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유도 공원에 들어서면

5월 5일, 입하

by 김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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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도 공원에 들어서면 중앙 우측에 메타세콰이아 나무가 진행 방향으로 줄지어 있다.

그 너머 좌측에는 작은 잔디밭이 있고 미루나무 열 그루 정도가 서있다.

잔디밭엔 산책 나온 강아지들과 누군가의 아이가 소리치며 달려 다니고 있다.

아침에 유독 선명한 새들의 지저귐도 도처에 있었다.

여타 나무는 돋아난 새 잎의 작음과 연둣빛 색감이 싱그러운데 이 나무는 생김새가 싱그럽다.

나무는 아주 높다.

높은 꼭대기를 올려다보며 미루나무 열 그루 정도가 만든 짧은 길 사이를 두세 차례 반복해서 거닐었다.

미루나무 꼭대기에 조각구름 걸렸다는 동요 가사가 맞았다.

몇 해 전 망원 한강변에 심긴 어린 미루나무들이 선유도 공원의 나무만큼 자라면 대체로 허허로운 강변이 숲과 같아질까.


선유도 공원엔 유독 높은 나무가 많다.

메타세콰이아 나무, 은행나무, 미루나무뿐만 아니라 이팝나무조차 크다.

그런 나무가 몇 그루 모이면 단숨에 숲 속이다.

지난 월요일 교육으로 성수동을 방문했다가 한 시간 남짓의 점심시간에 서울숲으로 걸음 했다.

입구가 이쪽이었던가 하며 골목을 걷다 보니 곧장 숲이었다.

많은 걸음을 하지 않고 숲의 초입에 앉았다. 이미 숲이 싱그러웠으므로.

신기하고 신선한 무언가를 접한 것처럼 공원 벤치에 앉아서 숲과 그 사이를 거니는 사람들을 봤다.

책을 읽는 사람, 돗자리를 편 사람, 자전거를 타는 사람, 쓰레기를 줍는 자원 봉사자, 커피를 쥐고 산책하는 사람들 틈에 나도 있었다.

습관처럼 핸드폰을 보려다가 의식적으로 내려뒀다.

공원의 숲은 산과 다른 정취가 있었다.

애초에 현대 도심에서 숲을 경험하기 어렵기에 서울숲의 인상이 강하게 남았다.

선유도 공원에서도 서울숲을 떠올렸다.


모처럼 많이 달릴 생각으로 폰을 챙겨 오지 않아서 손에 쥘 수 있는 건 없었다. 사진도 글도.

몸이 무겁다, 숨이 찬다, 얼마나 왔을까, 몇 분이나 지났을까, 생각보다 덥지 않다며 달릴 때마다 솟는 수많은 잡념을 밀어내며 최대한 달릴 것을 강요한다.

많이 뛰려고 작정하니 새삼 뛰는 동안 발목에 힘을 주고 있단 걸 알았다.

이 힘이 필요한가 의문하며 슬며시 힘을 빼니 다리의 피로가 단숨에 줄어든다.

그 탄력으로 발견의 기쁨으로 변화의 집중으로 긴 거리를 달렸다.

많은 날을 보내왔음에도 마음을 먹어야 보이는 게 따로 있다.

다양한 싱그러움을 지나치는 동안 인상 깊은 것들을 기억하려 애쓰며 걸었고 어느 것은 잊지 않기 위해 되뇌었다.

나중엔 선유도, 미루나무, 참느릅나무, 이팝나무, 소나무를 되뇌며 걸었다.

이것은 되뇐 순서로 조각을 모으듯 쓴 글이다.


여태 잎이 피지 않아 죽은 것으로 생각했던 나무에 연두색 새 잎이 몇 개 피었다.

앙상한 가지만으로 풍성한 참느릅나무다.

망원한강공원과 양화대교 사이 데크에 있는 것이 가장 풍성하다.

이제 핀 작은 잎은 다 자라서도 작다.

새끼손톱의 절반도 안된다. 엄지만큼.

수없이 많은 작은 잎이 가지마다 피면 또 한 번 봄의 초입과 같은 풍경을 본다.

반팔 반바지를 입고서도 참느릅나무 아래서 싱그러울 수 있다.


참느릅나무를 제외하면 이미 녹음이 짙다.

이맘때 봄은 매일 꾸준히 한 발씩 앞으로 가는데 비가 오면 두세 발자국을 간다.

지난주 이팝나무가 아름다운 시간이라는 말을 하려 했으나 벌써 절정이다.

오늘내일이 마지노선이다.

잎은 아직 여리고 흰 꽃잎이 그 사이에 피어오르면 꽃 한 다발을 꾸며둔 것처럼 예쁘다.

일종의 부케라고 생각하고 이맘때를 즐긴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서 흰 꽃잎이 잎을 가리울정도로 폭발하면 과하다.

유독 일찍 꽃핀 나무는 벌써 과하다.

이팝나무는 봄의 나무이면서 여름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입하에 꽃이 피어 이팝이라는 설도 있다. 5월 5일 입하, 여름의 시작.


ps. 소나무마다 잔뜩 노란 뿔이 솟았다. 소나무의 꽃은 암꽃과 수꽃으로 나뉘는데 어느 쪽이든 꽃이라기엔 기이하다. 지금 하늘로 눈에 띄게 솟은 것은 수꽃이다. 수꽃이 노래질수록 내 마음도 그렇다. 비 오길 반복하는 탓에 크게 드러나지 않았으나 얼마 전부터 이미 송홧가루가 날리기 시작했다. 송홧가루가 날리고 비 오길 반복하는 날엔 세차가 무용하다. 그런 생각을 하면 한주 두 주 한 달이 지나도록 세차할 시기를 놓치고 어느 날 더러워진 상태로 차를 끌고 나갔다가 내차만 유난해 민망한 날을 경험한다. 어쩌든 그저 적정한 간격으로 세차하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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