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9월 말
'The most beautiful thing - Bruno Major'
'Creep - Karen Souza'
'Regent's Park - Bruno Major'
'Nothing - Bruno Major'
은행나무의 은행이 노랗게 익었다. 그런 시기가 됐다.
동부이촌 쪽 가로수 길엔 전날 내린 비와 함께 떨어진 것도 있었다.
눈으로 발견하기 전에 냄새로 먼저 알았다.
떨어진 은행은 누군가의 발에 밟혀 짓이겨졌다.
아직 습도가 높은 상태의 공기는 묵직했다. 냄새 또한 그랬다.
어릴 때 고약했던 냄새는 성인이 돼서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내면의 반응은 한끝 다르다.
왠지 반갑고 그립다.
그땐 비명을 지르며 은행이 늘어선 가로수길을 뛰어다녔다.
숨을 참고 단박에 거리를 돌파하면 성공, 은행을 밟지 않고 지나면 성공. 그런 놀이거리를 만들어내며 달렸다. 비명 속에 즐거움이 있었다.
포대와 막대기를 든 사람들이 은행나무를 털고 가면 땅에 짓이겨진 은행들의 흔적이 은은하게 남아있던 기억이 있다.
그때도 냄새를 싫어하던 사람들이 있었지만 유난스럽진 않았다. 내가 접한 환경에서는 적어도 그렇게 느꼈다.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생이 되고 사회인이 되는 동안 은행은 골칫거리로 여겨지며 많은 미움을 받았다.
공무원들은 사람들의 미움이 화로 닥치기 전에 은행이 떨어지기 전에 조기 수확한다.
어떤 곳은 나무에 망을 설치해서 땅에 낙하하는 것을 막기도 한다.
가로수 은행나무의 열매는 개인이 임의로 수확하지 못한다. 법이 그렇다.
그런 이유로 제때 채취되지 않은 열매가 땅으로 떨어져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일이 많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 말이 옆으로 퍼져 공무원들의 마음이 바쁘다.
은행 나뭇잎은 아직 물들지 않았다.
망원동에서 연남 방향으로 걷는 길엔 플라타너스 나무가 가로수로 심겨 장관이란 말을 지난봄에 했는데, 망원동과 연남 사이에 있는 서교동에서 홍대 방향으로는 은행나무가 심겨 장관이다.
곧 은행이 노랗게 물들면 그 긴 거리가 다 낭만이다.
엊그제 토요일에는 여의도 불꽃 축제로 인파가 한강 쪽으로 몰리면 도심 쪽은 한가하겠지란 단순한 생각으로 삼청동에 갔다.
빈집을 턴다는 느낌으로 나름의 습격이었으나 시청 근처에서 광화문까지 극심한 정체에 끼어 한 시간을 움직이지 못했다. 오판이었나 보다.
삼청동에도 은행나무 길이 있다.
지난 기억에 의해 은행나무의 정취는 늘 이 길과 서교동의 길에서 깊이 느낀다.
삼청동의 은행나무도 초록잎이 풍성했다.
어떤 패턴처럼 단팥죽을 한 그릇하고 이리저리 걷다가 수제비를 먹고 돌아섰다.
이전에 가던 카페는 사라지고 없다.
주차한 곳에 심긴 대추나무에 무수히 많은 대추 알이 열렸다. 그중에 몇몇은 갈색으로 변하는 중이다.
해가 뉘어가는 중에도 도심엔 사람들이 많았다.
9월 23일 추분에 밤과 낮의 길이가 같아졌다.
낮이 가장 길었던 6월 하지가 지난 뒤로 낮은 꾸준히 짧아졌고 이제 일곱 시 전에 해가 진다.
오늘자 기상청 망원동 일몰은 18시 18분이라고 한다.
저마다 해 지는 시간이 빨라졌음을 느껴왔기에 추분이 별스럽지 않았다.
다만 이날을 기점으로 가을은 좀 더 적극적이고 본격적이다.
공기가 서늘하고 어두운 밤이 길다고 느낀다.
아직 한낮이면 달궈진 온도에 여름의 어떤 냄새가 난다. 아직 곳곳에 그 정취가 남아있다.
가을 옷만을 옷장에 걸어 여름을 흘려보냈다.
가을이기 때문인지 삼청동의 분위기 때문인지 Bruno Major의 곡은 더할 나위 없이 적합했다.
가을길 산책하며 듣길 권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