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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타임 Jan 13. 2018

당신은 어떤 부모가 되고 싶나요?

자식에게 사랑받고 존경받는 부모가 되고 싶다면

제 주변아이 낳는 걸 원치 않는 친구들 중에는 자신이 훌륭한 부모가 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습니다. 보통은 자신의 부모를 통해서 스스로 부모상을 세우기 마련입니다. 한 친구는 자신에게 헌신했던 부모를 보며 자신도 아이를 낳으면 그렇게 헌신해야할 것만 같고 그럴 자신이 없거나 혹은 그러고 싶지 않아서 부모가 되고 싶지 않다고 말합니다.

또 다른 친구는 아이를 지나치게 과잉보호하게 될 것 같고 그러면 아이도 힘들어지고 자신도 어렵기 때문에 아이 낳는 게 자신이 없다고 합니다. 저는 아이를 '우리 부모님처럼은 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하며 낳았어요.

저희 부모님은 어쩌면 평범하다고 할 수 있는 분들입니다. 전쟁 이후 세대로 봄이면 가난한 보릿고개를 넘기 위해 한 끼 먹는 것도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고, 부모들에게 물려받은 것도 없고 교육도 못받았지만 대한민국 경제 가도 시대에 태어나 열심히 살면서 저축상도 받고 집도 갖게 된 분들이죠. 이 세대의 특징이 자신들은 경제적으로 너무 어려워서 하지 못한 게 많아서 설움이 많은 세대입니다. 그래서 경제적인 면을 갖추는 걸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로 두고 자식들에게도 부족하지 않게 해주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다했죠.


하지만 역효과도 분명히 있습니다. 자식들이 어느 정도 자신들의 기준만큼 성공하기 바랐기 때문에 압박을 대단히 많이 하기도 합니다. 자신이 고생한 걸 자식들이 알아봐 주길 바라며 보상을 요구하는 거죠. 부모의 기대를 어느 정도 충족하는 자식들은 어쩌면 부모와 큰 충돌없이 지냈을 수도 있었겠지만 저는 부모가 원하는 자식 상과 정반대의 기질을 지녔던지라 어릴 적부터 충돌이 많았어요. 그래서 내 자식에게만큼은 그 어느 것도 강요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대로 살게 해야지라고 다짐했어요.


물론 자신이 원하는대로 살게 하는 데도 어느 정도 가이드라인은 필요합니다. 이 기준을 잡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저는 남편의 어머니, 시어머니를 보고 어떻게 하면 자식의 기억 속에 좋은 부모로 남을 수 있을지 조금은 감을 잡을 수 있었어요.


시어머니는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헌신적인 부모였습니다. 경제 능력이 없는 남편을 대신해 가 역할을 했고, 자식 셋과 시부모 둘, 남편까지 일곱 식구를 약 30년 동안 부양했던 분이시죠. 이유없이 죄인취급을 받는 시집살이를 당하면서요.


제가 집에서 혼자 아이를 키우다시피 할 때 너무 외롭고 힘들 때가 있었는데 그런 때 시어머니 생각이 많이 났어요. 이렇게 아이를 키우는 환경에서 돈도 벌어야 하고 시부모 밥상도 차려야 하는 상황까지 더해진다고 생각하니 끔찍했어요. 그래서 어머니는 그런 환경을 어떻게 버티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어느날 물었어요.

"어머니는 아이들 키울 때 힘들지 않으셨어요?"

그런데 항상 낙천적인 분이신지라 그런지 어머니는 웃으면서

"몰라, 기억도 안나. 사는 게 바빠서 힘든지도 몰랐을거야"라고 대답하시더라고요.

그러더니 며칠 뒤에 문자가 하나 왔습니다.

"애미야, 니 말 듣고 예전에 썼던 일기장을 찾아봤는데, 일기장 속에 '죽고 싶다' '도망가고 싶다'는 말이 쓰여있더라. 그때 나도 많이 힘들었어. 너도 지금 아이 키우느라 많이 힘들지? 니가 고생이 많다."라고요.



보통 많은 경우 자신이 고생을 많이 하면 다른 사람과 비교해 '너는 힘든 것도 아니야, 나는 말이지...'라는 무용담을 늘어놓기 마련인데, 어머니는 자신의 30년 전을 떠올리며 제 심정에 공감을 해주었어요. 저는 이렇게 하기 쉽지 않다고 생각해요.


남편도 압니다. 자신과 동생들만 아니었다면 어머니가 진작에 집을 나가셨을 거라는 걸. 자신들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평생을 그렇게 살았다는 걸. 그렇다고 어머니를 슬프고 무거운 눈길로 바라보지도 않습니다.  남편이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고, 어머니에게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건 다 어머니의 노력 덕분이라고 봅니다.


사람은 자신이 헌신을 하면 보상을 받고 싶어합니다. 무언가를 베풀 때 되돌려받겠다는 의도가 있지 않았더라도 상대방이 고마워하지 않거나, 은혜를 뒤통수 치는 걸로 갚을 때는 '내가 자기한테 어떻게 했는데'라며 내가 베푼 걸 떠올리죠. 제가 어머니같은 입장이었으면 자식들을 많이 압박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공부를 잘하기를 바랐을 테고, 어서어서 독립해서 제 밥벌이도 하고 나도 자식 덕에 편하게 살고 싶다고 생각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남편이나 동생들한테 단 한번도 공부해라, 내가 니들 먹여 살리느라고 이렇게 뼈가 빠지게 일하는데 공부도 안하고 뭐하고 있냐고 호통을 친 적이 없었다고 해요. 아침부터 밤까지 일을 하고 돌아와서 아이들이 안자고 TV보고 놀고 있어도 TV를 끈다던지 자라고 소리 지르는 법도 없었던 거죠.  


남편은 장남이었고 공부도 제법하는 편이어서 부모의 기대가 투영되기 쉬운 상대였는데도 불구하고 공부 안하고 놀러만 다녀도 별 다른 제재를 하지 않았어요. 어떻게 그렇게 하셨냐고 물어보면,

"제 인생 제가 사는거지. 남이 강요해서 되는 게 아니"라고 하십니다.


지금은 자식들이 자리를 잡았지만 처음부터 잘 풀렸던 건 아닙니다. 취업 준비를 하다가 다시 공부하기로 결정하면서  돈을 벌지 못하는 기간이 길어졌지만 묵묵히 아침마다 도시락을 싸며, 더 해주지 못해 늘 미안해하고 뒤에서 잘 되길 기도했던 분이죠. 심지어 부모가 원치 않는 직업을 위한 공부였지만 싫은 내색 한번 없으셨답니다.


많은 부모들이 대학만 보내놓으면 이제 뒷바라지는 끝나고 자식들이 대기업에 취직해서 번듯하게 살 줄 알았는데, 취업의 고비에서 허덕이는 걸 보면서 이해를 잘 하지 못했던 것과 대비됩니다.  


어머니가 쉬지 않고 일을 했지만, 식구 수가 많아서 그런지 남편의 가정 환경은 유년 시절 내내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어요. 자식들은 신발이 떨어지거나 작아져도 부모에게 사달라는 말을 못하고 컸죠. 하지만 기특하게도 어느 하나 엇나간 아이 없이 모두 속깊은 사람으로 자라났습니다. 가진 것보다 없는 게 더 많았던 삶을 살았던 남편과 동생들은 불편한 상황을 쉬이 불평하지 않고 감내하는 법을 배웠고, 어떤 어려운 상황도 순응하는 면이 있더라고요. 그리고 어머니한테 가장 훌륭한 유산도 물려받았죠.

'헌신하는 사랑의 가치'라고나 할까요.


평생 헌신한 부모를 보고 자란 남편은 다른 사람을 위해 헌신하는 힘이 얼마나 크고 숭고한 건지 몸소 체험하며 자랐고, 그 가치를 알기에 자신도 남들을 위해 헌신하는 직업을 선택합니다.  사실 남을 위해 헌신하는 가치가 어떤 건지 잘 모르는 저 같은 사람에게는 공감이 안가는 부분도 많습니다.

남편과 대만에 놀라가서 풍등 날리는 행사를 했는데요. 풍등은 소원이 이뤄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써서 날리는 것이라 대부분 자신과 가족의 안녕, 성공 등의 마음을 담아서 글을 쓰는데요. 남편이 쓴 글을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앞부분에는 가족들의 건강과 안녕을 빌었고, 뒷부분에는 자신의 성공을 빌기 마련인데, 주변 사람들의 성공을 빌고 있더라고요.


저는 '연대의 힘은 크다', '함께 사는 세상이다' 이런 말을 텍스트로 배운 사람이라 사실 실천하는 건 잘 안될 때가 많아요. 그런데 남편은 주변 사람들이 잘 되야 자신도 좋다는 생각이 뿌리 깊이 박힌 사람이더라고요. 사실 여전히 이게 어떤 과정으로 가능한건지 잘 와닿지는 않은데 어쨌든 놀라웠어요. 제가 남편의 인성에 다시 한번 반하게 된 일이기도 하죠.


며느리인 저에게도 시집살이를 시킨다거나 날선 말로 상처를 주는 일이 없으시죠. 많이 주지 못해 언제나 저에게 미안해하시며 '일하면서 애 키우느라 힘들지, 고생이 많다'고 얘기하시고 딸과 차별하지 않기 위해 딸에게 사주는 건 저에게도 똑같이 사주십니다. 오라가라 하는 법도 없고, 뭘 해와라 말아라 하는 법도 없습니다. 시댁에 가서 아침에 일어나면 밥상도 차려주시죠. 여러모로 제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 중에 가장 훌륭한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무엇보다 어머니의 최대 강점은 이렇게 어려운 환경에서도 한숨 쉬면서 울상을 하거나, 짜증을 내면서 삶을 한탄하지 않고 웃으면서 즐겁게 사는 방법을 늘 찾았던 면이라고 봅니다. 시어머니에게 받은 시집살이의 설움과 남편에게 생기는 화를 자식들에게 푸는 부모들이 많습니다. 언제나 자신을 사랑해 주는 게 자식이라고 생각하고 그들은 누구보다 만만한 존재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화풀이를 했던 법은 없었습니다. 밖에 나가서 사람들을 만났고 매주 등산을 하고, 60세 가까이 되는 나이에도 여성축구회에서 가장 연장자로 활동하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했죠. 대단하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누구나 이런 부모가 되기는 어려울 겁니다. 심지어 저희 시어머니 조차 누군가 자신처럼 사는 걸 원하지 않을겁니다. 그래도 시어머니가 가졌던 마음가짐을 가져갈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어머니를 통해서 부모가 진정으로 자식을 사랑하고 생각한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배울 수 있습니다. 사람과 상황을 탓하지 말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남에게 강요하지 않기. 지키기 쉽지 않겠지만 이 마음 그대로 가져가려고 노력하면서 살면 아이들이 나중에 부모를 추억할 때 더 좋은 기억이 많이 떠오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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