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2월 여러 날
'Traveler - 예빛'
'My Everything - 웬디'
'Maybe Tomorrow - DAY6'
2월 초.
4일 입춘. 마음이 호들갑 떠는 동안 겉으로는 잠잠했다.
내가 요란하지 않아도 아침이 됐을 때 세상이 요란했다.
기온이 크게 오르고 안개인지 미세먼지인지 땅에서 피어나는 무언가인지 정체 모를 것으로 시야는 흐렸다.
일출부터 일몰까지 하늘엔 해가 떠서 밝았으나 모든 게 또렷하지 않았다.
당장 전날까지도 대단한 추위가 있었다.
겨울의 마지막 2주는 매서웠다.
낮에도 영하 10도를 넘지 못하는 한파의 연속이었다.
그러한 추위 속에 축복이 있어서 떠오르는 태양과 그 주변 하늘의 물듦과 한강의 잔 물결과 서울의 전경이 추운 날 특유의 시린 또렷함으로 아름다웠다.
그게 아주 먼 일이었던 것처럼, 입춘이 무엇이기에 단박에 다른 세상이다.
기온은 크게 올라 낮은 포근했고 그런 낮과 밤이 며칠 반복되는 동안 사방엔 미묘한 습기가 있었다.
비가 오지 않았음에도 땅은 젖었다.
흙이 있는 곳은 부풀어 헤쳐졌다.
땅은 더 이상 딱딱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어떤 날은 한 겨울의 한파 때처럼 온도가 급하강했고 손끝이 시렸다.
서울의 추위가 벌써 끝났을 리 없다는 건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입춘의 경계를 넘은 날 마음도 넘어갔다.
추위에도 두꺼운 외투나 겨울옷 특유의 질감, 추운 날의 색감 보다 봄날의 것들이 점차 눈에 밟힌다.
2월 중순.
한강은 고요했다.
파동은 오리들의 움직임뿐이었다.
물 위에 떠서 동동거리는 것은 모두 오리라 여기지만 생각해 보니 철새라 통칭해야 할 것 같다.
잔잔한 강물 위로 한 마리가 발을 굴러 전진하면 삼각형 파동이 남았다.
여기저기에 삼각형 파동마다 동동거림이 있었다.
63 빌딩과 밤섬 인근 한강에는 흰 새들이 떼를 지어 떠있다.
운전 중에도 강물 위의 수많은 흰 점들에 눈길이 간다.
다음날 또 다음날에도 흰 새 무리를 봤다.
그 구역이 그들의 거점인 듯했다.
날이 포근한 듯하면 시야가 좋지 않았고 서늘한 듯하면 시야가 좋았다.
어떤 날은 흐렸는데 시야가 좋아서 모든 게 선명했다.
회색빛의 하늘과 도심 풍경이 전체적으로 낮은 채도로 근사했다.
풍경을 우울하거나 서늘하다 느끼기보다 따뜻하게 느낀 것은 봄의 경계선을 넘었기 때문이리라.
그 다음 날은 맑고 서늘했는데 그 차이로 아침이 금처럼 빛났다.
심한 교통 체증 속에 그 빛나는 풍경을 이리저리 둘러본다.
이내 작열하는 태양빛에 눈을 가리기 바빴다.
창문을 내리면 봄내음 났다. 멀리서 아직은 옅게.
겨우내 틀던 난방은 아직 끄지 못했다.
온도 센서에 맞춰 돌아가도록 뒀으니 저 혼자 알아서 움직이지만 아직은 난방의 온기가 돌아야 집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2월 말.
문밖이 밝았다.
일출은 지난 12월 동지를 지난 이후로 꾸준히 빨라졌으나 25일과 26일 사이 큰 변화가 있었다.
이제 늘 나서던 시간에 문밖을 나서면 어슴푸레한 여명 없이 밝다.
봄이 다가올수록 선명해질수록 여의도를 본다.
여의도를 예찬하고 있다.
여의도 자체를 좋아한다기보다 강 건너편에서 여의도 쪽을 보는 게 좋다.
원효대교에서 양화대교 사이에서 보는 여의도 풍경을 대체로 좋아하는데 여러 번 시도해 보니 강변북로 위를 달리는 차 안에서 여의도를 옆에 두고 보는 것이 가장 좋았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강변북로를 따라 달릴 때는 여의도가 좌측에 위치할 때 보는 것이 좋았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향할 때는 여의도가 내 우측에 있을 때뿐만 아니라 앞이나 우전방에 있을 때도 좋았다.
걸어 다닐 때는 마포대교 인근의 한강변이 좋았다.
아무래도 망원에 오래 살았다 보니 가장 많이 접한 것은 양화대교 인근에서 본 풍경이다.
위치에 따라 보이는 풍경이 크게 다르다.
여의도를 언제부터 예찬했는지 생각해 보면 여의도 상공에 거대한 풍선을 발견한 뒤부터 인 것 같다.
겨울의 시리고 눈부시고 선명한 풍경이 지나고 따스함으로 흐트러지던 어느 해에 문득 여의도 상공에 거대한 풍선이 떠있는 것을 봤다.
그때부터 강 건너 여의도 풍경을 보는 게 내겐 낭만이었다.
저 풍선은 무엇인가.
찾아보니 탑승할 수 있는 놀이기구의 일환으로 서울시에서 만든 서울달이라 했다.
여의도 풍경을 예찬하는 이유 중엔 시선의 편안함도 있다.
한강이 있기 때문에 강너머에서 그 강 폭만큼 떨어져서 트인 시야로 여의도를 본다.
한강에서 여의도 한강변으로 이어진 공원은 낮고 폭이 넓어서 강과 도심을 부드럽게 이어주고, 강에 가까운 쪽 건물은 뒤의 것들보다 대체로 낮아서 보는 마음이 편안하다.
국회의사당 넓은 부지엔 나무만을 뒀고, 여의도라는 전체 면적 중에 특별히 높은 빌딩은 대게 중심부에 몰려있어서 코끼리를 삼킨 어린 왕자의 보아뱀 같은 형태로 그 역시 보기 편안하다.
63 빌딩이 한쪽에 치우쳐서 홀로 높으나 그마저도 여의도를 어디에서 바라보는가에 따라 거슬림 없다.
내가 좋아하는 위치에서 여의도 풍경은 배경이 비어있다.
전체적으로 여의도 윤곽 외에는 하늘이어서 보기 편안하다.
강남이든 용산이든 명동이든 도심들은 뒤 배경에 또 다른 빌딩이나 언덕, 산이 있고 그 도심의 풍경조차 빌딩 사이에서 빌딩을 가깝게 보는 것이기 때문에 답답하다.
빌딩 숲.
도심 속은 늘 나무 사이를 지나가는 것과 같은데 강 덕분에 그 너머에서 여의도를 숲으로 넓게 본다.
언젠가 병원 진료를 위해 광주에서 올라온 엄마가 합정 쪽의 한강변에서 여의도를 보다가 서울 같다는 말을 했다.
석양이 지며 여의도 야경이 빛날 때였다.
여의도.
벚꽃이 필 무렵이면 돗자리를 가지고 오던 곳.
음악방송 티켓을 구할 때면 방송국에 가던 곳.
일 년에 한 번 큰 불꽃놀이가 있던 곳.
공원을 놀이공원처럼 와서 걷던 곳.
포장마차가 늘어서 있던 곳.
희한하게 접근성이 좋지 않던 곳.
막상 가면 희한하게 할 게 없던 곳.
서울달이란 거대한 풍선에 지난날 그 모든 기억을 묶어 띄우고 건너편에서 바라본다.
추천곡은 예빛, 웬디, 데이식스의 곡.
차 창문을 내리고 아직은 서늘한 공기 속에 봄을 더듬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