고로롱 크엉. 코 고는 소리는 국적이 없다.

 아직은 낯선 침대 위에서 눈을 감으면 어김없이 풀벌레 소리가 들려오고, 낯선 환경과 내일 봉사에 대한 생각으로 피곤함과 설렘, 복잡한 심경이 내려앉는다.


 영어가 끈적하게 내 일상에 달라붙었다.

 부족한 내 영어실력이 불편하다. 

 세계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우려했던 것이다.

 부족한 영어로도 세상을 돌아다닐 수 있을까 불안하고 의문이었던 것이 필리핀, 싱가포르,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를 통과하는 동안 숨어서 자취를 감추고 있다가 태국에서 불쑥 실체를 드러내 진득하게 일상을 감싼다.

 여행에 필요한 것을 준비하고 출발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때의 난 영어 실력을 포함해서 많은 것을 준비하고 세계여행을 시작할 수 없었다. 

 용기 때문이었다.

 내 용기가 갉아 먹히기 전에, 시간이 흐르면서 이 용기와 의지가 퇴색되기 전에 결심하고 빠르게 실행해야 했다.


 산과 바다, 도시와 명소 등을 오가며 낯선 장소를 탐색하는 여행만을 연속했다면 크게 불편하지 않았을 언어 수단이 영어를 중심으로 활동해야 하는 봉사 현장에서 도전 그 자체를 이루는 단일 요소가 됐다.

 이런 환경인 줄 알았기에 이곳에 오길 결정한 것이고, 걱정, 두려움, 망설임 등 그 모든 것을 포함한 불편한 마음을 맞서고 이겨내야 한다.

 여태껏 영어를 쓸 수밖에 없는 환경에 있었으면서도 유독 태국에서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은 내가 선택한 봉사 팀이 영어를 교육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봉사의 본질이 영어에 있는 탓에 영어 실력에 떳떳하지 못하니 움츠러들기 십상이다.

 게다가 영어 실력이 부족한데 왜 영어 봉사를 택했는지 누군가 추궁한다면 도전이라는 개인적 의도가 있기 때문에 아주 떳떳할 수 없었다.

 봉사를 임하는 것에 있어서는 떳떳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감히 봉사자 중에서는 가장 최선을 다하고, 가장 마음을 담고 있다.

 그 부족한 실력이 교육하는 정도에 해가 되지 않는 것은 정말 다행이다.


 이런 도전에 맞서는 방법은 그 안으로 온전히 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것은 미쳐야지만 움츠러듬을 떨쳐내고 이겨낼 수 있다.

 “미치광이가 돼야 한다.”

 베트남 하노이에 일주일간 머물렀던 그라힘이 했던 말이다. 


 여느 때처럼 평화로운 주말 아침, 책을 읽고 있는 그라힘에게 다가가서 인사를 건넸다.

 그날은 누군가에게 말을 꺼내고 싶은 날이었다.

 인자한 웃음을 띤 그는 책을 내려두고서 몸을 열어 이야기할 자세를 취했다.

 그 웃음과 그 자세가 나로 하여금 마음 가운데 있는 말을 꺼내게 했다.

 삶의 지혜를 구하는 마음으로 내가 베트남까지 어떻게 오게 됐는지 요즘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는지 등을 차근히 말했다.

 영어에 한계가 있어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한정되고 마음처럼 전달하기 힘들어 답답했지만 그라힘은 모든 말을 끝까지 경청해줬다.

 잠시 후, 그라힘은 살면서 많은 어려움들이 있었다며 입을 뗐다.

 살면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는데 그것들이 어떤 문제인가에 따라 상황에 따라 어려움과 해결방법이 매번 달랐다고 했다.

 인생은 좋을 때와 나쁠 때가 오고 가는 굴곡이 있고, 특히 나쁠 때 자신에겐 인내가 필요했다고 했다.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썼더니 스트레스만 생겼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덧붙여서 이런 말들을 해주었다.

 “모든 삶은 여행이다. 도전해라. 미치광이가 되어봐라.” 이후로도 나와 대화할 땐 도전과 미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라힘은 십오 년 전까지 프로그래머 일을 했다.

 아프리카에서 태어나 남아공에 살다가, 아르헨티나로 이동했는데 그곳은 정말 다른 세상이었다고 했다.

 ‘정말 다른 세상’ 나는 그 말에 담긴 것을 차마 헤아릴 수 없었다.

 그다음엔 오스트레일리아로 갔고 다행히 그곳에서 비자를 받고 살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런 삶의 여정 중에 프로그래머였던 그라힘은 어느 날 백페커스를 하기로 결심하고 13년간을 운영하다가 2년 전에 그만두고 베트남에 왔다.

 삶을 통과해온 이야기들은 시간과 공간을 격하고 곧장 마음으로 들어왔다.

 그의 이야기가 특별했기 때문이 아니라 온전히 내 말을 경청해주고 내게 삶의 지혜를 나누어주는 그의 태도 때문이었다.

 그는 조언하지 않고 담담히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굳이 조언이라면 도전과 미쳐야 하는 것이었는데 그런 말을 건넬 때 그의 표정과 눈동자까지 모두 선명하게 기억한다.

 그는 내가 보내고 있는 시간이 눈부신 청춘의 일부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내 말을 들어줄 때 내 생각이 정리되고, 그의 눈동자에 비친 나를 보면서 지금이 무모하더라도 도전하고 부딪쳐야 하는 시기임을 알았다. 

 때론 미친것처럼 보일지라도 지금은 그래야 할 때다.


 태국에서 영어로 인해 움츠러든 마음을 인지하면서부터 계속해서 되뇌고 있다.

 지금이 움츠러들 때가 아니라 미친 척하고 자신 있게 나설 때라고.

 못하는 영어로도 더 봉사자들에게 말 걸고, 함께 교육 방법을 논의하고, 회의 때도 생각을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렵다. 

 정말 미쳐야만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다시 찾아온 아침, 수건과 세면도구를 손에 들고 잔디밭을 가로질러 가는 길에 따라온 몽롱함은 샤워를 하면서 곧장 씻기 운다. 

 머리가 깨질 듯이 차가운 물에 졸음이 버틸 재간은 없다.

 아슬하게 옷을 문에 걸어두고서 바가지로 뜬 물을 처음에는 손과 발에 뿌려보고, 그 차가움에 놀라서 차마 몸에 물을 끼얹지 못하고 머리를 먼저 감다가, 결국 몸에 한 바가지 크게 붓고 나면 이제 새로운 하루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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