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해지는 것들에 대해

겨울, 12월 초

by 김창훈

해마다 특정 시기마다 파고드는 목소리가 있다.

그 목소리들이 좋은 곡에 얹히면 도무지 막을 재간이 없다.

최근 몇 해 동안 윤지영, 허회경, 최유리, 고갱, 김현창 등의 노래들이 그랬다.

걸을 때, 책을 읽을 때, 커피를 마실 때, 가만히 앉아있을 때도 듣고 있으면 마음을 만진다.

그 음악이면 충분했다.

그러한 곡은 아주 많이 듣고 나서야 익숙해지고 이후 멀어지고 가까워지길 반복한다. 오랫동안.

올해 한로로의 곡이 또 그렇다.

22년 3월에 발매한 <입춘>이란 곡을 올해 봄 즐겨 듣다가 그 해의 <당신의 밤은 나의 밤과 같습니까>, 23년의 <정류장>, <사랑하게 될 거야>, <자처>, 24년의 <재>, <보수공사>, 25년의 <내일에서 온 티켓>, <갈림길>, <0+0>을 찾아듣는다.

겨울, 12월 첫 주. 이게 다 추천곡이다.

계절의 질감은 아니지만 겨울의 곡이란 90프로의 시즌송 파도 속에서 파도를 타지 않는 곡을 듣는 즐거움이 있다.


잎이 다 떨어진 목련나무에는 솜털을 두른 몽우리가 가지마다 달렸다.

멀리서 그 나무를 보다가 기어이 다가가서 올려다본다.

그러니까 이 몽우리들이 봄이 돼서 잉태한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다음 봄을 준비한다는 거지?


벚꽃 나무가 앙상해지는 동안 차례로 은행나무와 플라타너스, 목련 나뭇잎이 떨어졌다.

이제 거리를 돌아다니면 앙상한 나무가 쉬이 눈에 띈다.

잎의 풍성함이 단풍의 울긋불긋함이 얼마 전의 일이건만 벌써 앙상한 가지의 풍경이 익숙하다.

서늘한 풍경.

앙상해진 풍경 속에는 그간 시야에서 애써 밀어내던 사철 푸른 나무들이 밀어내지지 않고 그를 제외하면 봄에 높다 했던 미루나무와 단풍나무가 있다.

몇 해 전 정비 사업과 계획의 일환이었는지 한강변에 잔뜩 심긴 미루나무는 어느새 자라 높다.

양화대교에서 서강대교로 향하는 강변북로 곡선길에는 높은 미루나무 꼭대기만 도로 옆으로 솟아 놀랍고 즐겁다.

강건너편엔 길쭉한 미루나무가 노랗게 물들어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섰다.

미루나무에도 여러 종류와 형태가 있는지 모르겠으나 한강변에 심긴 것은 키가 큰 나무이면서 가지가 위로 뻗고 중심부로 모이는 형태이다.

바람이 불면 그 방향으로 묘하게 휘어 서양화에서 보곤 하던 모습으로 풍경에 머문다.

나무는 그 모습이 유독 정적이다.

단풍이란 현상을 이름에 달고 있는 단풍나무는 한껏 화려했다.

붉고, 노랗고, 주황이고, 초록인 잎들이 한 나무에 섞여있다가 온통 붉은 나무가 됐다.

도심의 단풍나무는 유명 산지의 것보다 늦게 물들고 오래 잎을 매달았다.

이 주 전 뒤늦게 방문한 백양사에는 대다수 잎이 졌었는데 망원동 여기저기에 심긴 몇 그루 단풍나무들은 여태 잎이 풍성했다.

그 단풍나무들은 이틀 전부터 닥친 한파에 바싹 마르고 시들었다.

바람이 불면 비라도 오면 모조리 쓸려나갈 것처럼.


채도가 낮은 풍경, 서늘한 풍경에 익숙해져간다.


* 차도 너머에 있는 모과나무를 지나갈 때마다 본다. 수확되지 않은 모과는 아주 노랗게 익었다. 눈으로 보면서 향을 상상할 수 있다. 아 모과향.

* 모과를 구할 수 없어서 감귤과의 무엇이든 갖기 위해 시장으로 간다. 늘 가던 시장 입구 근처의 청과점. 작은 귤을 담아둔 바구니를 들고 줄을 서서 계산을 기다리는 동안 남자 직원이 감을 고르는 할머니께 거친 말을 뱉었다. 그 무례함이 마음에 걸려있다가 가게를 나서면서 숨이 막힌다. 내가 그렇게 만든 거다. 여러 해 동안 이곳을 얼마나 찾아왔던가, 이곳에 일하는 직원들의 습관적인 무례를 얼마나 많이 봤던가, 그들이 한 편이 되어 무례를 더하고 그게 당연하다 하는 동안, 그럼에도 나는 계속해서 이곳을 찾아와 그들의 장사를 도왔으니 이것은 내가 그 무례에 한몫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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