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육원 의무 교육화를 지지하며
멀리 떨어져 사는 시댁 어른들께 가끔 아이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나 동영상을 보내드립니다. 이날은 어린이집 다녀오는 길에 몸집에 비해 지나치게 크고 무거운 가방을 멘 아이의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해 사진을 찍고 시댁 어른들께 보내드렸지요.
그런데 "이제 갓 돌 지난 아이를 어린이집에... 너무 혹사시키는 거 아니냐?"는 시아버님의 답문이 날아옵니다. 혹사라는 말이 귓전에 윙윙거리며 너무 아프게 마음에 와서 박힙니다.(가방은 늘 제가 메고 다닙니다. 어린이집 가방은 너무 크고 무겁게 만들어져서 아이가 메기에는 좋지 않거든요. 저땐 그냥 한번 아이 팔에 끼워봤습니다. )
우리 사회는 어린 나이에 엄마와 떨어져 어린이집에 가는 아기는 불쌍하고, 아이는 엄마 손에서 자라는 게 가장 좋다고 믿고 있습니다. 저는 1년 육아휴직 뒤 복귀를 앞두고 있어 아이를 돌이 지나고 어린이집에 보내기 시작했는데, 복귀를 묻는 지인들에게 '아기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있다'라고 말하면 으레 '너무 어려서 어떡하냐'는 대답을 들어야 했습니다.
엄마들이 자주 가는 인터넷 카페에서도 '아기를 언제부터 어린이집에 보내야 하나요'라는 질문에 '저라면 24개월 혹은 36개월 이후에 보내겠어요'라는 댓글을 '항상' 발견할 수 있으며, 아파트 단지에 허리를 잔뜩 구부린 채 큰 아기를 업고 다니는 가냘픈 할머니들께 어린이집 안 보내느냐고 물으면 '말은 해야지'라는 답이 돌아옵니다. 전업주부 엄마들 사이에서도 24개월 이상이 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혹시 선생님이 때리면 집에 와서 이를 수 있는) 때가 되면 어린이집에 보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개그맨 이휘재 씨가 방송에 나와 "지금 육아하는 게 너무 힘들지만 아이들이 4세 정도가 돼 부모와 의사소통이 가능해지기 전까지는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겠다"며 아이의 행복이 가장 중요한데 너무 어린 나이에 어린이집에 보내는 건 좋지 않다고 전문가들이 말했다고 해서 여론의 뭇매를 맞은 적도 있죠.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낼지 말지 결정할 수 있는 선택권조차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큰 박탈감을 준 사려 깊지 못한 멘트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모든 인식의 바탕에는 아이는 엄마가 키울 때 가장 잘 키울 수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습니다. 사실 나이 드신 분들 일수록 더 그렇게 생각하는데 저 생각은 어디에서 왔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전통적으로도 아이는 엄마 혼자가 아닌 대가족과 '마을'이 키웠고, 왕처럼 대접하며 싸고 키우는 문화도 없었으니까요.
그러면 정말 아이는 엄마가 24개월까지 품에 끼고 키울 때 가장 행복할까요?
이웃나라 일본의 통계를 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후루이치 노리토시의 <아이는 국가가 키워라>에 보면 아동학대 가해자는 대부분 친부모고, 학대를 저지르는 엄마들은 누구에게도 상담할 수 없는 고립된 상태에서 육아를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고립이 아동학대를 낳습니다.
아이를 키워본 사람은 대부분 이 말을 수긍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이가 정말 예쁘고 사랑스럽고 아이를 위해서는 뭐든 할 수 있지만, 대책 없이 울어재끼는 날에는 던져버리고 싶은 것도 엄마 마음입니다. 왜냐하면 엄마는 모성애라는 특별한 감정으로 똘똘 뭉친 초인이 아니고 평범한 사람이니까요.
여기서 모성애에 대한 얘기도 잠깐 해볼까요? 아이를 낳으면 아이를 위해서는 뭐든 할 수 있는 마음과 또 그렇게 행동하는 게 모성애라고 알려져 있죠. 아이를 낳은 여자라면 당연히 생기는 거라는 인식도요. 하지만 모성애는 책에서 읽은 내용과 경험한 내용을 모두 종합해보면 당연히 생기는 것도 아니고 대단한 것도 아닙니다.
모성애는 식물과 동물, 직업이나 공들인 자신의 블로그나 사업에 애착을 가지듯 아이에게 애착을 가지는 사랑의 한 감정일 뿐입니다. 사랑이 으레 그렇듯 변하는 감정이기도 하고요.
엄마들 중에 제왕절개를 선택하거나 분유 수유를 선택한 경우 모성애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이에게 좋다고 알려진 방법 대신 다른 방법을 선택한 자신이 엄마 자격이 있나? 나한테는 모성애라는 게 없나?라고 생각하는 거죠.
하지만 완모하고 자연분만했다고 진짜 엄마이고, 그렇지 않았다고 엄마 자격도 없고 그런 건 아닙니다. 엄마의 자격을 누가 부여하겠습니까? 낳아서 아이가 잘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키우면 그만이지요.
어린이집 얘기로 다시 돌아가 볼까요? 어린이집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면이 더 많다고 봅니다. 아이는 가정에서 자라는 게 가장 좋다는 인식과 일부 몰지각한 어린이집의 학대와 방관에 관한 언론보도 때문이겠죠.
어린이집은 전문 보육기관입니다.
저는 복직을 앞두고 아기를 13개월부터 어린이집에 보냈지만 마음이 아프지 않았습니다. <프랑스 아이처럼>처럼에 보면 프랑스 엄마들은 국가에서 운영하는 보육원인 크레슈에 아기를 맡기는 데 거리낌이 없습니다.
엄마들은 육아 전문가들이 아이를 돌봐줘서 마음이 놓이고 아이는 예의나 친구 간의 상호작용 같은 사회성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해서 전업주부들도 일찍이 보육원에 아이를 맡깁니다. 국가에서는 보육 교사들에게 정당한 대우를 해주고 엄격하게 관리하기 때문에 매우 수준 높은 보육시설로 인식되는 것도 엄마들에게 믿음을 주는 이유겠죠.
저건 프랑스이기에 가능한 거고 한국은 다르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 모두 학대를 일삼는 몇몇 어린이집의 CCTV 장면을 뉴스 보도를 통해서 보았으니까요. 그렇다고 많은 어린이집이 다 그럴 거라고 의심하는 건 매우 가혹한 처사입니다. 실제로 어린이집에 아기를 보내는 엄마들은 만족도가 높은 경우가 많습니다.
부모들이 어린이집에 대한 만족도가 높은 이유는 단순히 육아에서 몇 시간 동안 해방됐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어린이집에 가면 아이들이 부모 앞에서 보이지 않던 의젓한 행동을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또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심심할 틈이 없이 잘 놀기도 합니다. 규칙을 배우고 세상의 중심이 자신이 아님을 일찍이 깨달아 자기중심적인 아이로 자라나지 않습니다. 요즘 아이들한테 가장 부족한 면이기도 하지요.
이런 이유로 프랑스에서는 3세부터 의무보육을 시행합니다. 한국에서 8세부터 학교를 가듯이 프랑스에서는 3세부터 보육기관에 가야 하는 겁니다. 아이 보육에 국가의 책임이 있음을 인식하는 태도이죠. 우리나라에서 이 정책을 시행하면 아이 엄마, 아빠, 할머니 할 것 없이 반대가 어마어마할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야 말로 의무보육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남자아이들 같은 경우는 20세가 넘으면 부모의 허락 없이도 마음대로 데려가서 전쟁이나 자연재해 현장같이 목숨이 위험한 곳에 투입시키지 않습니까. 국민을 나라의 자산으로 인식하고 있는 태도이죠. 하지만 보육이나 교육 과정을 보면 무임승차하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보육원 의무화는 사실 저 같은 어린이집 긍정론자에게도 낯선 정책이긴 합니다. 우리 사회에 이런 생각이 뿌리내리려면 상당한 시간과 진통이 예상됩니다. 그래도 결국 큰 그림은 보육원 의무화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이어서 계속해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