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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타임 Dec 11. 2016

나쁜 엄마 마케팅

세상에는 완벽한 사람도, 완벽한 엄마도 없습니다

초보 엄마들은 아이를 키우다 보면 한 번쯤 '아, 나는 나쁜 엄마구나'라고 자책을 합니다. 제왕절개를 해서, 분유 수유를 해서, 아기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출근해야 할 때, 아기를 잘 살피지 않아서 아기가 다쳤을 때, 이유식을 하기 귀찮은 마음이 들 때, 놀아주기가 힘들 때, 아기가 달래지지 않고 한없이 울 때 엉덩이를 몇 차례 때려주고는 죄책감에 시달립니다. 


안 그래도 모르는 것 투성이에 아기라는 존재는 작고 연약해서 만지는 것도 조심스럽고 어디 데리고 나가는 것도 꺼려지는데, 친정엄마나 시어머니, 때때로 산후도우미까지 가세해서 아기는 이렇게 키워야 한다, 이러면 안 된다라며 훈수를 두고 혼을 냅니다. 의사들은 어떻고요. 아기가 몸무게가 적게 나가도 엄마를 나무라고 아픈 아기를 병원에 늦게 데려왔다고 또 혼냅니다. 모든 게 엄마 탓이라고 합니다. 


그러다 보면 엄마들 마음에 나는 부족한 사람이구나, 나는 나쁜 엄마구나라는 마음이 자랍니다. 이런 엄마들의 마음을 역 이용한 마케팅이 있습니다. 베베쿡에서 나온 <나쁜 엄마>라는 아기 간식 브랜드입니다. 사실 처음에 이 상표를 보고 뜨악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도대체 이 과자 브랜드는 무슨 생각으로 이런 상표를 집어넣은 건지 궁금했습니다. 제 기준에서는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이런 이름이 주는 이점이 없는 거 같았거든요. 


자료 제공 : 베베쿡 홈페이지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서는 아기가 좋아하는 맛, 예를 들면 설탕이나 인공감미료가 든 과자를 사주지 않는 엄마, 아기 입장에서 내가 좋아하는 걸 사주지 않는 엄마를 나쁜 엄마라고 표현한 겁니다. 그리고 인공향료나 인공 색소, 인공 감미료가 들어가지 않고 천연재료로만 만들어진 이 <나쁜 엄마> 간식을 사주는 엄마는 아기에게는 나쁜 엄마지만 곧 좋은 엄마다? 라는 역설적인 말이 되는 거죠. 사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제가 잘 이해한 건지 모르겠네요. 


여기서는 아마도 엄마들 마음속에 잠재돼 있는 스스로를 나쁜 엄마라고 생각하는 부분을 건드린 거 같습니다. 그리고 그 나쁜 엄마라는 정의를 아이에게 몸에 좋은 간식을 사주는 엄마라고 재정의를 내린 거죠. 엄마들 마음속의 죄책감을 덜어주는 겁니다. 


과자는 그런 의미였는지 몰라도 저는 <나쁜 엄마>라는 글자를 보는 거 자체가 마음이 그리 편치 않습니다. 나쁜 엄마, 좋은 엄마가 어디 있겠습니까. (아, 물론 아동학대를 하는 나쁜 엄마들도 있지만요.) 자식 사랑하는 마음은 다 비슷하다고 봅니다. 제 목숨을 주어도 아깝지가 않은 마음이죠. 



저는 엄마들 스스로 아기에게 완벽에 가까운 걸 줘야 한다는 마음을 내려놓는 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아기란 아직 작고 연약해서 엄마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부족한 사람'은 아닙니다. 이미 태어났을 때 독립적인 개체로 태어난 거죠. 아기를 목숨보다 더 사랑하는 마음과 약간의 거리를 두고 독립적인 개체로 인정하는 게 동시에 가능하냐고 물을 수도 있습니다. 


네, 가능합니다. 임신과 출산 과정을 겪어보면 엄마가 스스로의 의지로 조정할 수 없는 일 투성이 입니다. 집중력이나 배변처럼 의지나 노력으로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수정하고 임신하는 과정도 그렇죠. 성별을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원하는 아기를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죠. 입덧도 조절할 수 없고요. 분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제일 의학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미지의 세계가 아닌가 싶습니다. 특히 모유수유를 하면서 더더욱 그런 생각이 강해졌습니다. 내가 원하는 때 원하는 방식으로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게 아닙니다. 아기가 울면 약 5초 뒤에 젖이 돕니다. 가슴이 딱딱해지고 화끈거립니다. 아기가 배가 고프면 어딘가로 신호를 보내고 그 어딘가에서 제 몸에 신호를 보내는 것인지 저는 이 과정을 지켜볼 때마다 매우 놀랍고 아기에게 경외하는 마음마저 들었습니다. 태어난 지 얼마 안돼 목도 못 가누고 눈도 잘 안 보이는 아기지만 아주 놀랍게도 제가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런 과정을 지켜보면서 내가 아기에게 신이 되어 모든 걸 해줘야 하는 존재가 아닌 아기가 가는 길을 뒤에서 지지해 주는 조력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기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어떤 방향인지 아직은 잘 모르지만 그건 아기가 나보다 더 잘 알아서 갈 거라는 믿음이죠. 이렇게 마음먹고 나니 인위적인 걸 해주지 않게 되고 무언가 해줘야 한다는 압박이 없었습니다. 


이를테면 저희 아기는 이유식 후기에 이유식 거부가 와서 밥 종류를 전혀 먹질 않고 젖만 찾았지만 조바심 내지 않았습니다. 지금 어떤 이유에서 먹지 않는 것일 거고, 몸무게가 느는 건 조금 늦춰질 수 있지만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아기가 조절하고 있는 걸 테니까요.  


그리고 때때로 실수도 합니다. 수도꼭지를 가장 뜨거운 온수 쪽으로 돌려놓고 아이 손을 물에 넣기도 하고, 설거지하고 있을 때 발 밑에서 왔다 갔다 하는 걸 못 보고 치고 지나가서 넘어뜨리기도 합니다. 그럴 땐 저도 모르게 '미안 미안'이라는 말을 연발하며 쩔쩔매곤 하지만 돌아서서는 그러지 말자고 다짐합니다. 무심결에 엄마가 미안하다는 말을 자주 하는 게 아이에게 그리 좋지는 않을 거 같습니다. 꼭 필요한 때만 하려고 아껴두어야 합니다. 


엄마 기준에서 아기에게 완벽한 환경을 제공하는 게 아기에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루에 한 번씩 쓸고 닦고 꼬박꼬박 청소하고, 이유식 시작하면 매끼 세 가지 반찬을 만들어 주는 등 너무나 수고스럽게 아이를 돌보는 게 요즘 트렌드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아이에게 올인하는 게 엄마에게도 아이에게도 꼭 좋은 건 아니겠지요. 


완벽한 사람도 없고 완벽한 엄마도 없습니다. 아이가 태어나서 자라듯 엄마도 나라는 사람이 자라서 만들어지는 존재입니다. 나쁜 엄마라는 말 따위는 집어던지고 '엄마의 행복이 아이에게 가장 좋은 면역력'이라는 생각으로 스스로 즐거울 수 있는 육아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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