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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훈 Oct 30. 2022

감정의 껍질

노르웨이의 숲

 ‘아.. 노르웨이’

 두 눈에 가득히 나무와 강 나무와 강. 초록으로 가득한 땅으로 내려앉았다. 노르웨이의 숲으로.


 아주 오래전부터 노르웨이에는 어마어마한 숲이 있다고 생각했다. 굉장히 멋진 숲.

 세로로 길쭉한 나무가 빼곡히 아주 넓은 지역에 걸쳐 숲을 이룬 장면도 머릿속 상상에 있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단어가 머리에 깊게 박혀있다.

 여행을 앞두고 노르웨이 숲을 검색했지만 숲 자체를 보기 위한 명소는 찾을 수 없었다.

 나는  노르웨이에 가면 숲을 봐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기억을 거슬러 올라갔으나 딱히 이유는 찾지 못했다.

 구글에서 비틀스와 하루키 씨의 책이 검색되는 것을 보고 나도 이 영향을 받은 것인가 짐작해봤지만, 'Norwegian Wood'라는 비틀스 노래를 알지 못했고, 하루키 씨가 이 노래의 Wood를 숲으로 오역해 책 제목으로 가져왔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노르웨이 여행에 이 책과 동행을 결심하고 전자책을 다운로드했다.

 책에서 노르웨이의 숲은 비틀스 노래의 제목 딱 그 정도 연관성만 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직원의 실수로 내가 예약한 차량이 다른 이에게 가버렸다는 말에 난감해하던 찰나, 동일한 가격으로 오토 차량을 줘도 괜찮겠냐고 묻는 말에 흔쾌히 그렇게 해달라고 했다.

 돈을 절약하기 위해 수동을 선택했지만 운전면허를 취득한 이래로 스틱을 사용하지 않아서 내심 걱정했었기에 나로서는 반가운 상황이다.

 노르웨이에서 자동차 여행을 시도할 생각이다.


 북유럽으로 넘어오기 전에 구글링으로 노르웨이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노르웨이 관광청 정보를 가장 많이 참고하고, 그 외에 다양한 여행자의 블로그도 확인했다.

 새로운 여행지를 앞두고 사전 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은 또 하나의 여행과 같았고 기존에 본 적 없는 풍경 사진에 눈이 뜨이고 가슴이 뛰었다.

 가고 싶은 곳을 구글맵에 표시하고 지도를 확장해서 그 장소들을 가만히 보다가 노르웨이를 여행하려면 차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했다.

 버스나 기차, 히치 하이킹 등을 활용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한계가 있어 보였고, 명소에 크게 집착하기보다 지나던 중에 눈길을 사로잡는 곳에 멈추고 싶어 할 내 성향도 고려해야 했다.

 줄곧 '대자연속으로'라는 단 하나의 목표만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자동차 여행에 대한 확신을 갖고 곧장 현지 렌터카 사이트를 검색하여 가장 저렴한 차량을 예약했다.


 효율적인 동선을 위해 표시한 곳을 이어서 하나의 원을 그렸다.

 오슬로에서 출발해서 트론헤임 밑으로 한 바퀴를 돌아 다시 오슬로로 돌아가는 원이다.

 원에서 크게 벗어나는 곳은 포기했다.

 표시한 장소들은 이동의 척도 역할을 할 뿐 이동 경로 자체를 즐길 것이고, 혼자이기에 시간과 일정에도 크게 구애받지 않고 마음에 드는 곳에서는 언제든 멈출 생각이다.

 3000km의 자동차 여행을 떠난다.




 오래전, 해변의 카프카가 출간되고 각종 매체에서 하루키 씨의 책들을 조명할 때, 그때 이 책을 처음 알게 됐다.

 ‘상실의 시대’, 책에 대한 첫 느낌은 ‘무겁고 어두운 성인의 책.’이었다.

 단지 제목을 보고 그렇게 느낀 것이다.

 어두운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 데다 표지 또한 기괴해서 볼 엄두를 내지 않았다.

 대학교 2학년 때 도서관 4층 창가에서 처음으로 책을 펼쳤다.

 군생활을 마치고 다시 서울로 돌아온 해였다.

 책의 색이 너무나 진해서 한동안 그 여운에 다른 책을 읽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그 색감을 오래 간직하고 싶었다.

 그해 하루키 씨의 책을 시작으로 참 많은 일본 소설을 읽었다.

 이전까지 접하지 못한 세상. 전혀 다른 느낌의 문체, 시선, 표현, 그 모든 다름의 문학들은 가히 충격적이어서 2학년의 봄과 그 한해를 떠올리면 그 느낌들이 있다.


 상실의 시대와 노르웨이의 숲은 다른 제목 같은 책이다.

 앞서 언급했듯 ‘노르웨이의 숲’은 비틀스의 노래 ‘Norwegian Wood’에서 가져왔는데 하루키 씨는 Wood를 숲으로 의도하여 오역했다. (비틀스의 노래에서는 노르웨이산 나무로 만든 가구를 칭하고 있다.)

 1987년 일본에서 출간된 후 하루키 신드롬을 일으킨 책. 1988년 저작권 계약이 없는 상태로 국내 3개 출판사에서 ‘노르웨이의 숲’으로 출간했지만 대중들의 반응이 없던 책. 1989년 문학사상사가 하루키 씨와 정식 저작권 계약을 한 뒤 ‘상실의 시대’로 제목을 바꿔 한국에 출간했고 첫해 30만 권이 팔린 책. 계약 종료 후 민음사와 계약으로 2013년 원제목 '노르웨이의 숲'으로 출간된 책. 문학사상사의 ‘상실의 시대’가 회복 저작물에 해당하여 출간을 이어가고 있기에 두 개가 된 하나의 책.

 그때 도서관에서 읽었던 책은 유유정 님 번역의 상실의 시대였고, 그때의 언어들에서 받은 느낌을 훼손하고 싶지 않기에 이번에 전자책도 문학사상사의 책을 골랐다.

 노르웨이의 숲. 작가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했고 나는 아름다운 청춘의 이야기로 받아들였다.




 곧장 오슬로를 떠나기엔 늦은 시간이었기에 호스텔을 예약했다.

 2만 8천 원가량의 36인 혼성 도미토리 룸이다.

 예약을 했음에도 내 이름이 없을까 봐 늘 불안한 카운터에서 무사히 카드키와 침구류를 받아 들고 방으로 올라갔다.

 불 꺼진 방에 떠나는 사람, 침구를 정리 중인 사람, 침대에 딸린 불을 켜고서 책을 보는 사람 등이 있었고 모두 나름의 정숙을 유지하고 있었다.

 자연 속으로 떠날 누군가의 취침을 방해하지 않기 위한 저마다의 배려가 맴도는 어둠 속에서 배정받은 침대를 찾아보니 만족스럽게도 문이 열리는 곳 뒤편의 침대 1층이었다.


 더 늦은 밤이 되기 전에 식량을 구비하기 위해 서둘러 침구를 정돈하고 방을 나섰다.

 과거 여행자들이 책과 지도와 귀동냥으로 정보를 얻으며 새로운 세계를 날마다 새로운 시선과 마음으로 탐험하던 것과 다르게 이제는 인터넷이 있고, 그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 통신망과 노트북, 특히 스마트폰이 있기 때문에 원하는 정보를 원하는 때 원하는 만큼 검색할 수 있다.

 물론 원하는 정보를 누군가가 인터넷 상에 제공해두었다는 가정이 전제이지만 여행에 대한 정보는 어딘가에 꼭 있었다.

 이번 노르웨이 여행도 그런 도움을 받아 경로를 잡았고, 식량 비축의 필요성도 전달받았다.

 손쉽게 정보를 얻은 만큼 좌충우돌할 경험을 잃는 듯해서 과거 여행자가 부럽다는 생각을 하며 냉동 파스타와 생수 한 병, 미스터 리 라면 3개, 킷캣 한 봉지, 감자 과자 한 봉지를 샀다.


 호스텔로 돌아와 뜨거운 물로 온 몸에 쌓인 피로를 말끔히 씻어냈는데, 몸에 얼마 없었을 유분기마저  모조리 쓸려갔는지 샤워를 마치고 나올 때는 온몸이 건조한 뽀송함으로 바짝 땅겼다.

 어두운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몸을 누이고 손에 쥔 정보를 만지작 거리며 훑어보다가 설레는 마음에 눈을 감았다.




 노르웨이에 오기 전, 핀란드에서 마지막 날.

 노르웨이 자연 속으로 들어가면 어떤 여행이 될지 알 수 없으니 힘을 비축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에 한식집 <한국관>에 갔는데 한국 단체 관광객들이 있었다.

 여행 중에는 볼 수 없던 한국인을 마주하니 반가움이 일었지만 속내를 감추고 빈자리에 앉았다. 

 '사장님, 된장찌개 하나 부탁드립니다.'

 메뉴를 딱히 살펴보지 않고 주문하면서 괜스레 유쾌한 기분이 들어 배시시 웃었다. 

 혼자 여행하다 보니 오랫동안 한국말을 할 일이 없다.


 음식을 기다리던 중 뒤에 앉은 아저씨가 큰 배낭을 보시고는 혼자 여행 중이냐며 말을 건넸다.

 4개월 전 한국을 떠나 세계여행 중이고 앞으로도 꽤나 많은 날을 여행하게 될 것이라는 내 말에 아저씨와 그의 일행들은 탄성을 뱉으며 엄지를 들었다.

 세계 여행하는 사람을 직접 만나기는 처음이라며 운을 뗀 그와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식사를 마친 어머님 아버님들께서 몸을 돌려 앉으며 작은 반원이 만들어졌고, 멀리 계시던 분들도 관심을 보이셔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야 했다.

 여행자들과 영어로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때면 단어를 아는 만큼 표현할 수 있어서 어휘의 제약 안에 맴돌아야 하는 답답함이 있었지만, 모국어는 그런 표현의 제약이 없기에 경험과 느낌을 설명하는 자체에 즐거움이 있었다.

 이동할 시간이 됐다는 누군가의 외침에 한분 두 분 일어서실 때 헤어짐에 대한 아쉬움과 타지에서 한국인을 만난 반가움을 담아 인사드렸다.

 그제야 음식이 나왔다. 


 잠시 후 나가셨던 분들 중 한 부부가 다시 돌아와 본인들에게도 두 자녀가 있는데 하나는 서른여덟이라며, 아들 같다며, 남은 반찬이 이것뿐이라며 반찬이 담긴 검정 봉투를 건네주시고는 가셨다. 

 깻잎 통조림과 참치, 김, 고추장, 스팸 등이 담긴 봉투였다.

 감사하다고 연신 인사하는 내 손을 말없이 잡아주시고 가셨다. 

 아들 같다며 주셨으니 부모님을 뵌 듯하여 눈시울이 붉어졌다. 

 오랜만에 닿은 누군가의 체온은 굉장히 따뜻했고, 고개를 끄덕이며 바라보는 그 눈에 세상을 헤쳐 나가느라 고생이 많다며 이해가 담긴 듯했다.

 마음 한편에 눌러둔 생각이 봇물 터지듯 새어 나와 다 토해내고 싶었지만 고개를 숙이고 눌렀다. 

 국밥 그릇처럼 큰 뚝배기에 구수한 냄새를 풍기는 된장찌개를 열심히 먹었다.

 한 공기를 더 주문했고 주인아저씨는 두 공기 분량의 밥을 한 공기에 쌓아주셨다.


 이런 정을 받고 온터라 혼자 자동차 여행해야 하는 이 순간도 든든하다.




 오슬로 호스텔에서 아침에 눈을 떴을 때는 여섯 시 이른 아침이었다.

 커튼 사이로 비춘 햇볕에 드러난 방안에는 생각보다 많은 침대가 비어있었는데 이른 아침과 밤중에 많은 여행객이 떠난 것 같았다.

 광활한 노르웨이를 여행하기 위해서는 일단 오슬로를 빨리 벗어나야 하는데 목표로 하는 지점은 차로 7시간 떨어진 곳이다.

 전체 일정 중 오늘 하루를 가장 고생해서 이동하면 이후로는 이보다 편하게 이동할 수 있다.

 숙소에서 지체할 필요가 없기에 서둘러 씻고 곧장 짐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이럴 줄 알았다.

 오슬로를 벗어나면 아름다운 풍경이 연속될 줄 알았다.

 몇 번이고 차를 멈춰 세우고 놀라운 풍경을 감상하는 동안, 틀어둔 라디오에선 유럽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무 개의 노래가 연속으로 흘러나왔다.


 <노르웨이의 숲>을 읽기 시작한 건 이동 중 강가에 차를 세웠을 때다.

 글은 주인공 와타나베가 비행기에서 비틀스의 <Norwegian Wood>를 듣고 과거를 떠올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나오코와 초원을 걷고 있다. 

 나는 작가가 나열한 모든 것을 머리로 상상하면서 읽을 수 있었다. 

 과거를 더듬는 화자의 시선을 따라 초원과 나오코를 바라보고 화자 본인의 현재에 대해서까지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책에서 잠시 눈을 뗐을 때 눈앞에 노르웨이의 강이 굉음을 내며 굽이치고 있었다.

 마음에 차오르는 어떤 감정을 마음껏 발산하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였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남들은 여행 버킷리스트에 맛집, 오로라, 스카이 다이빙 등을 적는다는데 나는 마음껏 감정을 발산하고 싶다고 적었다.

 살면서 여러 번 기쁨과 슬픔, 뜨거움과 울분을 마음껏 발산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기껏해야 야구장이나 노래방에 가서 소리 지르는 것으로 발산해온 게 지난 삶이다.

 그래서 세계여행을 하면 마음껏 울부짖고 고함치며 내 감정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기를 바랐다. 

 아주 작은 티끌까지 남기지 않고 모조리 다. 부끄러운 것은 세상에 두고 돌아오면 되니까.


 하지만 감정을 발산한다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여행을 시작한 뒤 감정이 차오를 때면 발산하려 했지만 그때마다 목구멍이 닫힌 것처럼 내뱉어지지 않았다.

 나는 보이지 않는 껍질을 스스로 두르고 있었다.

 필리핀을 시작으로 다양한 상황 속에 나를 놓고 껍질을 깨기 위한 시도를 했지만 이것은 일부 성공했고 일부 실패했다. 

 여전히 나는 감정의 껍질을 벗지 못했다. 

 그래서 노르웨이에서 혼자가 된 순간, 심지어 주변에 아무도 없이 강 앞에 혼자 서있는데도 감정을 발산하지 못하고 있다.


 감정 발산이란 무엇인가. 고함 한번 마구 질러볼 수 있는 게 일반인의 감정 발산이다.

 거센 강물이 굽이치며 내려오는 경이로움 앞에서 마음에 차오르는 감정을 소리 내어 내뱉고 싶었지만 주저하고 있다. 

 주변에 누가 있는 건 아닌지만 살피고 있는 나 자신이 안쓰럽다.

 "와" 와 라는 외마디 감탄이 이렇게 어색하게 입으로 나와서 귀에 닿는다.

 괜히 멋쩍어서 한 번 더 길게 "와아아아"라고 외쳤다.

 왜 나는 감탄 하나 내지르는데 타인의 시선에 자유롭지 못한 인간으로 자라왔는가.


 개방되고 싶다. 

 여기서 개방이란 내가 만든 인식의 틀과 감정의 껍질을 깨는 것처럼 내 안의 것에 대한 개방과 외부 자극의 수용성 모두를 말한다.

 생각한 것보다 훨씬 단단한 껍질을 내 마음에 두르고 있음을 인지 한 건 세계여행을 나오자마자 필리핀에서부터였다.

 한국을 떠나며 환경과 타인이 둘러싼 무형의 것이 벗겨지고 내가 잡고 있던 욕심도 놓자 비로소 내가 만든 단단한 껍질을 발견했다. 

 호두와 같았다. 

 그래서 나는 필리핀에서 계속 그 노력을 한 것이다. 

 호두를 두드려 깨듯 나를 둘러싼 껍질을 까려고 발버둥 친 것이다.

 운동을 하려면 그전에 스트레칭을 공들여서 한다. 

 근육을 유연하게 해서 가동성을 높이는 거다. 

 여행도 그렇다. 청춘의 발버둥도 그렇다. 사람이 새로 태어나고 싶은 마음도 그렇다. 

 마음부터 유연하게 만들어야 한다. 껍질을 두드려야 한다.


 강이 만드는 굉음에 묻어 소리를 내 지른 뒤부터 다시 운전을 하면서 놀라운 풍경이 보이면 감탄사를 의식하여 내뱉었다. 

 내뱉은 것에서 끝내지 않고 크게 소리 지르고 환호했다.

 노래를 부르는 게 일상인 민족의 아들인데 감정을 밖으로 표현하는 것이 이리도 어색할까.




 "아무튼 그런 걸 좋아하는 모양이지?" 하고 그가 물었다.

 "그렇게 좋아하는 건 아냐." 하고 내가 말했다.

 그 대답이 그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뭐든지 상관없었던 거야, 내 경우는." 하지만 그 설명으론 그를 납득시키지 못했다.

 "잘 모르겠는데 ......." 그는 정말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고 말했다.

 "내, 내 경우는 지, 지, 지도가 좋아서 지, 지, 지, 지도 공부를 하거든. 그 때문에 일부러 도쿄에 있는 대학에 들어왔고, 매달 보내주는 하, 학비도 받고 있는 거야. 그런데 너는 그렇지가 않다고 말하고 있으니 ......"

 그가 하는 말이 옳았다. 나는 설명하기를 단념했다.

 -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 중


 운전하는 동안 부모님 생각을 했다.

 아름다운 것을 보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보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다.

 아버지 당신께서는 직접 운전하는 게 편하시겠지만, 그럼 목적지까지 곧장 가버릴 테지.

 언젠가 한 번은 아버지와 담양에 다녀온 어머니께서 '다시는 자전거를 같이 안 타겠다.'라고 했다.

 왜인지 묻자 '무슨 경치를 즐길 생각은 없고 목적지까지 질주했다가 도착하면 바로 돌아서서 출발점으로 쌩하니 와버린다.'라고 한다.


 아버지 김철수 씨는 목표가 정해지면 최선을 다해 삶을 질주해왔다. 

 그의 앞날엔 늘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강한 책임감으로 일에 매진하며 회사가 확장되는 것에 기뻐했고 회사가 곧 그의 삶이었다. 

 그런 삶이 가정을 지켰다. 

 크고 작은 일들이 있었지만 성공의 연속이었다.

 어느 날 그 모든 것이 무너지고 한차례 큰 병을 앓고 난 후에 그는 삶을 찾기 위해 방황하고 있다.

 먹고사는 것과 사회적인 성공에 급급하던 시간을 지나온 뒤에 비로소 나는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떻게 살 것인지를 찾는 시간이 찾아왔다.

 아버지 세대가 일꾼 시대의 부유함 덕분에 스무 살의 어린날부터 내가 할 수 있었던 고민을 오십이 훌쩍 넘은 김철수 씨도 한다.


 그는 부유하지 못한 집에서 태어나 온 동네 들썩이던 사고뭉치였다.

 도끼, 참기름병 등 집에 살림을 엿 바꿔 먹기 일수였고, 급식으로 제공되던 빵을 먹기 위해 학교 창문을 넘어 들어갔지만 잠든 채 다음날 발각되기도 했다.

 군대에선 매일이 사건사고였고 김장 탱크에서 가스에 질식해 기절하기도 했다.

 다시 그런 어린 마음으로 돌아갈 시간인지도 모른다.

 세월을 격하고 아버지와 내가 동일한 고민을 하고 사는 동안 어머니는 그 자리를 지켰다.

 사실 우리 집은 어머니가 가장 강인하다.

 천사 같았던 어머니는 철부지 아들과 남편으로 인해 강인해져야 했다.

 운전 중에 생각들이 의식의 흐름에 따라 떠오르고 사라진다.


 그런 돌격대 이야기를 하면 나오코는 언제나 웃었다. 그녀가 웃는 일은 드물었기 때문에 나도 그의 이야기를 자주 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를 웃음거리로 만드는 것이 그다지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그는 그리 부유하지 않은 가정의, 다소 고지식한 셋째 아들에 불과했을 뿐이다. 그리고 지도를 만드는 것만이 그의 자그마한 인생의 자그마한 꿈인 것이다. 누가 그것을 웃음거리로 만들 수 있단 말인가?

 -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 중




 차를 더 멈추면 오늘 안에 목적지에 도착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도착 예정 시간이 자꾸만 늘어나서 처음에는 길을 잘못 들었나 싶었는데 나중에서야 차를 한번 세울 때마다 15분 30분씩 도착 시간이 늘어난다는 것을 깨달았다.

 경치를 감상하고, 사진을 찍고, 볼일 보고 그 모든 행복에 시간이란 대가가 필요했고, 도착이 생각보다 늦어지니 마음 한편에 숙소에 대한 불안감이 싹텄다.

 에어비엔비를 예약했는데 호스트의 확정을 확인하지 못하고 출발했다.

 위기감을 가진 이후로는 최대한 정차하지 않고 갔지만 과속할 수 없는 노르웨이에서 도착 예정 시간이 줄어드는 마법은 없었다. 


 지나치던 캠핑장 옆에 작은 마트를 발견하고 곧장 핸들을 틀었다.

 자연을 사랑하는 노르웨이는 하나의 차선으로 차량이 오고 가고 화장실은 그 긴 여정 중 찾을 수 없다.

 방광이 터지기 직전이 되어서야 자연에 죄짓는 기분으로 차를 멈추면 왜 그때마다 다른 차들이 지나가는지 난감했고, 깊은 숲으로 걸어가자니 왠지 무서웠다.

 사탕과 핫도그를 사면서 화장실을 이용하고, 마트 지붕 밑에서 간신히 연결한 와이파이로 숙박 예약이 취소됐다는 알림을 확인했다.

 오히려 확인하니 불안감이 가시고 홀가분했다.

 백야로 해가 지지 않는 여름 노르웨이 자동차 여행의 장점은 유연한 일정이 가능하다는 것이고, 어느 것도 미리 예약하지 않았기 때문에 개인의 일정도 넉넉했다.

 당장은 숙박 어플에 숙박 가능한 장소가 보이질 않지만 목적지 부근에 답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내가 설정해둔 목적지가 산 위라는 것은 생각지 못했다.

 한 시간째 차는 산으로 올라가고 어느 순간부터 비가 내리고 있었다.  

 ‘유명한 장소 근처에는 마을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계속 앞으로 가고 있지만 백야 현상이 무색하게 사위가 어두웠다.

 시야 가득 광활한 바위 산, 먹구름이 가득한 하늘, 더 많이 내리는 비. 마치 나 혼자 타 행성에 온듯했다.

 자동차 여행을 시작한 첫날 산 위에서 고립될 수 있겠단 생각을 했다.

 최후에는 안전한 곳에 주차하고 가지고 있는 모든 옷을 껴입고 차에서 자자는 생각을 하며 아까부터 틀어둔 라디오 볼륨을 높였다.

 어느 것 하나 미리 예약한 것 없는 일정이 주는 자유로움이 크지만 그만큼 리스크도 있다.

 그래도 노르웨이에서 자동차 여행을 마음먹은 취지에는 이게 좋다.


 내비게이션에 검색되지 않았으나 목적지였던 Kjeragboltn에 도착하니 불이 켜진 카페가 하나 있었다.

 두 시간 만에 처음 보는 불빛과 사람이 있다는 자체에 안도감이 몰려왔다.

 따뜻한 차를 한잔 시키며 숙소를 구할 곳이 있을지 물어보니 직원은 친절하게도 아래 마을로 가서 'Olavs'라는 펍에 요청하면 숙소를 안내해 줄 거라며 포스트잇에 펍 이름과 주소를 적어줬다.

 포스트잇을 소중히 쥐었다.


 여행지의 첫날은 전초전과 같다. 

 그 나라의 정보를 얻고 여행하기 위한 방법을 배운다.

 노르웨이 날씨는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고, 구글로 검색한 이동 시간과 차량 내비게이션 결과가 다르고, 지명이 검색되지 않을 수 있고, 화장실을 가기 힘들고, 마을이나 식료품 가게도 드물고, 멈출 때마다 도착 예정시간이 늦어지고, 핀란드와 동일하게 백야로 인해 밤 10시가 넘어야 어두워지기 시작하고, 마주 오는 차량이 지나갈 수 있도록 비켜주면서 서로 인사를 하는 즐거움이 있다.

 나는 아직도 여행을 배우는 중이고, 왜 여행을 시작하게 됐을까, 이 여행에서 무엇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생각하고 있다.


 ‘Olavs Pub’, 도착하니 정말 방이 있고 330kr에 예약할 수 있었다.

 피오르드 협곡을 따라 바닷물이 여기까지 닿았다.

 놀라운 경치와 Kjeragboltn 트레킹 시작점까지 가까운 위치를 생각하면 근사한 숙박 장소였다.

 Kjeragboltn은 노르웨이 3대 트레킹 코스 중 하나로 꼽히고, 마을은 그곳에 다녀왔거나 갈 예정인 여행자들로 가득했다.

 목조 주택에 침대가 여러 개 있는 구조의 호스텔이어서 사람들이 움직이는 소음이 들리는데 특히 등산화를 비롯한 각종 장비를 가진이들이 많아서 움직임이 무겁고 소란스러웠다.

 이것이 노르웨이 여행의 낭만인 듯해서 좋았다.

 침대에서 눈을 감고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4,285km의 PCT>, <800km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 틈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체크인을 할 때 샤워에 대해서 언급하며 스페셜 뭐가 필요하니까 찾아오라고 했는데 온수에 대한 이야기였던가 보다.

 수건과 샴푸를 챙겨서 샤워룸으로 가니 특별한 동전을 넣어야 특정 시간 동안 온수가 된다고 적혀있었다.

 차가운 물이면 어떠나 싶어서 틀었더니 산에 있는 호수 물을 끌어오는 건지 아주 깨질 듯이 차가운 물이었다. 

 머리부터 깨졌다. 

 그래도 온몸을 관통하는 개운함이 좋았다.


 샤워를 마치고 맥주 한잔의 낭만을 누리기 위해 펍으로 갔다.

 두 모금만으로도 술이 올라올 만큼 나는 알코올과 멀어져 있고 그만큼 운전이 고됐다.

 출발한 시간으로부터 10시간이 지나서 이곳에 도착한 셈이었다.

 와이파이를 연결해서 노르웨이 정보를 재확인하며 일정을 수정하고 못 보낸 카톡 답변을 했다.

 한줄기 빛 같은 와이파이를 붙잡으면 반가움이 일지만 하루의 대부분을 없이도 잘 지내왔다.

 2011년 내 생애 첫 스마트 폰을 구매하기 전까지도 사람들과 교류하고 정보를 얻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펍에 앉아서 하루를 모두 기록하려 했지만 지나간 상념이 떠오르지 않았다.

 순간순간마다 떠오른 생각들이 있었는데 운전하느라 적어두지 못했던 것이 아쉬웠다.

 새로운 풍경과 경험으로 자극이 연속되기 때문인지 아니면 사색할 시간이 많아졌기 때문인지 여행 중 글로 옮기고 싶은 내용이 툭툭 떠올랐다.

 그것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다.


 숙소로 돌아와서 어제 사둔 Mr. Lee 라면을 끓인 뒤 냄비째 들고 밖으로 나왔다.

 피오르드가 보이는 벤치에 앉아 라면을 먹는데 그 행복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서늘한 공기 속에서 먹는 라면은 그 정도로 맛있었다.

 국물을 마시며 어떻게 이철호 씨는 노르웨이에서 라면을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라면이라는 놈은 사람 몸과 마음을 달래고 풀어주는 묘한 능력이 있어서 그제야 몸이 스르르 풀어지며 졸음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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